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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 다시 태어난다면…

2019-08-07 09:38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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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결국 리듬체조다. 손연재는 은퇴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2년여 고민한 끝에 그 답을 ‘리듬체조’라 내렸다. 전과 다르다면 선생님이 되어 매트 위에 선다는 것. 그의 표현대로 “또 다른 사회”에 들어섰다. 여전히 앳된 얼굴이지만 마주한 눈빛, 답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한결 단단함이 배어 있다.
첫인사를 건네고 막 자리에 앉는 손연재에게 여자아이가 뛰어왔다. 네다섯 살로 보이는 아이는 손연재의 다리를 붙들고 옹알댔다. 단번에 알아듣기 힘든 발음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보려는 찰나, 손연재는 진작 이해하고 응답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 듯 꽤 능숙해 보였다. 아이가 그를 부르는 호칭 그대로 제법 ‘선생님’답다.

손연재는 올해 3월부터 리듬체조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규 수업을 주도하진 않고 매주 한 번 특별 수업 개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중이다. 그가 리듬체조를 처음 시작한 연령대 아이들이 수강생이란다. 이젠 ‘교육자’로 바라보면 되겠느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육자라고 하긴 애매해요. 선수를 키워내는 건 아니니까. 아이들이 체조를 배우고 싶어도 어딜 가야 할지 모르는 실정이기 때문에 여기가 하나의 방법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리듬체조가 더 알려져서 대중화된 스포츠로 만드는 게 단기 목표고요. 언젠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곳이 되길 바라는 욕심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저도 어릴 때 정말 우연한 기회에 지나다 본 체조교실을 계기로 선수가 된 거라, 제 학원에서 배운 아이 중에 선수가 나오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아요.”
 

떼려야 뗄 수 없는 리듬체조

2016년 리우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선수생활 이후 방향을 잡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다고.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이었어요. 스스로 뭘 원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아예 유학을 가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는데 결국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해야겠더라고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래서 돌아왔어요.”(웃음)

비로소 리듬체조로 회귀했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정작 리듬체조와 떨어진 적은 없는 듯하다. 학원을 운영하기 전엔 ‘짐네스틱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리듬체조 대회를 개최한 적도 있다. 지난해 처음 열린 이 대회에는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총 5개국 100여 명의 리듬체조 유망주와 코치들이 참가했다.

“꼭 선수를 꿈꾸지 않아도 아이들이 한 번쯤 대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기회가 없는 거예요. 내가 선수라면 나가고 싶은 대회를 만들어보자 했어요. 욕심 좀 부려서 국제대회 규모로 만들었어요. 조명도 갈라 쇼만큼 하고. 수상 결과와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추억이자 성장 발판이 됐길 바라죠. 아, 올해에도 해요. 제가 대회를 직접 뛰지 않는 이상 후원 받는 게 힘들긴 하지만(웃음) 꾸준히 개최하려고요.”

손연재의 시간은 은퇴 전과 후로 나뉜다. 그는 그것들을 “나만의 사회”와 “또 다른 사회”라고 칭한다. 또 다른 사회는 예상한 것 이상으로 어려운 곳이었다.

“운동만 하다가 사회에 나온 거잖아요. 물론 이전에도 사회에 있었다지만 그건 저만의 사회였고. 지금 사회는 되게 어렵고 무서워요. 사실 운동선수 할 땐 세상에서 그것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 다들 나름의 힘듦이 보였어요. 이를테면 내가 운동한 만큼 친구들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구나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미숙한 게 마냥 두렵지만은 않아요. 열심히 배우고 있고 다시 성장하는 기분이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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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유명한 사람 아니길

많은 사람이 손연재의 은퇴 이후 모습을 두고 연예인 혹은 방송인을 예측했다. 선수시절 수려한 외모 덕에 더욱 주목받은 건 사실이거니와, 예능프로그램이나 TV 광고에 출연한 경험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리듬체조가 홀로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는 종목인 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익숙할 거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제안(연예계 진출)이 정말 많았고 거의 당연하게 여겨졌었죠. 근데 안 했어요. 음, 안 하기보다 못 했어요. 제가 체조를 해서 연기도 잘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아닙니다.(웃음) 성향이 안 맞더라고요. 아예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에요. 나중에 후회할까 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적도 있는데 역시나 안 맞아요.(웃음) 그렇다고 방송을 절대 안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리듬체조를 더 알리고 저변을 넓히려면 가끔 모습을 비추면서 소통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요. 좋은 모습으로 만나 뵐 수 있는 프로그램 있으면 충분히 할 거예요.”

오랜 무대 경험으로 대중의 시선이 친근할 법도 하건만, 주목 받는 삶의 기분을 묻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모순인데… 체조할 때 관중의 시선은 편하게 즐기고 매트에서 내려왔을 때 받는 관심은 되게 부담스러워요. 물론 주목받는 사람인 덕분에 제가 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릴 수 있는 건 장점이죠.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유명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진 않아요.”

담담히 대화를 이어가는 얼굴에서 애써 누르는 감정이 읽혔다. 그도 그럴 것이 공인을 향한 잣대에서 그 역시 자유로울 순 없었을 터. 대회 성적 외에도 몸매 변화, 공개 연애, 대학생활 등 그의 일상은 화제성이 높았다.

“힘든 시간이 너무 많았어서.(웃음) 이런저런 관심들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최대한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해도 사람이니 힘들 수밖에요. 스스로 이겨내야 했어요. 이젠 최대한 안 듣고 안 보려고 해요. 악플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날 싫어해도 괜찮겠다 싶어요.”(웃음)

‘악플’ 하면 한때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돼 떠돌던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손연재는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생각을 바로 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면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아실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제가 (논란을 두고) 설명하는 것 자체도 웃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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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모습 보여주고 싶어

올해로 스물여섯 살. 요즘의 손연재는 또래와 다를 바 없이 친구를 좋아하고, 연애하고 싶은 평범한 20대다.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자 내내 경직돼 있던 자세부터 편하게 고쳐 앉았다.

“처음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젠 문화적으로 잘 맞는 친구들이 생겨서 대화하면서 많이 배워요. 제가 선수였다는 사실을 잘 인지 못 하는 친구들이라 고마워요. 어쩌다 문득, ‘아 맞다. 너 국가대표였지?’라고 하는 애들이니까요.”(웃음)

향후 연애에 관해서도 스스럼없이 덧붙였다. 그는 “억지로 숨기진 않아도 일부러 공개는 안 할 것”이라며 “공인이 아닌 사람, 나를 평범한 손연재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손연재는 최근 유튜브 채널 ‘연재월드SonYeonjae’를 개설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춤을 추는 등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대회 인터뷰를 통해 비치는 굳은 모습과 다르게 여유로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에서다.

“매체 속 저는 한정적이잖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와 진짜 저는 달라요. 굉장히 덤벙대고. 실제로 저를 보신 분들이 하시는 몇 마디가 정해져 있어요. 키가 크다, 생각보다 뚱뚱하지 않다, 새침하지 않다.”(웃음)

다섯 살 때부터 스물세 살까지. 손연재는 살아온 시간의 절반보다 많은 시간을 리듬체조와 보냈다. 리듬체조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홀로 무대를 꾸리는 과정이 곧 자신의 성장이더란다. 7살 무렵 출전한 대회장에서 관람객들이 쳐다보는 게 두려워 울다가도 조금씩 극복해온 시간들처럼 말이다. 리듬체조와 다시 시작하는 손연재의 앞으로는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

“경력과 시간은 무시 못 해요. 열일곱 시니어 데뷔할 때랑 은퇴할 때 제 실력 차이가 컸던 것처럼요. 바로 연예인을 했으면 더 쉬웠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분들도 계신데 글쎄요. 길게 보면 지금 고생해야 나중에 훨씬 여유로울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때의 저는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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