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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엄마 유호정

2019-02-07 09:53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머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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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엄마’라는 단어가 지워지지 않았어요. 원래 엄마 역할을 할 때는 아이들을 떠올렸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아,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촬영 내내 엄마 생각이 많이 나고, 그리웠어요.” 유호정이 8년 만에 영화에 출연해 엄마를 연기하고, 엄마를 만나고, 진짜 엄마가 되었다.
영화 <써니> 이후 8년 만에 선택한 작품, <그대 이름은 장미>를 들고 나온 유호정이 오랜만에 인터뷰 테이블에 앉았다. 유호정은 이번 작품을 두고 “엄마에게 쓰는 편지 같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가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엄마가 떠올라서다.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 싱글맘인 주인공 홍장미를 보고 유호정은 2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싱글맘으로 혼자 두 딸을 키워낸 터라 영화 속 장미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혹시 감독님이 내 이야기를 알고 시나리오를 쓰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과 오버랩 되는 장면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공감이 되던가요? 매 신에서 공감했어요. 시나리오 보면서 ‘예전에 내가 그랬지’ ‘우리 엄마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라고 자주 생각했죠. 집에 홍수 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제가 중학교 때 겪었던 일이에요. 홍수가 나서 방까지 물이 찼어요. 학교도 못 가고, 엄마가 절 옆에 있는 아파트로 피신시키고, 가재도구를 옥상에 올려서 하룻밤 지낸 적이 있어요.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있어요. 혹시 감독님이 내 이야기를 알고 시나리오를 쓰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상황이었어요.

엄마 생각이 많이 났겠어요. 녹즙기를 팔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장미의 모습에서 생전의 엄마를 떠올렸어요. 실제로 딸 둘을 혼자 키우면서 힘들게 사셨거든요. 많이 울었고, 곳곳에서 엄마를 느끼면서 촬영했습니다.

엄마를 연기하다 보면 실제로도 엄마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드나요? 엄마 입장에서는 영화 속 장미가 그랬듯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평소 애교가 없고 무뚝뚝한 편인데, 엄마가 제게 사랑 표현을 안 해줘서 그런 줄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 ‘나는 나중에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장미를 연기하면서 그런 엄마를 이해하게 됐어요.

<써니> 이후 오랜만의 작품인데다 원톱 주연이라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최대한 부담감은 지우려고 했어요. 부담 때문에 극을 잘 끌어가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제 감정만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제가 생각하는 것을 잘 맞춰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 촬영장에 간 소감도 궁금해요. 영화 현장은 드라마와 달리 충분히 준비할 여유가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편한 것은 있는데, ‘준비했는데 이것밖에 안 될까?’라며 배우로서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아요.

작품 선택은 남편(이재룡)과 의논하시나요? 이재룡 씨가 본인이 찍어준 작품은 유호정 씨가 다 잘됐다고 해서 화제가 됐어요. 같이 정해요. 이번 작품을 보고는 “잘하겠다. 네가 좋아하는 스토리네”라고 말해줬어요. 작품을 두고 이견은 없는 편이에요. 남편은 용기를 주는 편이에요. 제가 ‘못 할 것 같은데’ 하면 ‘그냥 해. 잘할 수 있어. 할 수 있는데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하면서 힘을 실어줘요. 이번에도 남편 말에 힘입어 도전했어요.

유호정이 좋아하는 스토리는 뭔가요? 그동안 힘든 작품이 많이 들어왔어요. 성폭력 당한 딸을 둔 엄마, 유괴를 당한 아이 엄마 같은 역이요. 그런 것들은 아파서 못 하겠더라고요. 몇 개월씩 그 역할에 빠져서 살 수 있을까, 하면서 꺼렸어요. 따뜻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만난 작품이에요. 요즘 살기 힘들다는 말들 많이 하잖아요. 힘들 땐 엄마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엄마 손잡고 보면 좋을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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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컷

# 엄마 생각나 선택한 작품
딸 위해 꿈 포기한 싱글맘의 사랑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유호정이 연기한 홍장미는 평범한 엄마로 보이지만 한때 가수의 꿈을 키우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딸을 위해 본인의 꿈은 물론 사랑도 포기했다. 녹록지 않은 싱글맘의 삶을 유호정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현실감 있게 녹여냈다.

극중 장미는 유호정과는 전혀 다른 삶이에요.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극중 장미에게 공감했거든요.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좋은 선택을 하고 싶고,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엄마라면 누구나 같을 거예요.

그럼 유호정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본인의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장미 입장에서 보면 그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어요. 내 꿈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아이를 선택했죠. 저는 선택이라고 봐요. 저도 그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물론 지금 저와 환경은 다르지만 장미처럼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에는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첫사랑과 평생 친구 같은 남자, 어떤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가요? 실제 상황이라면 누굴 만나시겠어요? 둘 다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웃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친구처럼 평생 장미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과 헤어져 지낸 시간이 많지만 첫사랑인 남자. 실제 상황이라면 아이 아빠를 선택하겠죠.

두 사람과의 로맨스 촬영은 어땠나요? 홍장미의 로맨스를 더 이상 발전시킬 수는 없었지만, 첫사랑과의 로맨스를 조금 더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로맨스 비중이 적어서 살짝 아쉬웠어요.(웃음) 중년의 로맨스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의 다이앤 레인 역이 좋았어요.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느낌도 나고, 영상도 명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서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거든요.

<그대 이름은 장미>는 평범한 엄마의 리즈 시절을 돌아보는 영화입니다. 유호정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가 풋풋하고 예쁘죠. 그런데 저는 10~20대 때 조금 우울했어요. 지금보다 더 책임감이 필요했고, 짐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엄마 혼자 딸 둘을 키웠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아버지 없이 자라서 남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죠. 엄마가 10년을 아프다 돌아가셨는데, 장녀로서 엄마를 돌보는 데 책임감도 컸어요. 모든 것이 부담이고 짐이었어요. 힘들었죠. 지금의 제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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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사슴인데 성격은 사자?
든든한 지원군 남편 & 친한 친구 같은 딸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최근 2년 정도 유호정은 오롯이 엄마로만 살았다. 곧 성인이 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이 엄마를 떠올렸을 때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다. 배우로서 삶만큼 엄마, 아내로서의 삶도 놓치지 않았다. 28년째 이어지고 있는 남편 이재룡과의 결혼생활도 여전히 행복하다.

이재룡 씨가 한 방송에서 “유호정 씨는 외모는 사슴인데 성격은 사자”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었죠. 저를 사자로 만들었어요.(웃음) 오래 살다 보니 그런 것도 있어요. 남편이 다 받아주니까 함부로 말할 때가 많아요. 받아줄 거 아니까 못되게 말할 때도 있어요. 안 받아주면 못 하잖아요. 그래서 사자가 되기도 하는데, 남편이 술 마시는 건 건강을 해치니까 잔소리를 하게 돼요.

같은 일을 하는 상대와 결혼하는 걸 적극 추천한다고요? 제가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건 남편이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성격도 있지만, 이해의 폭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넓어요. 제가 일할 때 남편이 작품을 안 하고, 남편이 할 때 제가 안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니까 가능하지, 아니면 힘들 것 같아요. 여배우가 아이 키우면서 활동하는 건 그런 배려 덕분인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떤 엄마인가요? 한번은 딸에게 제가 어떤 엄마인지 물어봤어요. 딸이 “음, 친한 친구 같은 엄마?”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냥 친구 아니고 친한 친구?” 하니까 그렇대요. “친한 친구는 비밀이 없어야 하는데, 엄마한테 비밀 없어?” 그랬더니 “응, 나는 엄마한테 비밀 없고, 편하고 재미있어”라는 거예요. 너무 뿌듯했죠. 딸은 편한 엄마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관심사를 같이 나누는 편이에요. 딸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해서 같이 들어주고, 딸이 “이 파트는 누구 목소리야, 외워” 하면 공유하고 그래요.(웃음) 중학교 2학년인데 아직 사춘기가 아니어서인지 잘 지내고 있어요. 키가 저보다 커요.

아이들도 연예 활동에 관심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생각이 있다고 하면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뭐든지 “한번 해봐”라고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엄마 하는 거 보니까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 누가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나는 밤 못 새워”라고 하더라고요.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제가 진짜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해요. 남편이 20년째 골프를 권하는데, 아직도 안 해요.(웃음) 몸이 건강해야 아이들도 잘 돌볼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으니까 무리하지 않는 운동인 필라테스만 해요. 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일할 때는 긴장하면서 관리하고, 평소에는 맛있는 거 마음껏 먹는 시간이 필요해요. 마음 관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얼굴에 다 나타나더라고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안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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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아하지만 내공 있는 30년 차 연기자
자기 목소리 내는 강한 여자 캐릭터 욕심

데뷔 이후 30년, 공백 없이 꾸준히 활동해온 유호정은 올해 만 50세다. 긴 시간 그가 보여준 연기 행보는 단아하고 조용한 그의 생김새와도 닮았다. 튀는 외모와 캐릭터로 승부하는 건 아니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유호정만의 은은하고 짙은 색깔이다.

50세라고 믿기 어려운 외모입니다. 그런 말 들으면 좋아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여배우로서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대중은 ‘저 배우는 안 늙었으면 좋겠어’ ‘이제 나이가 보이는구나’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안 늙을 수는 없잖아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갖고 싶어요.

데뷔 이후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저도 이렇게 시간이 지난 줄 몰랐어요. 초반에는 고비도 많았고, 과연 끝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과정들이 크게 욕심을 갖지 않도록 해줬어요. 힘들게 애쓰고 싶지 않았어요. 열심히 노력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걸 아등바등하면서 붙들고 가려는 마음이 안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건 지치지 않았던 힘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적당히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는 걸 살면서 배웠어요. 저는 20대 때보다 지금이 더 좋거든요. 이런 마음이 절 행복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연기자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작품은 많이 하지 않고 1년에 한 작품 정도 했더라고요. 임신했을 때를 빼고는 꼬박꼬박 했어요. 요즘은 2년 정도 공백이 있었어요. 배우로서 욕심을 내자면 더 많은 작품을 하는 게 맞지만, 아이들이 곧 성인이고 큰아이가 제 품을 떠날 때가 되어서 요즘은 오롯이 엄마로만 살았어요. 저 스스로 스타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죠.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도 있나요? 제가 액션 배우를 한다면 어울릴까요?(웃음) 어색해서 잘 보실 수 있을까요? 제 안에 아주 없는 걸 끌어내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청춘의 덫>이나 <작별> 같은 강한 캐릭터도 있었지만 연약하고 순종적인 캐릭터가 많았어요. 요즘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강한 여자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어요.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웃음)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다하자고 생각해요. 새해를 맞아 <그대 이름은 장미> 개봉하니까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엄마 작품이라고 보여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이고, 친정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모시고 함께 보고 싶은 영화예요. 그리고 좋은 역할이 있으면 드라마든 영화든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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