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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 동심은?

2019-06-18 09:51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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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김창완의 주머니에는 ‘동심(童心)’이라는 작은 동그라미가 하나 들어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수시로 만지작거리는 동그라미를 꺼내 가만히 바라본 마음을 글로 옮기니 제법 괜찮은 동시가 됐다. 차곡차곡 쌓인 ‘그것’들을 모아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이라는 제목의 첫 동시집을 출간했다.
예순 여섯 김창완에게 ‘새내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해 김창완 밴드의 리더, 연기자, 라디오 DJ,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견으로 활동 중인 그가 이번에는 시인이 됐다.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이하 ‘방이봉방방’, 문학동네)을 출간하면서다.

새삼스러운 일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미 6년 전부터 동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2013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어떻게 참을까?’ ‘할아버지 불알’ 등 작품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이후 꾸준히 동시를 써왔고, 200여 편이 넘는 작품 중 51편을 발췌해 시집으로 엮었다.

첫 동시집 출간을 나흘 앞두고 만난 그는 “음악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할 때 동시는 내가 숨을 수 있는 다락방이 됐고, 그 방에서 다시 세상에 내려오게 해준 사다리가 돼주었다”면서 동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음악, 드라마, 에세이 등 영역을 넘나들며 남보다 몇 곱절 다양한 인생을 경험한 예순 여섯의 예술가,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재미와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아”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에게 새로운 도전과 처음이 주는 설렘이 또 한 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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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위로가 되지 못할 때
비상구처럼 동시가 보였다

6년 전 우연히 동시를 발표했을 때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반갑게 맞았다. “별 이유 없이 와 닿는 시” “이런 시인들이 있어 좋아 죽을 지경” “파격적” “짧은 동시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 등의 감상평이 쏟아졌다. 산울림의 히트곡 ‘개구쟁이’가 수록된 동요 앨범을 발표한 40년 전처럼 그의 동시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이를 빗대어 그렇지만, 그 나이에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첫 동시집을 출간한 소감이 어떤지? 공연보다 더 떨린다.(웃음) 책을 받고 동냥젖을 떠올렸다. 큰 시인들께서 써주신 추천사를 읽고 ‘내가 동냥젖을 먹는구나’ 생각했다. 여태 못 느끼던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그간 (가수, 연기자로서) 수많은 시상식장에 올라봤지만, 이렇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은 드문 경험이다. 문인들의 손길이 따뜻하구나, 새삼 느꼈다.

“음악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할 때 동시는 내가 숨을 수 있는 다락방이 됐고, 그 방에서 다시 세상에 내려오게 해준 사다리가 돼주었다”고 했다. 음악도 위로가 되지 못한 때가 있었나? 최근의 일이다. 어제오늘 일인 것 같다. 글을 쓴 것 자체가 어제오늘의 일이라.

인생의 경험치가 늘면 순수와 멀어지지 않나? 어떻게 순수를 대변하는 동시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음악 작업을 하면 수많은 은유 속에 빠지고, 그 은유가 틀에 갇힌 의미에서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 은유가 목에 차 있을 때, 내 삶이 (은유로 인해)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로부터 벗어났을 때 동시가 다른 길, 비상구처럼 보였다. 은유의 늪을 빠져나왔고, 빠져나와보니 은유의 세계가 더 풍부하고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동시를 쓰게 됐다.

동시를 쓸 수 있는 어른은 어떤 남다름이 있나? 어른이 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갖춰나가는 것이 인생을 채워가는 거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우주적인 존재로 유아독존인 자신의 모습을 직면한다는 것은 모든 삶에 주어진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자기를 둘러싼 모든 은유의 세계를 벗어던져야 투명한 세계를 만난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은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글쓰기는 쉽지 않다.

글이 나오는 과정이 궁금하다. 내가 화자가 됐다가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다른 시점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유체 이탈 경험이 많다. 유체 이탈하면 주위 소리가 작아지고, 어른들이 점점 멀어진다. 가까이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멀어진다. 동시를 쓸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또렷한 존재로 사물을 인식하고 있을 때는 잘 안 나온다. 상상도 못 하는 세계에서 글을 쓰는 작업이다. 우스갯소리로 소주 두 잔 상태를 유지하는 것.(웃음)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다.

동시의 매력은 뭔가?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을 처음 봤을 때 ‘이 세상에 이렇게 소박한 동시를 담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보면서 동시는 술을 소주잔에 담아내듯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동시에게 은혜를 받았다. 내가 동시를 끼적이는 줄 알았지, 동시가 나를 가르치고 행복하게 할 줄은 몰랐다.

동시집 출간은 40년 전 동요 앨범을 발표했을 때 예견된 일이 아닐까? ‘산할아버지’ ‘개구쟁이’ 등 산울림 노래 중에는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많다. 동시집에 수록된 동시들이 노래나 동요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나? 책이 나오자마자 매니저가 곡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내 생각에는 동요 앨범의 내용과 이번 시집에 담긴 내용은 다른 것 같다. 동요는 슬픈 것도, 해맑은 것도 있지만 <방이봉방방>에서 내가 고백하는 심경은 ‘결핍’이다. 동요 앨범 곡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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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 넘어 알게 된 동심
결핍의 고백이 시를 만들다

김창완이 시집을 내기까지 이안 시인의 도움이 있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시인 이안은 김창완이 출간한 동시집을 두고 “가수이자 연기자인 김창완이 동시 하나를 더 썼다는 차원이 아닌, 획기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방이봉방방>에는 똘똘하고 깜찍한 그리고 맹랑한 어린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현재 김창완으로서의 작품(‘대본 읽기’ ‘나라는 애’ ‘피아니스트’ ‘늙은 가수’), 인생과 세계에 의한 철학적 풍자를 담은 작품(‘깨진 꽃병’ ‘별’ ‘365’ ‘인생’ ‘지금 내가 보는 것’) 등 다양한 주제로 동심을 자극한다. ‘방이봉방방’은 개의 방귀 소리를 흉내 내는 의성어인데, 김창완은 이것을 “동심이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소리”라고 했다.

시집 제목이 <방이봉방방>, 방귀 소리다. 방귀 소리를 제목으로 한 것은, 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주고픈 마음에서다. 글쓰기 자체의 속성이 그렇지만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는 다소 민망한 사건을 통해 경계를 허물고 소통의 장을 넓힐 수 있지 않나. 그런 바람을 담아서 붙인 제목이다.

동시집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아이든 어른이든 유쾌해지고 해방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형식을 무너뜨린 작품이 눈에 띈다. ‘칸 만들기’에는 원고지 빈 칸을, ‘소 그리기’에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 꼭 언어적이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말과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들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칸 만들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말로 할 수 없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전달된다면, 어색하더라도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형식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은 갖고 있었다. 그런 시도는 앞으로도 많이 해볼 생각이다.

무려 네 줄이나 되는 긴 제목의 작품도 있다. 제목을 단편소설로 쓰고, 시를 한 줄 시로 썼다. 제목이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이고 시의 본문은 “모아요” 한 줄이다. 수많은 역사와 인간이 결합되어 있어도 사건 자체는 물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걸 담으려고 치과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해봤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것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연애할 때도 그러지 않나. 그 사람 때문에 밤새 잠 못 자고 이를 갈고 했는데, 아침에 달콤한 문자 하나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진다. 그런 경험과 이 시가 흡사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면? 우리는 세월이 가고 나이 들면 점점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여긴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인 것 같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이라는 작품이 있다. 산울림 노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맥을 같이한다. 가사 중에 “헤어지는 것은 한 번 헤어진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헤어진다”는 대목이 있다. 시는 “내가 지금 보는 것은/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보는 산은/ 내가 처음 보았던 산이다/ …”로 시작된다. 시에서는 뺐지만, 매일 마시는 술이 첫술이라는 대목도 넣고 싶었다.(웃음)

김창완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앞서 짧게 말했듯 나는 결핍 때문에 시를 썼다. 어릴 때 할아버지 품에서 올려다봤을 때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난다. 내 눈엔 할아버지 턱만 보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안고 있는데, 푸근한 게 아니라 늘 불편했다. 손뼈가 억세고 옷은 거슬거리고…. 할아버지가 뭔가 물어보시면 올려다보며 “다 알어”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을 많이 안다. ‘뻔히 다 아는 세상인데, 어른들은 자기들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동심은, ‘아! 그게 동심이었구나’라고 안 것은 쉰을 넘어서다. 동심 자체를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심이 뭔가? 아직은 낯선 세계. 그리고 좀 더 가보고 싶은 세계. 산울림의 동요 앨범은 어린이를 위한 노래다. 우리가 다 갖고 있는 은유의 세계다. 동심이 아니라 ‘그저 어린이를 위한 것이겠지’ 했던 거다. 실제 동심을 만났다고 하긴 어렵다. 그것은 은유에 의한 동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요즘 우리 동네에 철쭉이 만발이다. 어제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해 질 무렵 집에 돌아가는데, 차에서 내리다가 하얀 철쭉을 만났다. 정말 놀랐다. 꽃잎이 하얀데 붓을 들고 연두색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가운데에 초록색 점이 있더라. 그걸 보고 섬세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생각했다. 하얀 꽃잎만 있어도 벌과 나비들이 날아오겠지만, 그 초록색 미점이 없으면 철쭉이 아니지 않나. 작은 꽃 한 송이가 그러한데, 우리 마음속에는 어마어마한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동심이 하얀 철쭉 안에 있는 색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심의 은혜를 받아서 내 눈에 그 점이 보인 것이 아닐까.

‘칸 만들기’ 작품이 <동시마중> 작품상(일 년 동안 발표한 신작 동시 가운데 한 편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상)에 선정됐다. 감사드린다. 어린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 감히 고백하자면, 어른이 되어서 더 알게 되는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도,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않다. 솔직히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별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강물을 흘려버리고, 얼마나 많은 눈이 하잘 것 없어지나. 아무리 울어도 울음이 안 그칠 만큼 안타깝다. 매일 더 어른이 되기 위해 동심을 폐기해버리려고만 했는데, 내 안의 그 세계를 다시 만난다는 게 큰 축복이다.

시인으로서 또 다른 도전이자 새 출발을 한다. 본격적으로 동시를 쓸 생각인가? 그야말로 손주 볼 나이에 동심의 은혜를 입었다. 이제 겨우 읽게 됐다. 내 안의 결핍을 고백하게 되어서 감사드린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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