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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유지하는 배우, 이병헌

2020-01-08 09:53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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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열심히 끊임없이 하자는 건 아니지만 굳이 쉬지는 말자.’ 이병헌은 40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쉬지 않고 연기하는 그는, 한 작품 한 작품 연기를 해나갈 때마다 배우로서 어떻게 나이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병헌을 만난 건 영화 <백두산> 개봉일이었다. 인터뷰 직전 기분 좋은 소식이 알려졌다. 첫날부터 흥행이 폭발했다는 소식이다. <백두산>은 ‘개봉 첫날 45만 명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12월 개봉작 신기록을 세웠다.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그의 표정도 밝았다.

<백두산>은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이 발생, 갑작스러운 재난에 아비규환이 일어난다는 설정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다. 사상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해 비밀 작전이 펼쳐지고, 북한 무력부 소속의 스파이와 남한 특전사 대위가 접선하게 된다. 이병헌은 작전의 키를 쥔 북한 요원 리준평 역을 맡았다. 남한의 특전사인 하정우와 호흡을 맞춰 팽팽한 연기 시너지를 보여준다. 폭넓은 연기로 큰 스펙트럼을 가진 그는 이번 작품에서 또 새로운 이병헌을 보여줬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북한 요원 캐릭터에 도전했고, 재난 영화에 출연한 것도 처음이다. 총기를 활용한 고난도 액션은 그의 주무기 중 하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 되어 스크린을 압도한다.
 

개봉 첫날 45만 명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숫자에 대한 감각은 잘 없지만, 기쁘고 좋다. 만든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고무되어 있는 것 같다.(웃음)

영화는 어떻게 봤나. 후반 작업을 시사회 전전날 끝냈다고 하더라. 결과물을 보지 못해서 걱정과 기대를 반반씩 섞은 마음으로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감이 엄청났다. 다행이다. 지인들도 재미있게 본 것 같다.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지,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재미있게 본 것 같아서 안도했다.(웃음)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초반에, 강남에 지진 나는 장면이 힘 있게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임팩트가 강했다. 나는 이렇게 힘 있게 시작하는 영화가 좋다.

우리나라 CG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는 반응이 많다. 본인도 그렇게 느꼈나? 물론이다. 너무나. 진짜. 영화 다 보고 나서 업계 사람들이랑 술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했는데, 다들 ‘CG 기술이 이렇게 팍팍 성장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 영화를 찬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재난 영화 출연은 처음이다. 그동안 출연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런 건 아니고, 별로 손길이 안 갔다. 내가 영화를 선택해서 보거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영화를 볼 때 한 번 더 클릭해서 보게 되는 것이 있는데, 재난 영화 쪽으로는 손길이 잘 안 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된 것 같다. 물론 재난 영화가 집에서 볼 영화는 아니라서일 수도 있지만.

한국영화 중 규모가 가장 큰 영화다. 배우로서 임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하나?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영화를 선택할 때 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것까지 신경 쓰기가 힘들다.(웃음) 내가 해야 할 것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다. 투자 규모가 크니까 부담을 가지고 연기해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데뷔 후 북한 요원 연기는 처음이다. 사투리 연기가 어렵지 않았나. 시작하기 전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공부했다. <내부자들> 때는 광주 사투리였는데 이번에는 목포 사투리를 썼다. 북한 사투리를 익혀야 했고,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공부해야 했다. 어려웠는데 막상 몇 번 녹음한 것을 들으면서 연습하고, 촬영 시작되면서 해보니까 익숙하게 리듬을 타게 되더라. 법칙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안 걸렸던 것 같다.

<백두산>은 어떤 영화인가. 볼거리가 풍성한 재난 영화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버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기존의 재난 영화들이 각각의 삶을 옴니버스처럼 보여주다가 재난이 생겼을 때 합체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다. 이 지점이 차별화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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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가 지어준 별명 ‘연기기계’
<백두산>이 개봉 전부터 화제작이 된 것은 이병헌과 하정우의 만남이라는 사실 덕분이기도 하다.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두 배우가 만드는 연기 시너지와 인간적인 스토리에 있다. 하정우의 출연 제안이 있기도 했다.
 

하정우가 출연 섭외 전화를 했다고 들었다. 하정우 전화는 (출연에) 절대적인 선택 요인은 아니고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예전부터 같이 영화 하면 재미있을 텐데 어떤 영화를 하면 재미있을까 생각해왔다.

두 사람의 연기 톤은 어떻게 잡았나. 가장 기본은 시나리오다. 그 안의 의도를 생각하고 심하게 벗어나지 않는 선을 잡았다.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어떻게 저 상황에서 저런 여유와 농담이 나올 수 있지?’ 하던 게 할리우드 영화의 매력이자 비현실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지점의 선이 잘 살아 있는 것 같다.

함께 연기해보니 하정우는 어떤 배우던가. 순발력과 유머가 대단하다. 평소에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그런 것들을 온전히 카메라 앞에서 발휘한다. 평상시에는 재미있고 농담도 잘하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정석의 연기만 하는 배우들이 있다. 하정우라는 친구는 연기에 녹여내는 친구다.

전도연의 깜짝 출연도 화제다. 같이 작업을 해봤던 친구라서 친숙하고 익숙했다. 촬영장에서 보니 반가웠다. 리준평이라는 사람의 가족사를 이야기해주고, 추측할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좋은 배우가 해줘서 다행이었다. (전도연 출연이) 감정이입에 방해가 되거나 튄다고 생각하지 않고 좋다고 이야기해줬다.

현장에서 두 사람의 연기가 대단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찍고 있는데 사람들이 컷마다 박수를 치더라. ‘이 촬영장 분위기가 파이팅이 넘치는구나’ 생각했다.(웃음)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마동석 씨는 촬영장에서는 한 번도 못 봤다. 촬영 중에 ‘너도 이거 한다며?’ 문자만 남겼다.(웃음) 포스터 찍는 날 처음으로 봤다. <놈놈놈> 할 때 망치 큰 거 들고 있던 내 왼팔이었다. 그때는 대사가 없어서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하정우 씨 못지않게 애드리브를 많이 하더라. 재치 있는 친구구나 생각했다.

딸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아빠라서 연기할 때 달라진 지점이 있나? 아이가 없고 미혼인 상태라면, 그 감정을 상상에만 의존하고 연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겠구나, 느끼지 못하고 연기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그런 지점에서 확실히 감정이입하는 데 도움이 된 듯하다.
 

# 데뷔 30주년, 연기의 선
<백두산> 촬영을 마치고 하정우는 이병헌에게 ‘연기기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말에 ‘왜?’라는 질문을 붙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스펙트럼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다. 이병헌이 배우로 살아온 시간은 내년에 30년이 된다.
 

하정우는 본인을 두고 ‘연기기계’ 같다고 말했다. 그게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좋게 받아들일 수도, 이상할 수도 있고 그렇다. ‘좋은 이야기인가?’ 하다가 ‘좋은 이야기로 했겠지’로 생각했다.(웃음) 하정우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는 했다. 심각하고 급박한 신을 찍다가, 테이크가 여러 번이라 중간에 한 시간 정도 쉬고 연결해서 찍었다. 그렇게 쉬다가도 연결해서, 감정의 양이 맞춰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에너지 선을 유지한다는 좋은 뜻인데, 그 말을 연기기계로 표현한 것인가 생각했다.

선을 유지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선이 중요하다. 주관적인 것이지만. 가령 코미디에도 선이 있다. 같은 코미디라도 어떤 이에게는 웃기고, 어떤 이에게는 쓴웃음을 안긴다. 내가 말하는 선은 대체적인 사람들의 평을 듣는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디테일한 것을 알아야 내가 거기에 맞는 감정 상태가 된다. 연기의 선이다.

내년이 데뷔 30주년이다. 감회가 어떤가. 데뷔 30주년이라 특별히 뭘 해야겠다는 건 없다. 나이를 이야기할 때와 데뷔한 지 몇 주년 됐다는 숫자를 들을 때마다 실감이 안 난다. 숫자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긴 시간을 서포트해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내일은 사랑> 때부터 팬인 분들도 계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사실 친한 친구나 가족들도 싸우고 의가 상할 수 있지 않나. 꾸준하게 서포트해주는 게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한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 지친다.(웃음) 한 작품 하고 한숨 돌리고, 에너지가 충만해진 다음 새로운 캐릭터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하면 제일 이상적인데, 작품에 들어가는 상황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하는데 다른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끝나는 시간과 맞물린다, 그러면 쉬고 그럴 수 없다. 현실적으로 안 되니까 이상적인 상황보다는 타이트하게 일하는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욕심인가? 40대 들어서면서 이런 생각은 한다. 좀 더 예민하고, 더 뭔가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굳이 끊임없이 하자는 건 아니지만 굳이 쉬지는 말자. 감정적인 표현이든 육체적인 액션 표현이든, 내가 좀 더 섬세하게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작품을 대함에 있어서 부정적으로 밀어내지는 말자는 생각이 크다. 표현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이번에 이렇게 했으니 다음에는 저렇게는 아니다. 이야기를 계속 본다. ‘이거 재미있다’가 되면 시대적인 배경이 언제고, 캐릭터는 어떤지 본다. 먼저 재미있게 읽는 걸 고르다 보니 중구난방이다. 나는 상관없는데 회사에서는 <매그니피센트 7> 찍었는데 <싱글라이더> 찍어도 괜찮냐는 이야기가 나온다.(웃음) 이야기가 좋은 걸 따지다 보니 장르도 계속 달라지는 것 같다.

재미의 기준은 뭔가.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의 기준은 내 주관이고. 재미라는 게 웃음을 가지고 재미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시대적으로 실제 있었던 상황이라면 지금 한번 이야기해볼 만하구나 싶은 것이 영화적인 재미일 수 있다. 다큐 같은 영화가 재미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배우로서 어떻게 나이 들고 싶나. 나 자신도 한 작품 한 작품 끝내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궁금하다.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어떻게 나이 든 배우가 되어 있을까 궁금증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늙어가야지’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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