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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200억 자산가 타이틀 이후…

2018-08-09 10:30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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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다. 미국으로 갔으며, 사업에 성공했고, 부동산 투자로 부를 축적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었다. 10년쯤 된 것 같다. 얼마 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갑자기 그의 이름이 올라왔다. 한국에 새 둥지를 틀 모양이다. 직접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끈적끈적한데, 질척이진 않았다.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슬라임’에 콩고물을 묻혀놓은 느낌이랄까. 그를 만나러 가던 7월의 어느 날, 우연도 이런 우연이. 라디오에서 ‘날 보러 와요’가 흘러나왔다. 데뷔곡임에도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이유, 대번 알 수 있었다. 리듬 사이로 눅진하게 들어갔다가 담백하게 빠져나오는 목소리가 감질났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도 절묘했다. 1980년 노래니, 대충 꼽아 40년 전 얘기다.

몇 분 후 도착한 약속 장소. 누군가 인사를 건네왔다. 삽시간에 긴 세월의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었다. 곧 예순을 앞둔 방미였다.
 
 
요가로 인생 2막

큰 보폭으로 씩씩하게 걸어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군살 없이 다부진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그가 가수 활동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떠난 건 1993년이다. 이후 이따금씩 근황을 전했지만 이번엔 공백이 꽤 길었다. 10년 만의 방송 출연이었다. 그런 만큼, 시끄러운 신고식을 치렀다. 출연 이후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가 하면, 수십 개 매체에서 방송 내용을 기사화했다. 소식을 궁금해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다.

이후 스케줄도 속속 잡혔다. <불후의 명곡>, 그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오는 추석께는 연극에도 출연한다. 가수 김완선이 더블 캐스팅된 <뺑파 게이트>에서 뺑파 역을 맡는다. 인터뷰 도중에도 방송국에서 온 전화를 받느라 쉬어 가기도 했다. 가수로 복귀하려는 걸까.

“하하. 그건 아니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쎄요. 방송 출연은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공유하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예요. 수년 전부터 요가로 인생 2막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는 “어제도 막 제주도에 다녀왔다”면서 “그곳에 요가 수련장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익 목적 요가원이 아닌,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서 수련할 수 있는 곳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요가를 시작한 건 미국으로 건너가 살던 마흔 중반 즈음이다.

“뉴욕을 떠나 LA로 가면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젊었을 땐 ‘뉴욕’ 그 자체가 좋았는데, 어느 순간 외롭고 쓸쓸하더라고요. LA에 가면 한국 사람이 많으니까 좀 덜하겠다 싶어 거주지를 옮겼죠. 어느 날 회사 앞을 지나는데, 요가원이 보이더라고요. 한번 가볼까 싶어 들어간 게 지금에 이르렀네요.(웃음)”

요가와의 인연이 시작됐고, 푹 빠졌다. 한나절은 요가를 하며 보낼 정도였다. 몸 요가에서 나아가 정신 요가까지 쉬지 않고 마스터했다.

“정신 요가를 하면서 심연부터 흔들림이 없는, 완전히 수련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요가는 처음에는 몸에서 시작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정신 수련 없이는 몸 요가도 제대로 되지 않아요. 정신 요가를 마스터하면서 마음 아픈 사람들과 교감하게 됐고, 그들과 공감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주 요가원은 그런 치유의 장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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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공신화 뒤 그림자

요가에 심취하기 전에는 사업 성공신화로 유명세를 떨쳤다. 지난 2007년, 이모가 운영하던 액세서리 가게를 인수하며 시작한 도매사업이 대박 난 것. 직원 14~15명에 하루 매출은 1000만~2000만원이 보통이었다. 한 달 수익만 억대였다. 일하느라 완전히 구부러진 두 검지는 훈장이었다. 그는 “정말 재밌게 일했고, 고생도 많이 했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 반면 복병도 있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더라고요. 5년 정도 돈을 많이 만지다 보니까 돈에 이끌려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대가였지만, 정신적으로는 궁핍해졌어요. 나 없이도 가게가 잘 돌아갈 만큼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였던지라 다른 일을 시도해도 되겠다 싶기도 했죠.”

요가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당시 일각에선 제가 ‘졸부’가 된 것만 강조해서 속상하기도 했어요. 제가 미국에서 성공한 건 사실이에요. 사업이 잘돼 재산도 일궜고, 투자로 수익도 남겼고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제 노력이 있었다는 걸 조금 알아주셨으면… 했죠.”

사람들이 그의 재산에 특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한 월간지에서 당시 제 자산을 추정해서 200억원 정도라고 보도했는데, 그것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제 입으로 200억 자산가라고 얘기한 적이 없거든요. 기자가 액수를 추정해서 쓴 거죠.”

그때 생긴 이미지 탓에 본래 성향이 다소 왜곡돼 비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시쳇말로 ‘흙수저’라고 하죠. 어린 시절 저,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연예인을 하면 돈을 좀 벌 수 있을까 해서 코미디언 공채 시험을 쳤고, 이후 가수도 했죠. 제가 물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집안을 먹여살려야 했거든요.”

가장 역할도 톡톡히 했다. 가계를 직접 챙기면서, 용돈까지 쥐어드렸다. 절약하는 습관이 배어 있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도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닌단다. 330㎡(100평)짜리 집은 세를 주고, 작은 집에 산단다.

그는 “열심히 살았던 젊은 날에 당당하다”면서 “악착같이 살았던 이면은 옅어지고 ‘졸부’라는 이미지만 부각시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자 꼬리표와 사람들

실제로 방미 하면 아직도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따라붙는다. <종잣돈 700만원으로 200억원 만들기>라는 책도 냈다. 투자자 꼬리표가 싫으냐고 물었다.  

“글쎄요. 투자로 봐주면 고맙고요, 투기꾼으로 보시면 안 되고요. 지금이야 부동산 투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제가 부동산 투자로 이름을 날렸을 당시만 해도 부동산 하면 투기라는 인식이 강해서 오해하시는 분이 많았죠.”

그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상체를 테이블 가까이 대더니 풀고 있던 머리를 질끈 묶고, 입술을 한 번 꽉 깨물더니 말을 이었다.

“1993년에 미국에 가서 이따금씩 한국에 들어오다가, 2008년께 미국에 눌러앉은 것도 그 꼬리표 때문이에요. 사람들 시선을 피해 떠난 거죠.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주제에’라는 시선이 많았어요.”

방미는 “그땐 ‘인간 방미’가 아닌 ‘투자자 방미’에만 관심을 가졌다”면서 “당시엔 그게 속상하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어려서 뭘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전문가랍시고 했던 얘기들을 지금 훑어보면 참 가벼웠더라고요. 나름 부동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한 말인데, 지금 보니까 깊이가 없어요. 자랑도 섞여 있었죠. ‘나 이렇게 벌었다’는. 스스로 자부심이 있었으니까요. ‘자랑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딱히 부정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부정할 이유도, 부정할 여유도 사실 없었죠.”

그는 “부동산이 재미있어서 마구 얘기를 쏟아냈던, 철없던 지난날을 용서해주고 너그럽게 봐달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부동산 관련 서적을 섭렵하며 치열하게 공부했고, 투자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수익이 난 건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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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나이 들고파

부를 축적하자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개중엔 재력과 인맥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옥석을 가리는 법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거리 두기”가 최선이란다.

“서로 보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도 반갑게 만나는…. 너무 친하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런 사이가 좋더라고요. ‘사람 가리는 법’은 사실 따로 없어요. 그저 오랫동안 지켜보는 편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덴 적’도 있다.

“20년 전, 10억원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느꼈죠. 아,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구나. 그것도 교만이었던 거예요. 사람은 한번 봐서는 절대 몰라요. 그래서 오래 봅니다. 한 길 사람 속은 결코 알 수 없고요. 사람이라는 유기체는 항상 변하잖아요. 그 속도가 또 저랑 맞아야 하고요. 그러니 사람을 재단하기란 참 어렵죠.”

곧 이순(理順)의 나이. 그래선지 지난날의 억울함, 상처들을 얘기하는데도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자칭 ‘악질 방미(그의 블로그 이름)’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유순해 보였다.

“젊었을 땐 저 굉장히 싸가지 없었어요.(웃음) 상상도 못 할 거예요.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하면 콧방귀도 안 뀌었다니까. 하하. 물론 그때도 강한 사람에겐 강하고, 약한 사람에겐 약하자는 철칙은 있었지. 그때에 비하면 성질 아주 많이 죽었죠. 지난 인생이 저를 이렇게나 많이 바꿨네요.”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할 요량으로 주량을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단다. ‘말술’일 줄 알았다고 하자 박장대소했다.

“사람들이 다 그래요. 방미가 그런 이미지인가 봐. 하하. 그렇지 않아요. 난 예쁘게 나이 들고 싶어요. 주변에 나이 잘 들어가는 선배들이 많아요. 그들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하게 노래하며 사시죠. 그렇게만 나이 들어도 좋지만, 저는 그보다 아주 조금 더 예쁘게.(웃음)”

블로그와 유튜브 ‘방미TV’를 통해 매일매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도 그래서다.

“인생의 마지막은 제 요가원에서 맞이하고 싶어요. 요양원이 아니라요. ‘방미요가원’에서 오롯이 죽음을 맞이하는 거죠.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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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on21cc  ( 2018-08-11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13   반대 : 1
공자의 글에 이순의 한자는 耳順이예요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방미씨의 앞날에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