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이벤트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
ISSUE
  1. HOME
  2. ISSUE
  3. star&

‘28년 만의 황금기’ 배우 이정은이 필 무렵

2020-01-02 09:44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 엄마, <눈이 부시게>의 착하고 따뜻한 며느리, <타인은 지옥이다>의 고시원 주인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미스터리한 가정부. 올 한 해 이정은이 쏟아낸 연기는 어느 것 하나 존재감이 없는 게 없다. 데뷔 28년, 드디어 꽃이 핀 그를 만났다.
“저는 생각보다 빨리 된 것 같아요. 지금 말고 육십 넘어서, 본격적으로 노역을 맡을 때는 되어야 좋은 연기자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잘됐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해주셔서 그런 영향도 받은 것 같고, 요즘 시대도 한몫을 한 것 같아요. 주목하지 않던 역할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28년 만의 황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 한 해 굵은 행보를 보였던 이정은은 다소 겸손하고 객관적인 답을 내놓았다. 연극배우로 데뷔한 후 짧지 않은 시간을 무명으로 살아왔는데, 그 시간을 힘들고 지루하게 보내기는커녕 당연하게 받아들인 눈치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종영 직후 마련된 인터뷰 자리. 홀가분함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얼굴의 이정은은 여전히 드라마의 여운을 즐기는 중이었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은 출연 배우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나누는 대화처럼 “그 장면 너무 좋았어!”와 “나도!”를 넘나들며 완성됐다. 그사이 그는 동백이 엄마 조정숙이 되었다가, 드라마 시청자가 되었다가, 배우 이정은이 되기를 반복했다.
 
 
본문이미지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이야기 <동백꽃 필 무렵>
동백 엄마는 조금 삐딱선을 타는 사람

1970년생 이정은은 결혼을 안 한 싱글이다. 배우의 개인사를 먼저 꺼낸 것은 그의 엄마 연기를 논하는 데 필요해서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공효진과 다각적인 모녀 관계를 연기한 그는, 본인이 연기한 엄마의 모델이 전통적인 느낌의 것과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고 했다.

“옛날 어머니는 밥상에 생선을 놓고 있으면 자식을 위해 안 먹고 양보하잖아요. 요즘에는 ‘엄마는 머리 안 좋아한다. 몸통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진보적인 편에 속하는 엄마 모델도 있죠. 제가 맡은 엄마는 특별해요. 약간 삐딱선을 타는 엄마예요. 제가 엄마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제 나름의 주관적인 엄마에 대한 모델도 있어요. 자녀에 대한 사랑은 많지만 관계 형성에 있어서는 이모나 고모 같은 엄마 정도인 것 같아요.”

그는 엄마 경험이 없는 본인이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비결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리고 동백 엄마 조정숙이 되어 덧붙였다.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엄마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어요. 조정숙의 가정환경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 있어요. 딸(동백)을 버리고 살아온 죄스러운 마음이 크니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상황이었죠. ‘차라리 만나지 말걸’ 이런 생각도 들고. 만나서 좋기도 하고 더 괴롭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처음 <동백꽃 필 무렵>의 대본을 받았을 때, 이정은은 출연을 고사했다. 전체 대본이 아닌 인물 정보만 먼저 받았는데 치매를 앓고 있다는 설정이 마음에 걸렸다. 지난해 출연했던 <아는 와이프>와 이미지가 반복된다는 점이 고사의 이유였다.

“감독님이 ‘치매인 척하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이유는 차차 설명해드리겠다’라고만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와 자식 이야기라는 말에 확신이 생겨 출연하게 됐어요. 회가 거듭될수록 대본 기다리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양파 껍데기를 까는 것처럼 재미가 있었어요.”

그는 임상춘 작가의 공을 높이 샀다. 작가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시청자들은 물론 배우들도 촬영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까불이(극 중 살인자)를 알아가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까불이가 유출되지 않기 위해서 대본은 각자 분량만 받아서 보는 식이었다고.

“임상춘이라는 자그마한 체구의 삼십 대 여인이 이렇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사를 쓰는 게 상상이 안 가요. 글에 거대한 힘이 있어서 저도 나이가 많은 분인 줄 알았어요. 보조 작가도 없이 혼자 어떻게 모니터링을 하고 자료 수집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엄청나다고 생각해요.”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 요인으로 작가의 필력과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을 꼽았다. “사람들이 내 가족, 내가 속한 집단만 생각하면서 사는데 이 작품은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예요. 내가 이웃이 되어주고, 서로의 도닥거림 속에서 자립하는 이야기인 거예요. 동백이를 통한 성장 이야기가 좋아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오고, 모녀 관계를 다루는데도 다각적인 입장을 만나는 재미도 있고요.”

방송은 끝났지만 <동백꽃 필 무렵>에 출연한 배우들은 아직도 드라마 속에 있는 것처럼 끈끈한 팀워크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단체 카톡방으로 활발히 근황을 주고받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할 것 같다고. 웃는 모습이 닮아 실제 모녀 사이 같다는 말을 들은 공효진은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가 있으면 링크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근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본문이미지

연극무대에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까지
28년 동안 단 한 번의 싫증이 없었던 연기 생활

코믹과 공포를 넘나드는 연기로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이정은은 <기생충>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요즘 늦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스스로는 이만한 얼굴이나 이만한 몸매가 될 때까지 그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남겼다. 감동적인 내용이었다는 댓글이 많았다고 전하니, 정작 본인은 집에 돌아와 영상을 보고 많이 웃었다고 말했다.

“<기생충>은 워낙 자신이 있었어요. 좋은 시나리오는 좋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제 역할도 좋았어요. 주변에서도 (제 역할이) 욕심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좋은 역을 연기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여우조연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출중한 배우들이 많았는데, 작품의 배역이 주는 임팩트에 좋은 성적을 주신 것 같아요.”

영화 촬영 현장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배우로서 행복한 곳이었다.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배우로서 한 단계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 바라보는 내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여러 가지의 내가 있더라고요. 내가 아는 내 모습이 내가 아니었어요. 여러 가지로 활용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면 좋은데, 봉 감독님은 그렇게 해주셨어요. 안경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어요.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새로운 제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정은은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1년에 20만원을 버는 등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그는 마흔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연기학원 선생님, 마트 직원, 녹즙 판매 등을 하면서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돈이 없어서 동료 배우들에게 목돈을 빌린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신하균, 우현, 지진희에게 5000만원이라는 돈을 빌렸고, 그 돈을 다 갚기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렇게 힘든 현실 속에서도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꿈을 놓칠 수 없었던 힘은 설명할 수 없는 연기에 대한 끌림이었다.

“제가 싫증을 잘 느끼는데, 연기는 그렇지 않았어요. 다른 거는 못하면 자극도 안 되고 그냥 안 하고 마는데, 이건 못하면 화가 나고 좀 더 잘하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못하니까 더 하게 되고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천운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이게 진짜 좋아요. 아주 자그마한 역을 했을 때도 좋았던 것 같고, 지금은 더 좋아요. 배우 하기 잘한 것 같아요.”

올 한 해 굵직한 작품들로 꽉 채운 그의 행보는 내년에도 똑같이 이어질 예정이다. 설경구와 함께 출연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와 김혜수와 함께 출연한 박지완 감독의 <내가 죽던 날> 촬영을 끝낸 상태다.

그리고 새해부터는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촬영에 들어간다. <오 나의 귀신님>, <아는 와이프> 등을 함께한 양희승 작가의 신작으로, 이번에는 김밥집 사장님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지 두 달 쉬어요. 즐거운 휴식이에요. 부모님이 7분 거리에 사시는데, 이번 작품을 하고 나니 더 신경을 써드려야 할 것 같더라고요. 4개월 만에 뵈러 갔어요. 쉬면서 부모님께도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의 전작들과 다음 행보를 듣다 보니 추리나 코믹, 드라마는 있는데 멜로가 없어 보였다. 도전해볼 생각이 없냐 물으니 진지한 배우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시도를 선호하는 배우들도 있으시죠. 그런데 지금 저는 말랑말랑한 멜로에는 관심이 덜한 시기인 것 같아요. 요즘 하는 생각은, 왜 남자하고만 연애하는 걸 멜로의 기준으로 삼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고양이나 개와도 멜로를 할 수 있고, 에이아이(AI)와도 멜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장선에서 멜로보다는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 다양한 연기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댓글달기
글쓴이    비밀번호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번호 커버이미지
이번호
서점 이벤트
  • 예스24
  • 교보문고
  • 인터파크
  • 알라딘
  • 이달의 목차
  • 지난호보기
  •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