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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제대로 ‘꽂힌’ 남자, 이희준

2020-02-14 15:29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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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술 마시면서 연기 이야기 하는 것, 연기하는 동료들과 등산하는 것.” 이희준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 10년 전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주제로 일기를 써봤더니 이렇게 세 가지가 떠오르더란다. 한창 연기에 꽂혀 있을 때라 그랬나 보다 싶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즐거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암살된 1979년 10월 26일.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으로 꼽히는 이날의 진실을 담은 영화다. 대통령 암살사건 발생 40일 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심리를 촘촘하게 따라간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건이지만 그 인물들이 정확하게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기에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는지 탐구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호기심이 만든 작품은 제작 시점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흥미진진한 소재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실존인물을 연기했다는 사실이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병헌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았고, 그와 팽팽한 대립을 펼치는 인물인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이희준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일인자인 대통령을 향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충성을 보이지만 그 방식과 스타일은 그야말로 정반대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이희준을 만났다.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25㎏ 증량한 그는 다시 배우 이희준이 되어 있었다. 육식 동물 같은 영화 속 곽실장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캐릭터에 대한 여운은 여전했다. 선한 두 눈을 반짝거리며 본인이 연기한 인물을 신나게 말하는 모습을 보자니 연기를 즐기는 배우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영화 잘 봤나. 처음 봤을 때는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헌 선배님이 비 오는 날 도청하는 신이 있다. 음악이 깔리고 클로즈업 들어갈 때, 너무 좋아서 그 인물에게 젖고 싶었는데 짧아서 좀 차갑다는 느낌도 받았다. 두 번째 보니까 감독님 의도가 보이더라. 영화의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병렬식으로 장면을 배치한 것도 좋았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잖나. 차갑게 연출했다는 의도가 보여서 놀랐다. 찍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결과물을 봤을 때 대단했다.

본인의 연기는 어떻던가.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예리한데 나는 너무 통짜로, 굵은 선으로만 연기하는 것 같았다. 처음 보고 “너무 튀지 않아요?”라고 감독님과 배우들에게 물어봤는데, 병헌 선배님이 “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작품이 숨을 쉴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에 위안을 삼았고, 믿고 있다.(웃음)

살을 굉장히 많이 찌웠다. 전혀 새로운 이희준을 만났다. 시나리오를 읽으니 살을 찌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윽박지르는 대사, 각하를 신임하고 충정하려고 애쓰는 대사들을 보니 묵직한 덩어리감이 필요해 보였다. 감독님은 살을 찌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내가 주장을 했다. 땅콩버터 먹으면서 3개월 동안 25㎏을 늘렸다. 9개월 촬영하고 3개월 만에 다시 원래 상태로 복귀했다. 당뇨가 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다행히 건강검진을 해보니 건강하더라.

달라진 체중으로 연기를 해본 소감은? 허벅지가 안 붙더라.(웃음) 첫 촬영이 헬기를 타는 신이었다. 병헌 선배 가슴을 치고 헬기로 빨리 뛰어가야 하는데, 체중이 늘어나니 뛰어도 뒤뚱거리는 걸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재미있었다. 각하를 쳐다보는 신에서는 고개가 잘 안 돌아가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 신체적인 가면을 쓴 것 같았다.

곽상천은 ‘각하가 국가’라고 믿고 충성하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나. 일상에서 곽상천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말도 섞고 싶지 않다.(웃음) 이해하려 들고 싶지도 않고. 사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이희준으로서 거부감이 있었다.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니, 영화가 끝났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라고, 그런 일을 겪고, 그런 일을 함께 했고 등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공감했나. 받아들이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작품에 캐스팅되고 처음에는 좋은 선배들과 함께하는 흥분이 컸다. 그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는 ‘내가 지금 곽상천이라는 인물이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지?’ 고민이 됐다. 캄보디아에 대해서 하는 말(‘캄보디아처럼 100만 명 200만 명 탱크로 싹 밀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말을 남겼다)은 무시무시한 말이고, 총을 한 방 맞고 하는 행동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두려움이 생겼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랐고, 각하와 어떤 시간을 겪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지 구축을 탄탄하게 하는 데 주력했다. 혼자 집에서 곽상천을 가상으로 앉혀놓고 대화도 해봤다. “당신 솔직히 일인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물었을 때, 진심으로 아니라고 했을 것 같다. 남들이 봤을 때는 미친놈이라고 평을 하지만, 이 인물은 정말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듯하다. 병헌 선배를 화나게 하는 것도 정말 안타까워서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고. 그렇게 혼자 상상하면서 인물을 받아들였다. 만약 곽상천의 클로즈업 장면이 있었다면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주지? 난 오로지 각하를 위한 건데, 억울하다’라고 말했을 것 같다.

원작도 참고했나. 내가 나오는 부분만 봤다.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원작은 못 보겠더라. 정말 두껍다. 대신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봤다. 자료들을 통해 이 사람은 뭘 믿고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게 됐을까에 집중했다.

<마약왕>에 이어 우민호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작에서는 애드리브도 많이 하고 빈틈을 많이 채워나가면서 즐겁게 만들어갔다면, 이번에는 오랫동안 차갑게 <남산의 부장들> 온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개봉 후 관객들에게 어떤 평을 듣고 싶나. ‘저렇게 살았고, 저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저런 놈이 어디 있어?’가 아니라 ‘저 시대에 저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구나. 저 사람은 진짜 뭘 강력하게, 바늘 들어갈 틈 없이 믿고 있구나’라고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시점으로 보셨으면 좋겠다. 나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들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저 자리에 갔고, 어쩌다가 무너졌을까. 전두혁이라는 인물은 거기서 무얼 배웠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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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연기
한예종 동기들과 만든 극단과 연극은 비타민

이희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장르와 캐릭터의 폭이 그만큼 넓다. 심장이 뛰고 흥분되는 시나리오에 출연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연기가 너무 즐겁다. 최근에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한 그는, 15년 전 한예종 동기들과 함께 꾸린 극단에도 꾸준히 참가하면서 연극 무대도 놓치지 않고 있다.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즐기는 자다.

작품을 통해 생각이 달라진다고 밝혀왔다. 이번에도 그랬나. 맞다. 자기의 생각이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곽상천에게 연민이 들기도 했다. ‘억울했겠다. 자기는 최선이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곽상천을 통해,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고의 성장과 확장은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

그리고 공감 능력도 커진다. 내가 영화 <해무>를 하지 않았다면 어부를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부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1987>에서는 그 상황에서 기사를 쓰게 됐을 때 뭐가 무서웠을까,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미쓰백>은 왜 이 여자를 지켜야 할까, 무엇 때문에 지킬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하나씩 할 때마다 공감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을 때, 공감 능력의 모세혈관이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기대도 된다.

출연 작품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작품 선택 기준이 있나. 친한 감독 형이 있는데, “네가 작품 선택하는 기준을 모르겠다”고 하더라.(웃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엉뚱한 영화들을 선택한다면서, 기준이 뭐냐고 묻더라. 내 기준은 대본을 보고 심장이 뛰고 흥분되는 것이다. ‘와, 이거 재미있겠다’를 쫓아간다. 그게 남들이 봤을 때는 기준이 없어 보이나 보더라.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무대의 매력이 뭔가. 나는 연극이 너무 좋다. 죽을 때까지 할 것 같다. 배우들끼리 즉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배우들끼리 각자의 욕심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신을 연습하는 과정들, 대화들이 행복하다. 결과물을 봤을 때도 그렇다. 무대에서는 클로즈업이 없다. 오로지 풀 샷이다. 대사 없이 다른 액션을 하면서 서 있어도 날 보는 관객이 있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매력이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모여 만든 극단 소속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연기를 배달한다는 의미로 만든 극단이다. 15년을 만난 사이다. 이제는 다 유명해지고 많이 알려져서 먹고살 수 있게 됐고 감사하지만, 우리가 잠깐이라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좋다. 일정이 잡히면 무조건 참여하려고 한다. 지방 모텔방에 모여서 소주 마시면서 “더 좋은 연기는 뭐라고 생각해?”, “감독은 어땠어?” 하고 우리끼리는 이야기를 다 하는 편이다.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우리끼리는 진심 어린 충고로 듣는다. 그게 너무 소중하다. 지방을 다녀오는 게 피곤하지만, 남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데 큰 비타민이 된다.

이희준이 배우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뭔가.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연기는 너무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작품을 통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이해해보는 과정도 즐겁고, 다른 배우들과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를 해보는 과정도 재미있다. 중독인 것 같다. 10년 전에 일기를 써봤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뭐지?” 하고 물어봤다. 첫 번째는 연기. 그다음은 술 마시면서 연기 이야기 하는 것. 연기하는 동료들과 등산하는 것. 얼마 전에 다시 생각해봤는데 그거 말고는 없더라. 지금도 똑같다.

배우는 즐거움만 있는 직업은 아니다. 힘든 지점은 없나. 행복하지만 늘 불안하기도 하다. <남산의 부장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이희준이 곽상천을 어떻게 연기할까 흥분과 기대도 있었지만 반대로 불안함도 있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방해가 되면 어떡하지, 평가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하는…. 항상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불안해야 흥분도 되지 않겠나. 쉬우면 안 되니까.

연기 말고 관심사는?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림. 평안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배우라서 사람을 관찰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그린다. 지하철이나 기차역을 이동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그린 지 4~5년이 넘었다. 배우로서 휴식하는 연장선인 것 같다. 저 사람의 저 주름은 어떤 성격으로 보이고, 어떤 일을 겪었겠다 상상하면서. 배우로서 즐거운 취미다. 동대문역사공원 가서 두 시간 앉아 사람을 그린 적도 있다. 혹시 나를 알아봐도 ‘아니야’ 하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변장을 하고 간다.

다음 작품은 뭔가?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나문희 선생님과 <오! 문희>라는 작품을 촬영했다. 보험회사 직원 역으로 치매 엄마를 모시고 사는데 스스로 기대된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다. 계속 이렇게 흥분되는 작업들만 쫓아갈 것 같은데, 이러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죽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웃음) 오래 살고 싶고, 건강하게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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