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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가 아이를 낳고 보니…

2019-09-20 09:33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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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지만 두려운 일. 정도를 따지자면 두려운 게 조금 더. 수석발레리나 김리회에게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아이를 낳아도 변함없이 춤을 출 거라는 확신을 스스로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냈다. 김리회는 이제 엄마이자 발레리나다.
어떤 답이 돌아올지 알면서도 뭐 하고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종일 연습을 했다”는 김리회의 답변에 ‘역시’ 싶었다. 아이를 낳기 2주 전까지도 발레 연습을 한 그이니, 이날 연습도 지극히 당연한 일과였으리라. 더욱이 출산 후 첫 복귀 공연 <백조의 호수>까지 1주 남짓 남겨둔 때였다.

올해 1월 김리회는 딸 다인 양을 얻었다. 그러고서 국립발레단으로 다시 출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100일. 몸조리 기간으로 따지자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만 발레리나 인생엔 엄청난 공백이다. 임신을 일부러 미뤄온 것도 그래서였다. ‘체형 유지’가 숙명이기에 그 누구보다 큰 용기를 내야 할뿐더러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출산 후 무대에 돌아온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러니 김리회는 선례를 남긴 셈이다. 수석발레리나로서도 워킹맘으로서도.

출산한 지 7개월 정도 됐네요. 몸 상태는 많이 돌아왔던가요. 모르겠어요. 이 안에 장기를 비롯한 모든 근육들의 구조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래도 춤출 때 통증이 있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아직은.(웃음) 나중에라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일단 주어진 공연과 역할을 열심히 준비해야 해요.

발레단 복귀를 정확히 언제 했죠? 4월이요. 의도한 게 아닌데 아기 낳고 100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상대적으로 회복이 빠르고 재활 선생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이전에도 그 정도 쉬어본 적은 있었나요? 이번이 최장이에요.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하면서 제대로 쉰 적이 없어요. 피로 골절이 왔을 때도 3개월밖에 안 쉬었거든요.

출산휴가가 되게 부담스러웠겠는데요. 임신 계획도 쉽게 못 했을 거고요. 실은 계획하고 아이를 가진 건 아니었어요. 발레를 그만두고 가질 생각이었거든요. 남편한테도 “나 춤 더 추고 싶어. 애는 조금 지나서 갖자”고 했었고요. 근데 정말 갑작스럽게 아이가 찾아왔어요.

마냥 기쁠 수가 없었겠어요. 아휴.(웃음) 제가 춤을 너무 많이 춰서 몸은 힘든데 컨디션은 좋았을 때예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몸 자체는 지쳐가는데 동작은 술술 되는 컨디션이요. 근데 저한테 아이가 생겼대요. 되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아, 내가 춤을 못 추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어요. 강수진 단장님께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엉엉 울고. 단장님께선 “축하한다”면서도 “리회 씨 춤 해야 할 것 많은데”라며 우시고.

남편 반응은요? 먼저 “너 괜찮아?”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발레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지 아니까. 어찌 되었든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고, 우리 아이가 생겼다는 건 저도 오빠도 행복할 수밖에요.

바로 보이는 변화가 몸매잖아요. 발레리나라서 특히 민감하지 않았나요? 매일 아침, 연습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저녁까지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해요. 하루 반나절 이상 그러고 있으니 제 몸을 얼마나 잘 알겠어요. 살이 조금만 붙어도 단박에 아는데 임신하고 찌는 살은 또 다른 거예요. 1㎏이라 해도 임신 전과는 부위가 다르게 찌니까 너무 보기 싫었어요. 한동안 발레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거울을 안 보고 지냈죠. 그래도 어느 순간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내 몸이 귀엽기도 하고.(웃음) 살면서 또 언제 이래보겠나 싶어서 그때부터 막 먹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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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춤출 수 있을까’

무대에 오르지만 못했을 뿐 만삭에도 토슈즈를 신고 클래스(몸을 풀고 신체를 만드는 시간)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석 달이 넘는 공백, 더군다나 출산을 한 무용수가 이전과 같은 몸을 바라는 건 욕심이었나 보다. 다쳐서 쉬는 것과는 또 다른 공포감이 엄습했다.

매일 하던 발레를 멈춘다는 건 어떤 심정이었나요. 그건요, 말로 표현이 안 돼요. 배 나와도 운동을 했던 터라 ‘아이 낳고 2주 정도 조리하고 나면 바로 발레를 할 수 있겠지’ 했는데(웃음) 몸이 너무 달라진 거예요. 만삭 때보다 더 부어요. 애가 나왔는데도 배는 안 들어가지 관절에 힘도 없지 핸드폰도 못 들어서 떨어트리지. 저희는 워낙 섬세한 근육까지 쓰기 때문에 더 예민했을 수도 있지만 너무 심각했어요. 내가 진짜로 발레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확 몰려오더라고요.

엄마가 된 무용수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렵군요. 출산하고 복귀하신 분들은 국립발레단에 많지만 수석무용수의 경우엔 너무 옛날 일이고, 전반적으로 국내에선 흔하지 않아요. 저도 그렇고 대다수 발레리나들이 임신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죠.

다행히 복귀했어요. 스스로 한 노력도 분명하지만 주변 도움도 뒷받침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에요. 오빠는 제가 발레에 대한 생각 외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게끔 계속 도와줬고… 단장님은 절 끊임없이 믿어주셨어요. “리회 씨 믿는다, 꼭 잘돼서 돌아올 거다”라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외국 경험이 많으신 분이라 거기서 본 선례들을 전해주시고요. 단장님의 믿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다시 출근한 날 너무나 반겨준 동료, 후배들도 고맙고요. 그날은 잊을 수가 없어요.

리회 씨 복귀로 국내에 선례가 늘었어요.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그건 너무 거창한데요.(웃음) 사회적 영향이나 분위기를 떠나서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이를 낳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졌으면 좋겠어요. 제 복귀도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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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되어보니

딸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큰 눈이 다 휠 만큼 웃는다. 아이와의 일상을 전하며 가장 많이 언급한 건 “행복”이다. 연습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아이로 시작해 아이로 끝나는 일과가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단다.

아이가 있으니 좀 달라요? 너무 달라요! 이전엔 연습 마치고 집에 가면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요샌 그게 없어요. 내 예쁜 아기를 보면 그 힘듦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행복해서 피로가 바로바로 리프레시되는 기분. 아이가 주는 행복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커요. 마치 선물 같고.

일과도 예전 같지 않겠어요. 새벽에 아기 일어나면 놀아주다가 발레단 출근을 해요. 발레단에서 나오면 운동하러 갔다가 집에 와서 또 아이랑 놀고, 이유식 만들고 그러다 잠들고. 이 생활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마냥 좋아요. 뭐랄까, 예전엔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면 지금은 제가 시간을 더 쪼개서 알차게 쓰는 느낌이 들어요.

공동육아 시대인데 남편은요. 되게 (아이를) 잘 봐요. 사업하는 사람인데 주말에는 저 힘들까 봐 약속 다 빼고 새벽부터 아기를 돌봐요. 저더러 더 자라고, 외출도 하라고.

어른들이 “너 닮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엄마가 되니까 공감해요? 아… 엄마한테 괜히 더 미안하고 힘들어하시는 것도 못 보겠고. 근데 지금 엄마가 애를 봐주고 계시네요.(웃음)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어요? 친구 같은 엄마요. 무슨 말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 저는 엄마가 조금 어려워서 오히려 아빠한테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뭐가 조금만 생겨도 아빠한테 전화하거든요.

딸에게 바라는 건요? 혹, 발레리나가 되겠다 하면요? 건강하게만 컸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바라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애가 발레를 너무 원하고 재능이 넘치면 시켜야겠지만 음, 제가 했던 걸 똑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안 시킬래요.(웃음)
 

# 배우 출신 사업가 남편

아이와 꼭 닮았다는 아빠, 김리회의 남편은 배우 출신 사업가 강도한 씨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덕에 아내의 생활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남편이기도 하다. 꽃바구니가 배달되면 모든 단원들이 “안 봐도 리회 남편이 보낸 거네”라고 할 만큼 한결같은 외조로 유명하다.

남편이 무대 위 아내를 보면 으쓱할 것 같아요. 떨려 죽겠대요. 왜냐하면 평소 제 모든 상황을 다 알잖아요. 어디가 아픈지 어떤 동작을 힘들어하는지.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발레를 부전공으로 했던 사람이라 동작도 잘 알고요. “너 그거 실수했지, 그거 이상했어”라고 하는 거 보면 어떨 땐 저보다 선수예요.

10년 가까이 지인으로 지내다 결혼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알고 지낸 것만 10년이고 연애한 지 1년도 안 돼서 결혼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저희가 부부가 된 게 너무 신기해요. 제가 꿈꾼 남편상과 정반대거든요. 일단 외모부터.(웃음) 직업도 그래요. 무용수는 동종업계라 싫고 배우는 끼 많을 것 같아서 싫고, 사업가는 그냥 싫었는데 오빠는 그걸 다 해본…(웃음) 근데 오빠를 깊게 알고 보니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가정적이고 멋진 사람이더라고요. 결정적으론 오빠네 가정, 시댁을 보고 결혼했어요.

시댁이 왜요?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선 흔하지 않은 분위기예요. 정말 화목 그 자체죠. 아버님이 참 유머러스하시고 항상 어머님 위주로 모든 게 돌아가요. 여행지도 어머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온 식구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같이 밥 먹고 영화도 봐요. 그래선지 오빠도 되게 가정적이에요.

리회 씨는 어떤 아내인지 묻고 싶네요. 저는 정말 나쁜 와이프! 발레만 하니까…. 아기한테도 너무 미안해요. “발레 하러 갔다 올게” 하면서 매일 나가고. 너무 못 챙겨줘서 미안할 따름이죠. 애 낳기 전엔 주말만이라도 뭘 만들어주곤 했는데 요샌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요. 오빠한테 정말 고맙고 미안해요.

딸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하겠는데요. 아, 진짜 그럴 것 같아요. 다인이가 아빠를 진짜 많이 좋아해요. 뭘 먼저 말하든 “엄마” 소리 들으면 저 울지도 몰라요.

다섯 살, 발레를 시작한 꼬마가 아이를 둔 엄마 발레리나가 됐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어릴 땐 국립발레단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고 그걸 이루고선 여기서 오래 춤추고 싶은 게 꿈이 됐었죠. 이젠 제가 무대에 서는 걸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꿈이에요.

‘엄마’, ‘발레리나’ 중 어느 수식어가 더 좋아요? (웃음)무대에선 오롯이 발레리나! 그 외엔 엄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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