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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이석훈

2020-02-18 09:03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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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몰입해 있었다. 볼 살이 쏙 빠진 얼굴부터 다부진 체격까지, ‘이석훈’과 <웃는 남자> 속 ‘그윈플렌’의 간극이 아주 좁아 보였다. “뮤지컬 배우 이석훈”이라는 자기소개가 아직까진 선뜻 나오지 않는다는 그의 얘기가 괜한 겸손으로 들릴 만큼.
<킹키부츠>를 시작으로 <광화문연가> 그리고 <웃는 남자>까지 뮤지컬 배우로서 이석훈의 발걸음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익히 알려진 ‘SG워너비 멤버’ 혹은 ‘발라드 가수’에 또 다른 수식어가 더해지는 중이다.

이석훈은 <웃는 남자>에서 주인공 ‘그윈플렌’으로 분해, 17세기 영국의 극심한 신분 차별에 경종을 울린다. 앞선 작품을 통해 보여준 캐릭터와는 다른, 극적인 감정선을 풀어내는 인물이다. 발라더 이석훈이 10년 넘게 보여온 이미지와도 괴리가 크다. 기분 좋은 반전으로 느껴진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마냥 부드러울 것 같던 그의 이면이 건넨 반가움이랄까. 그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석훈’을 보여주기 위함에 한창이다.
 

벌써 세 번째 작품입니다. <웃는 남자>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지. 회사 이사님 통해서 들었고요.(웃음) 오디션을 본 건 아니고 캐스팅 제안을 받았습니다.

왜 이석훈을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대해선 여쭤보지 않았는데 음… 잘 모르겠습니다. 좋게 말하면 가능성을 보신 걸 수 있고, 아니라면 시험 삼아 (캐스팅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 공연 끝나고 대표님께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연 중간에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다 끝내고!(웃음)

‘그윈플렌’을 소화하면서 이건 꼭 표현해보고 싶다는 게 있을까요. 그가 마지막 ‘웃는 남자’라는 넘버를 왜 이렇게까지 미쳐서 부르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설득력이 있는 거니까요. 그 부분에 특히 집중했어요.

이석훈과 더불어 박강현, 수호, 규현 등 쿼드러플 캐스팅이다 보니 차별점이 궁금해요. 일단 나이가 가장 많고.(웃음) 저는 뮤지컬을 하면서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 전달이에요. 노래를, 연기를 기가 막히게 기술적으로 하는 건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믿고 보는 배우가 되기 위해선 극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거기에 굉장한 포커스를 맞춰서 작업 중입니다.

신영숙 배우(극 중 ‘조시아나’)를 비롯해 공연 관계자들이 “석훈 씨는 연습벌레”라고 입을 모아요. 정말 대단한 누나가 좋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 작품 연습에 들어간 날부터 첫 공연 올리기까지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근데 제가 연습을 많이 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윈플렌처럼 중요한 역할에 저를 쓴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고, 그걸 만족시키려면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죠.

그 정도라면 그윈플렌이 되기 위한 연습 이외의 노력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외형 자체를 많이 바꾸는 게 우선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그윈플렌은 풍족하게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얼굴 살이 있으면 안 돼요. 말랐지만 마차를 끌었으니 몸이 안 좋을 순 없어요. 그래서 운동을 했어요. 연습 들어갈 땐 74㎏이었는데 지금 69㎏까지 빠졌어요. 나름 외형적으론 갖춰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벽주의자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은 사람 같아요. 스스로 혹독하게 대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제 자신을 인정하는 기준이 굉장히 높고, 남들이 잘한다고 얘기해도 흔들리지 않아요. 내가 만족했을 때 잘하는 거니까요. 참 피곤해요.(웃음)
 

# ‘주연상’보다 ‘신인상’을 받고 싶은 이유

질문을 건넨 뒤 그의 답변이 들려오는 데까진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힘을 준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전해졌다. 부족한 면을 이야기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욕심이 없어서도, 부끄럽지 않아서도 아니다.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워가고 있어 당당했다.

가수로선 베테랑이지만 뮤지컬계에선 루키잖아요. 한 분야의 일정 수준을 이룬 사람이 다른 데서 신인을 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루키, 너무 듣기 좋다! 하하. 저는 가수로 데뷔할 때도 사실 신인이었지만 신인이 아니었죠. SG워너비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신인상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 신인이었어요. 그래서 신인상을 되게 받고 싶어요. 남우주연상보다 훨씬 받고 싶은 게 신인상이에요. 단, 받을 만한 사람이 됐을 때 받고 싶어요. 작품이 좋아서, 관객들이 많이 들어와서 (상을) 받는 거는 제가 용납 못 할 것 같아요. 내가 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받으면 펑펑 울지 않을까요. 너무 행복해서.

‘받을 만한 사람’의 기준은요? 스스로 ‘뮤지컬 배우’라는 명칭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수 이석훈입니다”라고는 얘기할 수 있어요. 근데 “뮤지컬 배우 이석훈입니다”라고 말할 땐 한숨 머금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웃는 남자>는 뮤지컬 배우로서 성장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하나요. 프로는 성장하는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과정 연습은 이미 완벽히 끝냈어야 하는 거고, 지금부터는 그윈플렌으로 관객들을 만나야죠. 이번 작품은 제 인생에 큰 점 하나를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죠? 네, 자신은 늘 있습니다.

첫 공연 마치고 커튼콜에서 무대를 바라봤을 때 느낌을 묻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울컥했어요. 이게 참 희한한 기분이었어요. 그 정도까지 함성이 나올 줄 몰랐거든요. 커튼콜 나가기 전에 제 자신에게 물어보긴 했죠. 잘했느냐고. 근데 스스로 “잘했어, 석훈아 잘했어!” 얘기하더라고요.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너 혼자 공연했느냐’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쏙 들어갔어요.(웃음)

관객에게 듣고 싶은 평은요? 결국엔 믿고 보는 배우겠죠. 실은 너무 빠르게 듣고 싶지만 기대하진 않아요. 제가 뭐 다른 뮤지컬 배우들처럼 팬덤이 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하나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가수랑 전혀 다른 바닥이다 보니 이걸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깨우치는 게 아주 재밌습니다.

마지막까지 본인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요? 소리, 제 목소리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아요. 그 정도 호흡까지 안 써도 되는데 쓸데없이 힘을 쓰는 지점도 분명 있고, 더 (힘을) 줘야 하는데 덜 내는 부분도 있을 테니 거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피드백도 받고 있어요. 가요랑 뮤지컬의 큰 차이는 발성이거든요. 가요는 개성 있게, 매력 있게 하면 되는 거고 정답이 없어요. 물론 뮤지컬도 개성과 매력을 찾지만 정확하게 잘 들려야 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어요. 뮤지컬 쪽으로 빨리 왔으면 더 많이 좋아졌겠다는 생각도 해요. 소리의 중요성을 못 느끼고 노래를 해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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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사는 이유는 ‘가족’, 결혼하고서 달라졌다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눠보니 ‘교회 오빠’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는 단면에 불과했다. 이후 그가 뮤지컬 무대에서 보여줄 다양한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이유라면 이유다. 나아가, 남편과 아버지로서 겪어낼 시간도 더해진다면 또 다른 이석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역시 결혼을 하고서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몸에 문신이 있네요? (왼쪽 팔목을 가리키며) 이건 저희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 한 거고요. 우리 와이프, 아기와 관련한 문신이 몸에 다 있어요. 공연할 땐 테이프를 다 붙이고요.

이번 작품 끝내고서 ‘웃는 남자’도 새기는 거 아니에요? 몸에 새길 정도로 소중하진 않아요. (좌중 폭소) 문신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 새길 땐 굉장히 큰 위안이었어요. 어머니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니까. 근데 애기가 태어나고 작품을 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아닐 수가 없더라고요. 애기를 안고 지날 때 몇몇 분들이 “가수 이석훈이 문신이 저렇게 많아? 에이, 아닐 거야”, “아휴 양아치!”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려요. 지우고 싶은데 주변에서 말하길 심장 떨어질 만큼 아플 테니까 각오하래요. 아픈 건 싫어서(웃음) 안 지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석훈은 스위트할 것 같다고 해요. 저는 편견 덩어리일 수 있어요. 들려드리는 음악이랑 다른 사람이거든요. 저랑 얘기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렇게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에요. 할 말도 다 하고요. 그래도 제겐 편견이 있을 수밖에요. 제 모습을 그렇게 보여드렸으니까요. 근데 다른 제가 있어요. 그걸 작품을 통해서 천천히, 체하지 않게 보여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공연을 보고 뭐라고 해요? 첫 공연에 초대했어요. 여보가 하는 이야기는 다 듣겠다, 모니터를 해달라는 의미에서 첫 공연에 불렀어요. 보고 나선 할 말 없을 정도로 너무 잘했다더라고요. 사실 아내가 국립발레단 소속이어서 예술의 전당을 집처럼 사용하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다고 했을 때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어요. 우리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는 부부구나, 괜히 의미를 더 부여하고.(웃음)

안무적인 요소는 아내 도움 좀 받았겠는데요? 제가 집에서 하도 많이 부르니까 아내도 노래를 다 알아요. 오히려 제가 잊어서 “이 부분이 뭐였지?”라고 물어봐요. 턴 동작을 보여주면 “오빠, 그거 이상하네~” 하면서 조언해주고요. 그 힘을 받아서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이석훈의 가장 특별한 응원자이자 조력자는 가족이네요. 저한텐 그렇죠. 만약 결혼을 안 했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 이유도 없고요. 저, 결혼해서 많이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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