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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살아보니…

“이제 아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아요”

2019-05-08 09:39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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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노래는 곱씹을수록 구슬프다. 가사도, 음색도. 슬픔을 읊은 노래는 많지만 그의 노래 속 슬픔은 결이 다르다. 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곧 발매할 칠순 기념 앨범도 지난 시간을 품고 있다. 일흔을 맞은 최백호가 살아보고 느낀 건 무엇일까.
올해 일흔이다. 나이야 당연히 드는 것이건만, 예순과 일흔은 다르다고 했다. 최백호는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나이 듦’이 가져온 자신의 변화에 만족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생겼다. 일흔이라서 부를 수 있는 노래란다.

올해 일흔입니다. 어떤 느낌인가요? 저는 이제 어른이에요.(웃음) 다만 아주 조금.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이미 어른 아닌가요? 60대와 70대는 다르더라고요. 50대와 또 다르고. 숫자일 뿐인데 말예요. 스스로 말도 행동도 더욱 조심하게 돼요. 책임감이 더 커졌다랄까. 가수로서도 그래요. 예전엔 적당히 앨범 만들고 마음대로 했다면, 칠순 기념 앨범은 만들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어떤 노래들인가요? ‘삶’이요. 곡과 가사 모두 직접 썼어요. 제목은 ‘동생아’예요. 동생들에게 해주고픈 메시지들이죠. 일흔이 되니 동생들이 많이 생겨서요.(웃음) 동생이 많아진 건 60대부터 느꼈는데, 60대에 “동생아” 하면서 부르기엔 약간 시건방지지 않나….

올해는 어른이 됐으니 불러도 된다는 건가요? 가사가 궁금합니다. “꽃이 지는 날에는 한 살이라도 젊은 네가 울어라. 나는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먹고 놀련다. 봄이 간다고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너무 잊히는 것들에 매달리지 마라. 돌아오지 못하는 게 사람뿐이 아니다…” 이런 가사예요.

일흔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이 나이까지 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젊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봐야 예순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흔이 되니까 여든, 아흔을 떠올리게 돼요. 요즘엔 공연할 때 “아흔 즈음에 앨범을 내겠다”고 먼저 말하기도 해요. 정말 가능할 것 같아요.

가수로서 더 의욕이 생긴다는 건가요? 아뇨. 젊을 땐 히트곡에 대한 욕심이 컸는데 이젠 전혀요. 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있을 때 예전 같으면 제가 부르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에게 줄 수 있어요. 주제를 안다고 해야 하나요. 나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까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고, 어디서든 노래를 선택해서 부를 수 있고, 콘서트를 할 정도로 대표곡도 가지고 있잖아요.
 

슬픔이 있어야 더 빛나는 인생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와 그에 걸맞은 표정까지, 한껏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지독한 추위 끝에 만난 온기는 유난히 따스하듯, 슬펐기에 ‘행복’을 말하는 그다.

경험하며 느낀 감정을 노랫말로 만드시나요? 살면서 느낀 것들, 솔직한 제 마음을 써요.

슬픈 곡을 유난히 많이 만들었습니다. 사는 게 슬프다고 들리기도 하고요. 밝고 명랑한 노래보다 슬픔이 느껴지는 노래, 슬픈 목소리를 가진 가수를 좋아합니다. ‘슬픔’이란 감정이 좋아요. 사람이 마냥 즐겁고 신나게 살 순 없잖아요.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밝게 느껴지듯 슬픔이 있어야 삶이 더 화려해져요. 살면서 꼭 필요한 감정이 아닐까 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슬펐어요. 굉장히 가난했고, 성격상 친구도 거의 없었거든요.

데뷔곡도 슬퍼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라고. 스무 살 10월에 어머니가 떠나셨어요. 사흘 밤낮을 울었죠. 버스 타고 가면서도 우니까 같이 있던 형이 내리자고 해요. 어둠이 내린 부산 부둣가를 같이 걸었어요. 그때 어머니를 그리며 적어둔 게 가사가 되고, 노래가 됐어요. 제가 걱정스러워서 어머니가 주고 가신 선물이 아닌가… 어머니가 글을 잘 쓰는 분이었어요.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데뷔하고 한창 전성기를 누리다 침체기를 겪을 때 역시 ‘슬픔’이었죠? 30대에 인기가 완전 가버렸죠. 일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땐 ‘일’이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거였으니까. 심한 날은 하루에 일곱 군데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건 노래가 아니에요. 두 군데까진 노래가 나오고 그다음부턴 괴성, 소리만 질러요. 일을 그만둬야겠단 생각을 할 때 지인이 LA에 방송국을 차린대서 따라갔어요. 처가도 미국에 있었고. 거기서 2년간 지냈는데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수로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때? 그러니까 알겠더라고요.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늙어가는데 나만 스무 살의 노래에 머물고자 하는구나. 그러면서 ‘낭만에 대하여’가 나왔고…. 여전히 사랑 노래, 이별 노래 부르는 동료들한테 말해요. 70대면 70의 노래를 부르라고.(웃음)

‘최백호 노래’를 좋아하지만 ‘낭만에 대하여’는 글쎄요, 공감이 아직…. 저희 아버지는 그 노래만 부르세요.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그래요.(웃음) 아버지는 공감할 수 있는 나이겠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낭만에 대하여’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늙은 거라고.

요즘 고민은 뭔가요? 일주일 전인가. 아내와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진짜 행복해서요. 나도, 아내도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도 없고, 주변에 나쁜 짓 하면서 살아오지도 않았고…. 칭찬까진 아니어도 이 나이에 욕은 안 듣고 살잖아요.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가벼운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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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본 여자의 삶은
인생의 절반을 아내와 함께했다. 그 세월을 보여주듯 서른 중반의 딸은 그사이 엄마가 됐다. 그가 30년 넘게 지켜본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의 삶은 희생이었다.

남편으로서 자신을 평가하면요? 아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웃음) 스스로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아내한테도 물어봐요. “내 같은 사람 주변에서 들어봤나?” 그러면 아내가 못 봤다고 합니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늘 하기 때문에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아내를 좋아하고 정이 많이 들었죠.

한 사람과 오랜 시간을 같이하는 건 대단한 일 같아요. 아내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두 번째 만난 사람이고 나이 차가 10년이에요. 어린 나이에 저를 만났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어요. 남편이 연예인이라서 주변 시선도 받았을 테고. 결혼 초기엔 제가 밤에 일하는 데다 매일 술을 마셨어요.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고요. 그런 걸 다 어떻게 견뎠나 싶어요. 요즘은 아내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 번씩 걷어차요. 억울한 일이 문득문득 생각나나 봐.(웃음)

그런 아내를 보니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의 삶은 어떻던가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제 아내는 완전한 희생이었죠. 그래서 딸애가 결혼을 안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시집가지 말고 일 계속하라고 했어요.

딸은 아직 미혼인가요? 작년에 결혼했어요. 잘살고 있어요. 곧 손주도 나오고요. 사위가 착해요, 그야말로 촌놈.(웃음) 바보 같아요. 딸아이한테 쥐어서 흔들리고 살아요. 편하고 좋은 사위예요.
 

그가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은
그는 뮤지스땅스를 운영하면서 젊은 세대와도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뮤지스땅스는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인터뷰 촬영에 한창인 그를 응원하고 싶다며 청년 몇몇이 모였다. 살짝 굳은 그의 표정에 그새 미소가 찾아든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겠어요. 음악 하는 사람, 공무원 등 다양하게 만나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요즘 애들’을 가까이서 보시는군요. 저는 ‘아니면 말고 식’을 아주 싫어해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도 싫어하는데 요즘 아이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요. 절망감을 느껴요. 음악도 그래요. 오래 남지도 않을뿐더러 오래 남길 생각도 안 해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크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땐 음악, 미술, 체육, 도덕을 다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암기 위주로 공부를 하잖아요.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교육제도를 만드니까 본인들을 기준으로 삼아요. 체육, 예능, 문학적으로 재능 있는 애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죠.

뮤지스땅스 직원들이 꽤 젊은데 평소 무슨 얘기를 해주시나요? 내가 당당하니 당신들도 당당하게 일하라고 해요. 제가 젊은 시절 떳떳하지 못한 게 있다면 그럴 수 없는데 당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어린 시절 최백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요? 그리고 그렇게 됐나요? 소설 <큰 바위 얼굴> 속 큰 바위 얼굴 같은 사람을 꿈꿨죠. 무슨 일을 하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근데 불가능하단 걸 알아버렸네요.(웃음) 그래도 여전히 꿈꿔요. 후배들,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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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탁주  ( 2019-05-10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앗 동매이 ( 동명 )아이가 ? 이게 몇년만이고 어느세 최백호가 되었는감 ? 예그린 세월은 저만치 가버리고 자당님 박혜순 샘은 일광 국민학교우리샘 / 귀신나온다는 그50603;사택은 지금은 어디에도안보이고 4통8방 도로만∼∼∼개구장이 아이들은 급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