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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들의 파티 디자이너 영송 마틴

태양-민효린 웨딩 파티부터 미셸 오바마 귀빈 파티까지

2018-03-12 13:29

취재 : 서재경 기자  |  글·사진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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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셀럽들의 파티는 모두 그녀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셸 오바마, 제니퍼 로페즈, 오프라 윈프리도 반하게 만들었다. 최근 태양-민효린 커플의 웨딩 파티 디자인을 맡아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 파티 디자이너 영송 마틴 이야기다.

장소 제공 콩두 덕수궁길 본점(02-722-7002)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셀럽들이 그녀의 ‘단골’이다. 미셸 오바마의 귀빈 파티부터 할리우드 톱스타 제니퍼 로페즈의 서프라이즈 파티까지, 크고 작은 행사들이 그녀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영송 마틴은 셀럽들의 중요한 순간을 책임져온 세계적인 파티 디자이너다. 

영송 마틴이 운영하는 ‘와일드 플라워 리넨’은 LA에 있는 본사를 둔 웨딩·파티 컨설팅 회사다. 결혼식과 파티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에 사용하는 테이블 리넨, 의자 커버 등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영송 마틴은 한때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우선시되는 패션 업계에 지쳐 일을 그만뒀다. 잠시 쉬며 조카 결혼식 준비를 돕던 그녀는 웨딩·파티 디자인 일에 매력을 느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우연한 계기로 운명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미 할리우드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녀이지만, 한국에선 최근 들어 유명세를 치렀다. 태양-민효린 커플의 웨딩 파티를 맡아 디자인했기 때문. 결혼식을 찾았던 하객들은 마치 숲 속 결혼식처럼 꾸민 웨딩 파티를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2월 3일, 태양-민효린 결혼식 현장에서 우연히 영송 마틴을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녀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약속을 지켰다. 결혼식 이틀 뒤 만난 그녀는 활기찬 목소리로 후일담을 전했다.
 

태양♥민효린 웨딩 파티
“수수한 숲 속 결혼식… 부케는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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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민효린 커플 웨딩 파티를 위해 꽃 장식을 세팅 중인 영송 마틴과 그녀의 동료.

태양-민효린 커플의 웨딩 파티를 디자인한 것이 화제가 됐어요. 두 사람이 파티를 플래닝 해달라고 해서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예스’라고 답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이렇게 유명한 줄 몰랐죠. 그저 꾸밈없고 예쁜 커플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 연예인들을 잘 모르거든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야 대단한 스타들인 걸 알았죠.

두 사람의 유명세에 놀랐겠군요. 많이 놀랐어요.(웃음) 지인 소개로 두 사람을 만났는데 매우 괜찮고 예의 바르더군요. 보기 드물게 생각도 깊고요. 태양 씨의 예술성에 놀랐어요. 같은 예술가로서 열정이 보이더라고요.

파티 콘셉트는 무엇이었나요? 숲 속 결혼식처럼 꾸몄어요. 부부가 수수한 느낌을 원했거든요. 부케도 들꽃으로 했고요.

태양-민효린 커플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나요? 지인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가족들,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이 되길 바랐어요.

공개된 결혼식 파티 사진을 보니 영화 <트와일라잇>의 숲 속 결혼식 장면이 연상되던데요. 실제로 그 장면을 디자인하셨죠? <트와일라잇>의 숲 속 결혼식 장면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어떤 리넨을 쓰면 좋을지, 어떤 꽃을 쓸지 정하는 역할을 했어요. 웨딩 전문가로서 자문을 한 거죠. 저는 그 장면에만 공을 세운 건데 어떤 기사를 보니 제가 마치 <트와일라잇>의 무비 디렉터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더라고요. 그 오해는 꼭 풀고 싶네요.(웃음)

파티나 웨딩을 디자인할 때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5~6개월 정도 걸려요. 물론 빨리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요. 웨딩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신부와 대화를 많이 하는 거예요. 

작업이 쉽지 않겠어요. 그래도 힘들거나 고생스럽지 않아요. 저희 팀 모두 즐겁게 생각해요. 똑같은 결혼식은 없으니까요. 같은 콘셉트의 결혼식이더라도 신랑과 신부가 원하는 건 다 다르거든요.

신랑 신부가 머릿속으로 꿈꾸는 걸 눈앞에 펼쳐주는 일이네요. 작업을 마치고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결혼식장 문을 열 때 “와~” 하고 탄성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신랑 신부가 기뻐하는 모습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는 거죠?”라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미셸 오바마부터 오프라 윈프리까지…
할리우드 셀럽을 사로잡은 비결
 
우리나라는 아직도 파티 문화를 생소하게 여기는 분위기예요. 파티라는 말을 없애야 할 것 같아요. 한국도 잔치를 하잖아요. 파티를 잔치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한국말로 잔치고, 미국말로 파티일 뿐이죠. ‘파티 플래너’가 아니라 ‘잔치 플래너’라고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실까요?(웃음)

미국 파티 문화를 파격적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웨딩 플래너로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은 제 눈높이에 맞춰 바꿔나갔어요. 다른 분야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고정관념이 없었죠. 사람들이 제가 만든 것이 예뻐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비즈니스가 시작됐어요. 파티의 상업성을 키워놨다고 하면 될까요?

문화를 바꿔나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미국에서 (전형적인) 파티 문화를 색다르게 바꾸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결혼식은 자유분방해요. 모든 하객에게 블랙 립을 바르고 오라고 한 웨딩이나 ‘고스 파티’ 콘셉트의 웨딩도 있었어요. 그들은 역사가 짧아서인지 어떤 문화에도 마인드가 열려 있거든요. 하지만 한국처럼 고유 문화를 갖고 있는 곳들에선 파티 모습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이를테면 중국인들은 결혼식에서 하얀색 대신 빨간색이나 금색을 써요. 프랑스나 영국도 고유 문화가 있긴 마찬가지고요. 그런 곳들은 문을 열기기 쉽지 않죠. 그래도 많이 바뀌었어요. 앞으로도 천천히 바뀌어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영송 마틴표’ 파티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파티에 사용하는 리넨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남이 해놓은 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많았어요.(웃음) 제가 직접 뜯어 고치곤 했죠. 다른 사람들보다 디테일에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남들은 저보고 이 정도면 괜찮은데 까칠하게 구느냐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 눈엔 괜찮지 않거든요. 더 잘할 수 있고 멋있게 할 수 있거든요,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그런 점은 제가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미셸 오바마, 제니퍼 로페즈,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파티를 디자인했어요. 셀럽들의 마음은 어떻게 사로잡았나요?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백악관에서 미셸 오바마가 주최하는 파티를 의뢰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러시아 대통령 부부를 위한 파티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죠. 러시아 정상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특징을 파티에서 보여주고자 했어요. 예카테리나 2세나 예르미타주 박물관처럼 러시아의 상징적인 것들에서 파티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얻었죠. 제니퍼 로페즈 파티의 경우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준 거였는데, 의뢰를 받고 제니퍼가 좋아하는 블링블링한 리넨을 직접 만들었어요. 거기 들어간 비즈가 2만 개는 될 거예요.

지금까지 연출한 파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파티가 있나요? 재혼하는 노부부를 위해 그들의 딸이 열어준 결혼식이 있었어요. 두 분 모두 사별 후 재혼하는 결혼식이었는데, 본인들이 이전 배우자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서로에게 해주면서 아름답게 사랑하셨죠. 결혼식 당일 노신부가 티아라를 쓰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제 손을 잡으시더라고요.
 

가난한 이민 유학생,
세계적인 파티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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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어요. 처음엔 고생 좀 하셨을 것 같아요. 모두 힘들던 때였어요. 저만 가난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은 다 힘들 때였어요. 편견이나 동양인이라는 괄시가 가장 힘들었어요. 인종차별은 지금도 있어요. 요즘엔 제 인지도가 올라가서 많이들 알아봐주지만요.(웃음)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어요.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하고요. 캘리포니아 FIDM(The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했죠. 그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성공인데, 당시에는 유명해지고 옷을 잘 만드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었어요. 그런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봉을 해볼 기회만 있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일했어요. 세탁소나 양복점에서도 일하고요.

패션 디자이너로 ‘YS’라는 브랜드도 론칭했죠. 브랜드가 상당히 잘됐다고 들었는데, 파티 디자이너로 전향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비즈니스 우먼이 아니었나 봐요.(웃음) 돈을 갖고 장난치는 것이 싫었어요. 저는 비즈니스 감각보다 예술성이 발달한 사람이고 그게 좋아 디자이너가 된 건데, 패션은 비즈니스에 가깝거든요. 그 뒤에 리넨 디자인 일을 시작했는데 쉽게 느껴지더라고요.

남편이 유명한 음식평론가였죠. 파티와 음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남편에게 음식과 관련된 매너를 많이 배웠죠. 파티 디자이너 일을 하면서 상류층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남편 덕분에 상류층 문화를 많이 접해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어떤 면에선 남편이 일등공신이죠. 남편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요.(웃음)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요? 샌프란시스코에 아이리시 커피를 파는 부에나비스타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커피를 마시다가 만났어요.

앞으로 어떤 파티를 디자인해보고 싶은가요? 어떤 파티라도 좋아요. 한국의 미(美)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파티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외국인들이 한국을 멋지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국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요? 이번 일정으로 한국에 와서 일을 많이 했어요. 안 가본 데가 많아서 여행하면서 둘러보려고요. 평창 올림픽을 구경하거나 강릉, 속초도 가볼까 해요. 기차를 타고 부산을 가도 좋겠죠. 거기서 남해 쪽으로 통영을 거쳐 여수까지 한 바퀴 돌아볼까 봐요.(웃음) 여행하면서 영감도 좀 얻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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