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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이든 괜찮다 김희애의 위로

2019-11-29 17:28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리틀빅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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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서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니. 와~ 너무 행복하고 좋다!’ 며칠 전, 가을의 매력이 묻어나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김희애는 혼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촬영이 힘들어 ‘이 좋은 계절에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고 투덜거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슬며시 웃었다는 뒷이야기도 털어놨다.
당연하게 늘 내 곁에 있던 것이 새삼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김희애는 요즘 배우로서의 삶이 그렇다. 데뷔 이후 당연한 듯 해온 연기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전히 ‘김희애’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여배우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비좁은 한국 영화계에서, 얼굴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감 있는 이름이 바로 ‘김희애’니 말이다.

영화 <윤희에게> 개봉을 앞두고 마련된 인터뷰 자리, 김희애는 ‘좋은 배역이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영화를 이끄는 원톱 주인공에 곧 방영이 시작될 드라마 촬영에도 한창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며 천생 배우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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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도 시나리오가 되는구나!’
김희애의 첫 퀴어 영화 <윤희에게>

<윤희에게>는 멜로 영화로 소개되지만 파격을 담은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우연히 엄마의 첫사랑에 대해 알게 된 딸이 엄마를 위해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진다. 설원으로 뒤덮인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러브 스토리는, 임대형 감독의 말처럼 대체 불가능한 배우 김희애가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성적인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그것이 설명된다.

이번 작품을 두고 (출연)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라는 말을 하셨어요. 세고 강력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걸 소박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게 놀라웠어요. 과연 이런 영화가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선호하지 않는 소재인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써 내려간 것이 반가웠어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

포스터 이미지만 봐도 꼭 맞는 옷을 입으셨어요. 좋은 배역을 주셔서 감사했어요. 한 장 한 장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재미있게 읽고 이해가 되는 작품이면 배역의 크기에 관계없이 참여하고 싶거든요. 이번 작품 역시 시나리오의 힘이 컸어요.

구체적으로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끌리던가요. 이런 이야기가 시나리오가 되는구나, 싶었어요. 신인 감독이 세련되게 잘 쓰셨더라고요. 남자분이 어떻게 중년 여성의 외로움을 이렇게 잘 다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미지로만 봤을 때는 누가 봐도 김희애가 입었어야 할 옷이지만, 연기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었을 것 같아요.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어요. 잔잔하게 흐르다가 마지막에 응축된 감정이 폭발하는데, 그 장면을 위해서 많이 준비했어요. 두세 달 전부터 비슷한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나 책을 보면서 담금질을 했어요. 중압감을 느껴 하늘에 맡기자는 심정으로 연기했는데, 제 힘이 아니라 시나리오의 힘으로 결과물이 잘 나온 것 같아요.

시사회 반응이 좋더군요.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어요. 어떤 분이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것처럼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남겨주셨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어떤 사랑이든 존중받아야 하는데, 자기를 희생하고 평생 숨죽여 사는 여성들도 많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힐링이 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퀴어 영화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현장에서 연기할 때 소재의 압박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어요. 그저 하나의 작은 소재로만 느꼈어요. 딸과 여행을 가는 과정이 담겨 있잖아요. 평소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멜로 영화라기보다는 로드무비라고 느껴졌어요. 한 여자의 잊고 있던 추억을 찾아서 딸과 함께 떠나는 잔잔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어요? 일본 배우도 출연하는데. 나카무라 유코 씨는 현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깊은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연기해야겠다 생각하고 최대한 집중했어요. 짧은 신이었지만 몰입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딸 역의 김소혜와 딸 친구 역의 성유빈은 현장에서 굉장히 프로페셔널했어요. 수줍고 어린 친구들인데 슛만 들어가면 눈빛이 달라지면서 잘해내더라고요.

실제로는 두 아들의 엄마인데, 딸 엄마가 되어본 소감은 어땠나요. 극 중에서 딸이 얼마나 예뻐요. 자기가 엄마인 것처럼 굴잖아요. 저는 더 이상 자식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다들 딸이 있으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들 엄마와 딸 엄마는 같은 엄마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임대형 감독은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작품을 썼다고 했어요. 김희애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뭔가요. 제가 사랑을 보는 시각이 좀 회의적이라.(웃음) 모든 것은 끝이 있으니까, 물론 하늘에서 내린 인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것이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감독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해요. 극 중 윤희는 딸과 둘이 살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생각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랑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형태이든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죠.

영화 <윤희에게>는 한 여성의 성장담이기도 해요.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본인은 어떤 공감을 하셨나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없어요.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년 이후에는요. 자신을 아끼는 것만큼 소중한 것도 없겠죠. 저도 그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좀 더 생각하고,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예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친구를 안 만나면 불안하고 우울했는데, 이제는 만나면 우울하죠.(웃음)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요. 외롭지 않고 좀 더 충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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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일한 보람 느끼는 요즘
좋아진 제작 환경 행복하고 즐거워

요즘 김희애는 한창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촬영 중이다. 내년 상반기 방영될 드라마에서 그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를 연기한다.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한다는 그는 이번에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배우로서의 매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지금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고 한다.

늘 주류에서 활동해온 배우예요. 기쁘게 생각해요. 제 나이에 주류로, 메인으로 나서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윤희에게>와 같은 작품은 너무 감사하죠. 제게 기회가 온 것도 감사하고요. 앞으로 저희 같은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면 잘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는 데 보탬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배우로서 책임감도 크시죠? 한국영화의 여성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어요. 제가 너무 오래 해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여배우의 수명을 늘리는 데 일조를 하면 좋겠어요. 제가 나문희 선생님을 보면서 위로를 받듯이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점점 여성영화, 여배우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체감해요. 더 자리를 잡으려면 작은 소용돌이가 더 많이 일어나야겠죠. 재능 있는 분들이 다양한 작업을 해주시면 더욱 결과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랜만에 드라마 출연 소식도 알리셨어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예요. 복합적인 인물을 맡았어요. 연기하는 재미가 있어요. 드라마 촬영하면서 하는 생각은 일을 놓지 않은 보람이 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촬영장에 있으면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면서 투덜댔는데, 이제는 ‘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나 연기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는구나. 너무 행복하고 좋다’ 해요.(웃음)

제작환경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죠? 맞아요. 일을 놓았더라면 이런 세상을 못 볼 뻔했죠.(웃음) 예전처럼 밤늦게까지 무리하게 촬영하지 않아요. 지금은 정해진 시간을 준수하는 편이고, 혹시 길어지면 다음 날은 쉬는 식으로 해요. 제작진이 프로페셔널해서 촬영이 즐거워요.

늘 뭔가를 배우시잖아요. 요즘은 뭘 배우시나요. 요즘은 일주일에 4일 촬영하고, 스케줄이 없을 때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요. 피아노는 배운 지 2년이 되어가요. 할 때는 고통스러운데, 힘들지만 보람을 느껴요. 너무 힘들어서 안 하고 살아도 되는데 싶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안 하고 살았으면 어떻게 될 뻔했나 싶어요.

지겨운 질문이지만, 한결같은 외모 유지 비결도 알려주세요. 너무 여러 가지라. 일을 놓지 않고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뷰티 관리도, 건강도 자연스럽게 챙기게 되더라고요. 평소 제 삶은 지루해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심플하게, 단순하게 살고 있어요. 그날그날 하루를 살아내고, 그런 하루가 모아지면 일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저축이 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건강과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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