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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체질 천우희

2019-11-14 10:09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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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가 하는 말을 글로 옮기니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문장이 됐다. 어떤 질문에도 조리 있는 답을 내어놓는 것은 그만큼 평소 본인의 소신과 생각이 탄탄하다는 뜻이다. 견고한 본인의 논리와 소신을 가진 배우, 천우희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천우희의 화법에는 강한 끌림이 있다. 침착하고 담백한데, 그럼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본인이 해야 할 말을 놓치지 않는 영리함도 있다. 기교 없이 진실하게 자기의 생각을 내어놓는 똑똑한 배우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새삼 <한공주>, <곡성>, <우상> 등 그가 출연했던 강렬한 작품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작은 몸으로 보여준 그 강렬하고 굵직한 모습이 이렇게 기교 없이 담백하고 정직하게 연기한 결과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실감 나는 30대 여성을 연기한 천우희가 다시 한 번 같은 나이대의 인물이 됐다. 다만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영화 <버티고> 속 30대 여성 서영은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계약직 회사원이다. 달콤하고 말랑한 연애 이야기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연애에서도, 가정에서도 힘든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제목처럼 그가 연기한 서영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일상 담은 공감 연기
힘겨운 30대 여성의 얼굴 <버티고>

작품 출연을 앞두고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배우들의 고민을 단순하게 나누면 두 가지다. 나와 반대되는 모습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와 닮은 표현을 할 것인가. <버티고> 시나리오를 손에 든 당시 천우희는 본인의 나이에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에 갈증이 있었다고 한다. 공감하거나 일상을 담을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현실적인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봐요? 지금까지 출연작이 조금은 현실과는 떨어져 있다 보니 주변 선배님들 조언이 많이 있었어요.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걸 많이 하라”고요. 서른에 접어들면서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 공감하거나 일상을 담을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영화 <버티고>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하게 되었죠.

<버티고> 속 서영이 처한 현실이 답답해요. 비정규직에 가정과 연애에서도 상처를 받죠. 어떤 마음으로 캐릭터에 임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또 누군가에는 너무 힘겹고 버거울 수 있어요. 자기 딴에는 최선의 노력이라 생각하며 버텨온 것들이지만, 편해지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일 수 있어요.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서영이 그렇게 답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배려와 노력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공감을 느꼈나요. 30세를 갓 넘은 계약직 여성이라고 특정지어 나오기는 하지만, 포괄적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압박감과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잖아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고 고독할 때도 많고요. 그런 부분에서 공감이 됐어요.

시나리오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어요. 공감이라는 감정이 되게 재미있는 게 뭐냐면, 어떤 공감은 너무 공감해서 불쾌할 때가 있고 어떤 공감은 위로나 위안을 줄 때가 있어요. 아주 좋은 퀄리티 높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순간적으로 공감된다고 하는 작품도 있어요.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느낄 때였고, 1년 동안 작품을 안 할 때였어요. 작년이에요. 그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마지막에 “당신은 떨어지지 않아요. 괜찮아요”라는 대사가 저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스스로 자신감이 없고 의심하던 시기에 들으니까 눈물이 났어요.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시기에 홍보가 되면서, 뜻하지 않게 여성영화로 분류되기도 해요. 저는 영화는 개개인이 느끼는 바가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해석도 감상도요. 그래서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성 서사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여성영화로 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이야기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받아들이시는 관객마다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것을 규정해놓고 “이렇게 봐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멜로가 체질>에서는 “서른 되면 괜찮아져”라고 말했는데, <버티고>에서는 “네 삶은 괜찮니?”하고 질문을 던지더군요. 천우희는 서른 되고 괜찮아졌어요? 안 괜찮아요.(웃음) 괜찮은 면도 없지 않아 있어요. 경력을 쌓아가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나 아직도 어색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마흔이 되고 쉰이 된다고 해도 어려웠던 것들은 계속 어려울 것이고요. 제가 우러러보는 선배님들도 아직도 연기가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지금은 그걸 찾아가는 나름의 과정이겠죠?

배우로서 또 인간 천우희로서 버티는 동력은 뭔가요. 버티려고 버티는 건지 상황에 놓이니 버티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저는 스스로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을 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겪었을 때 이겨내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힘들 때는 투정도 부리고 엄살도 떨고, 무너지면 무너진 대로 주저앉았다가 또 힘내서 가고. 그렇게 흐름에 맡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은 그렇게 오래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아플 때는 그냥 아파하고 괜찮아졌다 싶으면 힘내서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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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슬럼프 이후 만난 확신
연기가 체질

<버티고>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당시 천우희는 배우로서 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영화 <우상> 촬영 후 모든 것을 소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연기 생활에 의욕을 잃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낸 시간은 그를 조금 더 자유롭게 했고, 연기를 평생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져다줬다. 그래서 지금 배우 천우희의 시간은 행복하고 단단하다.

<한공주> 이후 쉬지 않고 빠르게 지나왔어요. 연기 경력이 15년 정도 되죠? 한 해에 작품을 두세 편씩 했다는 기사가 있더라고요. 15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전에는 그냥 오디션 보러 갔다가 연기하고 오는 거였어요. 연기에 대한 진중한 생각을 한 이후로 딴 데 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이 언제인가요. <써니> 이전까지는 많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공주>로 주목을 받아서 무명생활을 힘겹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오디션을 보는 것마다 됐어요. 연기는 재미있는데 방법을 모르니 그냥 오디션이 있으면 가서 봤어요. 현장을 느끼면서부터 배우를 평생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상> 촬영 끝나고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어요. 어떤 지점의 고민이었나요? 시기적으로 그랬어요. <한공주> 이후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책임감도 컸어요. 작업 기간이 길어져서 7개월 동안 촬영했는데, 그 시간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때는 눈썹이 없어서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로 힘들 때이기도 했어요. 모든 걸 다 소진했다고 스스로 느낄 때였죠. 복합적인 것들이 오니 처음으로 의욕을 잃었어요.

그 시간은 본인을 어떻게 성장시켰나요. 나름 1년 가까이 쉬면서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덕에 올해 열심히 에너지를 받으면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보다 자유로워진 부분도 있어요. 스스로 극으로 몰아붙이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부족해도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니 미련은 갖지 말자는 여유가 생겼어요.

쉬면서 뭐 했어요? 환기를 많이 시키려고 했어요. 집에 있다 보면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잖아요. 친오빠나 시간 맞는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런 시간들이 좋았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왜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세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상처가 되어 마음을 닫을 때도 있는데, 그만큼 많이 만나고 좋은 경험이 있으니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충분히 좋은 기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호감을 가질 때는 이 직업이 좋구나, 감사하구나 느낄 때가 많아요.

인간 천우희로서 괜찮아진 부분이 있다면? 제가 제 밥벌이를 하니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고 친구들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크지는 않지만 작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본인의 소신이 확고해져서인지, 편해 보여요. <멜로가 체질> 작업을 하면서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에요. 실수하는 거 좋아하지 않고 연기하는 것 이외의 것을 보여주는 데 쑥스러움이 많았는데, 드라마 작업을 통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든 괜찮다고 생각이 자유로워졌어요. 연기할 때도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더라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 천우희는 어떤 사람이에요? 평범해요.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자신도 자신을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냥 수더분하고 모난 구석이 없고 그래요. 주변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이기적이지는 않아요. 성격적으로 유난하거나 예민하지 않고요. 긍정적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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