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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부드러운’ 배우 이학주

2020-06-05 09:32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SM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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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악질’이었다. 극 중 이름보다 ‘데폭남(데이트 폭력남)’이라고 더 자주 불렸다. 욕이란 욕은 다 쏟아졌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속 ‘박인규’는 지탄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를 연기한 배우 이학주를 만나보니, 정반대의 인물이다. 연기를 잘해도 너무 잘한다는 반증이겠다.
따뜻한 노란빛 니트를 입고 있었다. 무채색 옷만 걸치고 살기 어린 눈빛을 쏘아대던 ‘박인규’는 없었다. 인터뷰를 하게 돼 감사하다며 초콜릿을 건넸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쓴 메모도 함께였다. 예상 밖(?)의 온기다. <부부의 세계>에 너무 몰입해 박인규와 배우 이학주를 분리 못 한 시청자로서는 그렇게 느낄 만했다.

이학주가 연기한 박인규는 동거녀 ‘민현서’에 대한 집착을 애정으로 착각하는 비뚤어진 캐릭터다. ‘지선우’와 ‘이태오’ 사이 갈등의 기폭제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극 중반부 자살하는 결말을 맞아 후반부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회까지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악역인데 악역답지 못할까 봐”라던 이학주의 걱정은 겸손이 된 셈이다.

2012년 영화 <밥덩이>로 데뷔한 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멜로가 체질> 등에서 악역에 가까운 배역을 주로 맡았다. 그중에서도 <부부의 세계>는 악의 정점을 찍었다.
 

저도 욕을 했습니다만, 이번 역할만큼 욕을 들은 적 있나요? 하하하. 이 정도 시청률이 나온 드라마는 처음이어서요. 이 정도 욕도 처음입니다.

아무리 캐릭터를 향한 욕이라 해도 신경이 쓰이지 않던가요? 연기한 인물과 저를 스스로 잘 분리한 것 같아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당시만 해도 경험이 훨씬 적어서 (욕 듣는 게) 서운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작품 마치면서 잘 정리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악역은 욕을 먹으라고 있는 캐릭터니,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요. 스트레스는 전혀 안 받습니다.

여태 해온 악역 중 가장 셌어요. 나름의 부담감도 있었을 법해요. 악역인데 악역답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역할상 선배님들을 무섭게 만들어야 하는데 60%는 실패할 것 같더라고요. 그 점이 제일 부담이었어요. 제가 무섭지 않으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의미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말마따나 대선배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연기라 힘들었겠어요. 엄청 부담스럽고 촬영 전날엔 잠도 못 잤어요. 평정심을 잃는 순간 촬영장에서 굳어버릴까 봐 집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그때도 굳었어요.(웃음) 가만히 서서 상대를 위협하면 분위기가 안 잡히기 때문에 동선이 중요해서 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요. 감독님이 지도해주신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김희애 씨와 대치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때 덜덜 떨고 있었어요.(웃음) 마음속으로 ‘지선우, 너 아무것도 아니다’ 하면서 연기했어요. 그게 좀 통했는지 제가 그 정도로 떠는 걸 누군가 캐치한 순간은 없었어요. 김희애 선배님이 저를 굉장히 기다려주시기도 했고요.

‘박인규 연기’의 핵심은 뭐였죠? 인간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라서 ‘악인’이라는 걸 잊는 대신 동물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굶주린 동물이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요. 하이에나 같은. 사자는 되기 힘들더라고요.(웃음)

모든 신에 공을 들였겠지만 특히 사력을 다한 장면이 있다면요? 고산역 옥상 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리허설 때 감정이 안 생겨서 ‘와, 이거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너무 걱정을 하니까 감독님이 “긴장 안 해도 되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 심은우(극 중 ‘민현서’) 배우 표정을 보며 연기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그 촬영 전에 ‘지선우’에 대해 욕을 많이 했어요. ‘박인규’라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모두 지선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요. 안 생길 것 같던 감정이 올라오는 게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심은우 배우와 합이 잘 맞았던가 봐요. 대부분 신에서 심은우 배우한테 고마웠어요. 몸싸움이 있는 신은 미안함도 엄청 컸어요. 반복해서 찍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있었는데, 심은우 배우가 굉장히 잘 맞춰줬어요. 무엇보다 그 배우랑 촬영하는 게 편했어요.

시청자들은 <부부의 세계>의 매력을 뭐라고 봤을까요? 대본 읽었을 때 머리카락 한 올에서 의심이 시작되는 게 그럴 듯 했어요. 지선우가 트렁크를 여는 순간부턴 16부까지 안 볼 수 없는 드라마이지 않았나 해요. 캐릭터도 다양하고,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작품 소재였던 ‘불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막연히 불륜은 참 나쁜 것이라는 정도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저한테 벌어진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근데 불륜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드라마를 통해 봤어요. 준영이의 세계, 여다경 부모의 세계까지 다 무너져 내렸어요. (불륜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구나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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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를 시작한 이유

‘연출’을 배우려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이후로 깨달은 건 자신이 연출에 관심도, 재능도 없다는 것. 오히려 눈길도 주지 않던 ‘연기 수업’에 흥미가 생겼다. 친구들이 꾸린 연극에 자청해서 참여했는데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 욕이 돌아왔다. 그래도 연기는 하고 싶었다.

본래 꿈이 배우였어요? 방송이나 영화 관련 종사자가 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어요. 거기선 연기 수업을 무조건 받아야 하니 싫어도 했죠. 근데 재밌는 거예요. 감정을 많이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연기하면서 드러내는 감정들이 묘했어요. 군 복무 중에도 계속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결국 제대하고 3학년 때부터 연기를 배웠어요.

드라마 데뷔작 첫 촬영은 못 잊겠네요. <오 나의 귀신님>이었어요. 모두가 절 보면서 ‘저 친구는 긴장했다’는 걸 공감하지만 말은 안 하는 분위기였어요.(웃음) 저 친구가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아요. 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고 말은 또 얼마나 빨리 했는지 몰라요.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다다다다! 안녕하세욧!(웃음) 현장에선 아직도 떨리지만 그날에 비하면 안정감을 찾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 본인 마스크의 강점이 있다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잘 표현되지 않는 마스크라는 게 강점이에요. 단번에 묘사, 표현이 안 돼서 여러 가지 (마스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봤어요. 그런 강점이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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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건…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만의 기운이 스몄다. 제법 인상적이었다. 첫 인사를 나누고 초반 질문을 던질 때까진 낯을 가리는 듯하더니,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농담도 던진다. 여전히 멋쩍어하지만 나름의 유머로 상대를 실소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밝은 옷이 잘 어울려요. 비슷한 결의 캐릭터도 소화할 것 같은데 잘할 수 있겠다 싶은 게 있나요?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시트콤을 해보고 싶어요. 재밌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카메라 밖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밥 시켜 먹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황제성 씨 팬이라 그분 영상도 많이 봐요.(웃음)

오늘 말투만 봐선 차분한 성격일 것 같아요. 사람에겐 여러 가지 면이 있잖아요? 하하.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엔 차분해 보이는 것 같아요. 근데 빗장이 열리면 쑥스럽지만 장난을 걸어요. 저더러 장난이 심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어요.

예능 프로그램도 맞겠는데요? <아는 형님>을 한번 경험해봤는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다들 순발력이 엄청나세요. ‘이야, 여기 진짜 무슨 사람들이지?’ 경이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밌고 신기했어요. 저도 뭔가는 하고 싶은데 쑥스러워서 말도 잘 못 꺼내겠고… 기회만 있으면 예능을 조금씩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생겼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본인이 꾸릴 가정에 대한 생각은 안 해봤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두 분이 늘 화목한 건 아니지만(웃음) 그 모습이 재밌어서 동영상을 많이 찍어둬요. 설날 아침에 이상하게 파스타집을 가게 됐는데 두 분이 말싸움을 하시다가 파스타 먹으면서 많이 먹는다고 뭐라고 하고 또 웃고 그러세요.

어떤 아들이에요? 부모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굉장히 좋은 아들입니다. 하하. 이런 아들을 낳으셔서 다행입니다.(웃음) 살갑진 않지만 너무 무뚝뚝하지도 않고 잘하려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평범한 아들이네요.

마지막으로 이학주가 박인규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다음 생이 있다면 착하게만 살아라. 억울하더라도 그게 더 행복할 수 있으니 이번 생처럼 하지 말거라. 이번 생은 너무 안 좋았다. 다음 생에선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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