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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투 그림 대작 사건 이후 첫 심경 인터뷰

“요즘은 태극기… 대법 판결 후 화투 전시회 열 것”

2020-01-29 09:59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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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의 청담동 자택을 찾았다. ‘화투 그림 대작 사건’이라는 미술계의 뜨거운 사건을 치르느라 한참 대중과 떨어져 있던 그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위트와 농담을 즐기는 개구쟁이였다. 다만 인터뷰 사이사이, 커다란 통유리 너머 한강을 한참 쳐다보며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이 본인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조영남은 중학교 때 사랑에 빠졌던 고향 마을 소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방에서 작품을 한 점 들고 나왔다. 고등학교 진학으로 고향을 떠나며 소녀와 서로 사진을 교환했는데, 그 흑백사진을 소재로 콜라주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을 지긋하게 내려다보던 조영남이 순식간에 옛 추억에 빠졌다. 그리고 소녀와 함께했던 시절 고향의 추억을 줄줄이 소환했다.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던 유년시절, 고향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한양음대, 학교에서 만난 애인, 애인 약혼자의 등장으로 자퇴한 사연 그리고 다시 공부해 들어간 서울대 음대, 또 미군부대에서 노래하던 시간들….

주로 연애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인생이 시간 순서에 따라 펼쳐졌다. 신이 난 그가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사건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영남의 얼굴도 조금 진지해졌다. 그는 본인의 인생에 네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의 첫 번째 사고는 와우아파트. 서울시가 지은 아파트가 무너졌는데, 내가 그걸 노래로 했어. ‘와르르르~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 하고. 욕을 엄청 먹고 군대에 잡혀갔어. 그냥 아파트가 무너지는 게 재미있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정부에 억하심정 있나, 정치색깔 있나’ 해석이 되더라고. 두 번째는 파혼이지. 그때는 파혼이 큰 죄였어. 한 2년 욕 엄청 먹고 아무것도 못 했지. 세 번째는 일본 파동. 일본이 우리보다 낫다고 했다가 또 욕을 엄청 먹었어. 센 발언으로 책까지 써서, 욕먹느라 방송에 또 한참 못 나갔지. 그리고 네 번째가 이번 미술 파동이야.”
 

# 조영남이 사기꾼?
화투 그림 대작 사건

그가 ‘미술 파동’이라 표현한 사건은 지난 2016년 일어난 일명 화투 그림 대작 사건을 말한다. 조영남은 화투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화투 그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고, 개인전도 자주 열었다. 한 무명 화가 송모 씨가 조영남의 화투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고 폭로했다. 조영남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그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고, 화가가 조수를 두는 것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미술계와 대중에게 불을 지폈다. “대작은 범죄”라는 비난과 “그게 바로 현대미술”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뜬금없이 미술, 현대미술, 예술의 정의까지 논란이 됐다.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조영남에게는 사기꾼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긴 법정 싸움도 시작됐다. 조영남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논란이 분분했던 만큼 재판부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됐다. 법이 예술을 정의 내린다는 사실이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를 더해 만들어진 신조어)는 반응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사건에는 어떤 결론이 필요했다.

2017년 10월에 진행된 1심에서 조영남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8년 8월 진행된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혹독한 시간을 보낸 조영남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다.

사건 많은 인생이다. 유명해지려고 그러는 거지.

사건보다는 해프닝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네 번의 사건이 전부 해프닝이지. 일어날 듯 말 듯 하는 해프닝. 이렇게 온전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런 큰일이 내 인생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더라. 내가 사건에 역행하겠다고 까불었으면 뭐가 잘못됐을 수도 있는데, 순순히 비바람 몰아치면 맞고 그러다 보니 또 날이 개고 그런다. 희한하다.

그림 대작 사건의 시간도 그렇게 받아들이며 보냈나. 그렇지. 이번에도 나중에 더 찬란한 날이 올 것이다 생각하며 지켜봤다.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인사를 하면 나는 이상하다. 이게 고생이 아닌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나는 똑같다. 그림 그리고 사람들 만나고. 이런 사건이 좋은 게, 아군과 적군이 홍해처럼 쫙 갈라지더라. 그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다. 지금은 누가 좋은 사람인지, 똥과 된장을 가르는 법이 뭔지 노하우가 생겼다. 굉장히 유쾌한 상태다. 내가 그 친구들이랑 계속 연결을 해왔으면 형편없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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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죄 판결 받을 때까지…
미술로 죄인 되기 싫어 2심 강행

‘무죄’라는 판결을 듣고 한숨을 돌리기까지 그 과정은 힘들었다. 긴 시간 재판을 치르면서 잃은 것도 많지만,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성숙한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과정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죄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외로움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화투 대작 사건 덕분에 대중의 현대미술에 대한 상식 수준이 높아졌다. 조영남이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전 국민의 1할도 안 되었었는데, 사건 나고 내가 그림 그리는 걸 5할 정도는 알게 됐지.

재판 과정에서 상처도 받았을 텐데. 2심까지 강행한 것은 너무 억울해서였나. 다들 미술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고 경험도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웃으면서 미온적으로 했다. 별걸 다 재판까지 한다는 심정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개념 정의와 함께 조영남을 옹호한) 진중권이 변호해주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집행유예가 나왔다. 1심 끝나고 주위에서 “집행유예 나왔으니 그냥 이제 방송 하세요” 하더라.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그러면 내가 평생 미술로 죄인이 되는 거 아닌가. 죄목이 사기죄니까, 죄인 중에서도 사기꾼이 되는 거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해볼 데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에 2심을 진행했다.

무죄가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 억울함이 해소되던가. 그 상황에선 그런 걸 느낄 겨를이 없다. 쫄았었다.

다 떠나서, 가까운 사람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낀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 상실감은 어떻게 채웠나. 이제는 좀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를 제기한 친구가, 내 그림을 몰래 팔아먹다 들켜서 사건이 커졌다. 내 사인을 도용했으니 내가 고소를 해야 할 상황 아닌가. 평소 나한테 ‘형, 형’ 하고 부르던 동생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건 터지고 나는 TV에 한 번도 안 나갔다. 한 방송국 사장이 우리 집에 찾아온 적도 있는데 안 나갔다. 내가 나가서 이야기를 하면 변명 아닌가. 그리고 그 친구 욕을 해야 하고. 이게 형으로서,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서 출연을 안 했던 거다.

조수로 알려진 작가와는 따로 연락을 나눠봤나. 법정에서만 만났지. 그런데 2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니까 나한테 처음으로 전화가 왔더라. 다시 조수를 시켜달라고,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만약 내가 TV에 나가 인터뷰를 했으면 안 그랬겠지. 내가 그 친구 욕을 안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이긴 거지.

이 사건의 문제 제기를 한 당사자인데, 다시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 전화를 했다? 희한하지. 원숙한 애는 아니야. 지금 나는 뭘 하고 싶어도, 내가 그 친구 얼굴을 쳐다보기 민망스러워서 못 봐. 헤어지자는 말도 못 하고. 우리가 같이 그림을 그리면 굉장한 현대미술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렇게까지 쇼를 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광대지만 그런 식의 광대 노릇은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지.

이 사건은 조영남에게 무엇을 남겼나. 내 평소 콤플렉스 중 하나가 여자 때문에 울어보지 않은 것, 외롭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여자 때문에 울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람은 외로울 때가 있구나’ 실감했다. 왜냐면 모두 다 ‘조영남이 나쁜 놈’이라고 하니까. 내 편을 들어주는 진중권도 함께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먹었다. 사람들이 진중권이랑 나랑 친한 줄 아는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싫으니 그 사람까지 싫어하는 거다. 돈 주고도 겪을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가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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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계의 불인정을 인정한다
조수 없이 혼자 작업, 대법원 판결 후 전시 열 것

조영남의 거실에는 그림이 가득 있었다. 바닥 곳곳에는 화투를 비롯한 태극기, 초가집, 이상의 콜라주 작품이 놓여 있었다. 1심 재판 받는 날 본인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도 있었다. 이젤에는 현재 작업 중인 자화상이 그려진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에 몰두했다.

그림은 계속 그렸나? 그 사건 덕에 내 그림이, 내 보기에 퀄리티가 좋아졌다. 사건 전에는, 전시만 하면 팔리니까 그림이 엄벙덤벙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작품이 차분해졌다.

그림과 거리를 두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한데. 사건이 나고 친구들이 “그림을 안 하겠다고 하면 된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림을 놓는 것은 불가능하더라. 이게(그림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음악보다 신나고 좋은데 안 한다고 하면? 내가 나를 아니까 그 말을 못 하겠더라고. 1심 결과 나왔을 때도 사방에서 “미술 안 한다고 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잘 알잖아.

작업은 혼자 하나? 조수 없이? 이제 조수 쓸 일 없지. 사건 나오고 전시는 끊겼으니까. 요즘은 딸이 가끔씩 화투를 그려주고, 나머지는 내가 다 한다. 화투는 그리기 복잡해서 조수를 쓴 거고, 나머지는 조수 없다. 요즘은 태극기 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매일 많은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작가로서 충실히 살았는데 미술계에서 조영남은 크게 인정을 못 받는다. 내가 미술대학에 다녔으면 괜찮을 텐데, 학원 한번 다녀본 적이 없다. 미술이랑 아무 관계가 없는 데다 내 직업은 대중가수 아닌가. 그런 내가 전시를 하고, 작품은 완판이 된다, 그러니 본업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겠나. 미술계의 태도가 당연히 이해가 간다. 그걸 아니까 참을 수 있었다. 서운하다고 생각해봐야 득 되는 건 없지 않나. ‘언젠간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이나 많이 그려놓자’ 한다.

작품이 많아서 전시해도 되겠다. 계획이 있다. 대법원 판결 나오면 전시할 거다. 다들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그린다. 내가 후지게 그리면 사람들이 “이걸 그림이라고 그런 사건을 치르고 그랬어?” 할 거 아닌가.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나에게 진짜 그림을 그리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화가로 나가라는 계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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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책 출간…
여름 대법원 판결 이후 활동 재개

지금 조영남은 모든 일정을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뤄두고 있다. 전시를 통해 그동안 쌓인 그림들을 풀어놓을 계획이고, 이상을 주제로 쓴 픽션 책도 출간 예정이다. 현대미술 관련 책도 한 권 썼다. 무죄 판결 이후 조금씩 행보를 시작하는 중이다. 연말에는 디너쇼도 열었고, 데뷔 후 처음으로 ‘깜빡깜빡’이라는 트로트 음원도 출시했다.
 
쉬면서도 활동을 많이 했다. 연말 디너쇼 이야기부터 하자.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소감이 어땠나. 나는 굉장히 걱정을 했다. 선전도 할 수 없고 TV에 나갈 수도 없어서 디너쇼가 될까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노래가 나올 리가 있나. 내가 바짝 늙어서 노래가 잘 안 나오더라.

트로트 음원도 내고 유튜브 계획도 있다고 들었다. 요즘 트로트 전성기라고 해서 ‘깜빡깜빡’이라는 음원을 하나 냈다. 유튜브는 아직 시작을 한 건 아니지만 이야기 중이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콘셉트다. 내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기가 막힐 것 같다.

책도 썼다고 들었다. 내가 이상의 광(狂)이잖나.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픽션을 썼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이상을 데리고 보컬 그룹을 만들었다. 그룹 멤버는 피카소, 말러, 니체, 아인슈타인. 다 내가 좋아하는 천재들이다. 이상이 이들 못지않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책 표지도 그림으로 그렸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미술책도 썼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의 업그레이드다.

부지런하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나. 그걸 어떻게 안 생각해. 매 순간, 계단 한 번 오를 때마다 생각하지. 죽음도 생각한다. 내가 몇 번이나 잠을 더 잘 수 있을까? 아이 돈 노우. 내가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거기서 문제를 내고 답을 말하는데, ‘양귀비가 일찍 죽는다. 마지막 식사로 뭘 먹었을까’가 문제였다. 거기 출연자들이 서로 뭘 먹고 싶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 대창을 이야기하더라. 얼마나 사소해. 산다는 게 그렇게 사소한 거다. 뭐 그렇게 걱정을 하나.

같은 질문 듣는다면 본인은 뭘 먹고 싶나. 현재 나는 우럭매운탕. 예산 우리 동네에 매운탕집이 있다. 그리고 보리굴비. 그다음에 생각나는 거는 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고 그러지만.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살면 되겠나. 이렇게 살면 되는 거지.

역시 그 누구 못지않은 실존주의자다. 나이가 들면, 달라지는 것은 없고 원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실존주의를 좋아하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짧은 순간 존재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된다.

네 번째 사건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나고 보니 어떤 생각이 드나. 실존주의자로서. 오해라는 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해도 없지 않나. 유명하니까 오해가 생기는 거야. 이번에는 쓸데없이 유명해진 거야.

이 해프닝으로 다음 조영남의 전시가 궁금해진 건 확실하다. 맞다. 이 해프닝만으로 충분히 업그레이드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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