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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힙합 가수 조PD에게 인생이란?

2018-03-08 17:37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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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순간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
조PD의 첫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가 19년 전 발표한 노래 가사와 맞닿아 있다. “순간이 모인 거란다, 인생이란.”
조PD(42·본명 조중훈)는 1998년 23살 나이에 한국 음악계에 충격을 안기며 데뷔한 우리나라 1세대 힙합 가수다. PC통신을 통해 전례 없던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공개했고,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가감 없는 표현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정현, 싸이, 윤미래 등과 컬래버레이션으로 한국에 피처링 개념을 처음 도입했고, 싸이, 도끼, 라디, 블락비 등 많은 가수를 발굴한 프로듀서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는 동안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이름도 얻었다. 불혹의 언덕을 지나며 자신의 본명으로 처음 책을 펴낸 그를 만나고 왔다.
 
 
오늘이 다 가기도 전에 내일 할 일 생각에 볼일 하나 볼 엄두도 없는 건
참 별일이란 말이야. 이랴 이랴 말 몰고 쫓듯 세월을 보내니 말이야.
(중략) 순간이 모인 거란다, 인생이란.

조PD ‘Fever’ 가사 中
 

첫 에세이집입니다. 어떤 계기로 책을 쓰게 됐나요? 출판사 발행인이 지인이에요.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죠. 사실 전부터 책을 한번 써보고 싶었거든요. 가사를 쓸 때와는 어떻게 느낌이 다를지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책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고요. 많이 괴로웠어요.(웃음) 가사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고요. 버겁고 힘들게 마무리했어요. 서점에 가면 책이 쏟아지듯 나오잖아요. 책 한 권을 마무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작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죠.

어떤 부분이 가장 고민스러웠나요? 읽어주실 분들을 떠올리고 상상했을 때 창피했어요. 저보다 사회 경험도 많고 연배도 많으신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습고 보잘것없다고 하시진 않을까 고민이 많았죠. 

책을 덮고 나니 조PD 인생에, 조PD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들던데요. 평소 독서량이 많겠구나 짐작되고요. 그렇게 읽으셨다면 다행이고 감사하죠. 책 읽는 걸 좋아해요. 꼭 책이 아니어도 활자로 된 건 뭐든지 읽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막연히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낭만적 인간, 조PD
 
본문이미지

그는 책에 자신의 유년 시절과 데뷔 에피소드, 사업 이야기, 남편과 아빠로서의 삶 같은 자전적 내용을 골고루 담았다. 음반업계, 4차 산업시대 등에 대한 생각을 담은 논평 형식의 글도 있다. 태어나 처음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인터뷰어가 되기도 했고, 일상에서 찍은 사진을 싣기도 했다.

책 제목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이 좀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있어 보여서 좋다”고 말하고는 소년처럼 웃어버렸다.

책의 서문을 빌려 설명해보자면 ‘낭만적 인간’은 쉽다. 조PD 자신을 뜻한다. ‘순수지속’은 조금 복잡하다. 지난 20년 전의 나, 어제의 나, 오늘의 내가 모두 내 안에서 나를 이룬다. 내가 보낸 모든 순간의 총합이 나이기에 미래를 크게 염려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늘 지금을 살아간다. 조PD의 삶의 철학을 압축해 담았다.

삶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19년 전 그가 2집 앨범 타이틀곡 ‘Fever’ 가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이 다 가기도 전에 내일 할 일 생각에 볼일 하나 볼 엄두도 없는 건 참 별일이란 말이야. 이랴 이랴 말 몰고 쫓듯 세월을 보내니 말이야. (중략) 순간이 모인 거란다, 인생이란.”
 
 
많은 사람이 오늘을 알차게 보내야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과거가 좋아진다고
믿는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과거 내가 내린 선택이 옳은 결정으로 판명되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 낭만적인가요? 전에는 낭만이라는 키워드가 제 세대보다는 선배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코드라고 생각했어요. 사업도 했으니 낭만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인 면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나이 들고 되돌아보니 저 또한 낭만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냉철하게 자르기보다는 감성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었고, 결국 예술가로서 인생을 산 사람이니까요.

음악에 빠져서 중학생 때부터 밴드 활동을 했다고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친구들과 록밴드를 결성해서 차고에서 기타도 치고 드럼도 쳤죠. 업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 허락된 취미 생활 정도였죠.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그런 결심에는 계기가 필요한데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했어요. 전공은 디자인 마케팅이었고요. 부모님께서 의류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럼에도 밤 시간을 이용해 음악 작업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왔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졸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면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때 그동안 믿고 있던 사회와 시스템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몰입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고 봐야 해요.(웃음) 학교는 땡땡이 치고 놀러 가고 그랬으니까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여기까지만 내고 은퇴해야지’ 늘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다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하면 음악을 못 듣거든요. 다른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어요. 작곡을 하면서 제 곡을 수천 번 들어야 하니까요. 엔지니어와 함께 앨범 한 곡 한 곡을 또 수천 번씩 듣고요. 그렇게 앨범이 나오면 이번엔 또 노래를 부르느라고 수천 번을 들어요.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음악을 못 듣는 거예요. 앨범을 그만 내고 싶었던 건 꼭 제 음악을 안 하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니까 많이 듣고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상황이 싫었어요. 음반시장이나 연예계 생태계도 저와 안 맞고요. 그 안에서 즐기고 놀면 좋은데 그러질 못하니까요. 그런데 사업을 해보니 사업도 그렇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본질의 것과 다른 면이 많은 거죠.

지금은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가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그 안에서 여유를 찾은 것 같아요. 전처럼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중간에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요령이 생긴 거죠.(웃음) 어제 만난 어떤 분이 이걸 몽롱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몽롱한 상태.(웃음)

세월 따라 조PD라는 사람도 변화했을 텐데요. 대중이 원하는 나와 나의 음악, 변해가는 나와 나의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많이 겪었죠. 데뷔 5년 차부터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음악과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다르고, 또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했던 앨범은 실제로 기존 팬들에게 비난도 많이 받았고요. 지금은 둘 다 좋아요. 딱 잘라서 ‘이것만 할 거야!’가 아니라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게도 했다가 ‘두루뭉술할 거야!’죠.(웃음) 이제 충돌하지 않습니다.
 

아빠, 남편, 조중훈
 
본문이미지

조PD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첫사랑과 성인이 돼 다시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결혼 14년 차 부부로 올해 초등학교 6학년, 2학년에 올라가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서로 잘 알던 사이인 만큼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지만 여느 부부들처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이 아이들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교육 문제로 예민해지면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결혼하면 훨씬 안정적이라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빨리 결혼하라고 종용하는 걸 보니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이들을 향한 부성애도 짙다.

“어떤 사람들은 총각들을 부러워하고 따라 하고 싶다는데 저는 아이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책 마지막 장에는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중 마지막 사진도 아이가 삐뚤빼뚤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글씨와 물속에서 수영하는 형의 모습을 동생이 포착한 장면이다.
 
 
내 삶의 모토는 오늘 하루를 100퍼센트로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면시간을 제외한 하루 18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10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낭만적 인긴과 순수지속> 中
 

아내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동창회에서 재회했다고요. 10년 만인데 그대로더라고요. 그동안 저도 교제한 사람이 있었죠. 그런데 조중훈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만난다기보다 제가 가수라서, 연예인이라서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어렸을 때라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그럴게’ 식으로 가볍게 만남을 이어갔죠. 그런데 아내와는 어린 시절 추억이 있어서인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고 몇 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어떤 인터뷰에서 보니까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아빠를 아는 사람들이 다 아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라고 했더군요. 그러자 아내가 “잘 이야기했다”고 했고요. 쿵짝이 잘 맞던데요. 성격은 완전히 달라요. 화법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요. 그런데 잘 맞는 편인 것 같아요. 모르고 산 세월보다 알고 산 세월이 길기 때문에 신뢰와 공감대가 있죠. 시간이 가져다준 동질감이 커서인 것 같아요. 서로 모르거나 숨기는 게 없으니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요. 결혼 초와 지금 별로 달라진 게 없죠. 그런 부부들이 있더라고요. 친구인 듯 부부인 듯 사는 부부들요. 저는 아내를 못 만났으면 아마 결혼을 못 했을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고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어요. 어떤 점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모든 게 달라져요. 관점 자체가 아이 중심으로 뒤집히는 건데요. 친구들도 똑같더라고요. 처음에는 별로 영향을 안 받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 ‘동료’가 되는 순간이 오면 결국 영향을 받아요. 저희 아버지 세대는 나라 경제를 부흥시키느라 바빠서 자식들과 거리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세대는 워낙 가족적이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영향을 받기도 해요. 같이 놀고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위로도 받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영향을 받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가 봅니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해요.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거든요. 자기 일정이 바빠서 부모와 놀지 못하죠. 저도 돌이켜보면 중학생이 되고부터 제가 제 생활의 중심이었으니까,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거예요. 아이에게 아빠 엄마가 세상 전부일 때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거죠. 특별한 걸 하고 특별한 데를 가지 않더라도 애들과 같이 있으면 되게 재밌어요. 같이 있고, 같이 이동하고, 대화하고 먹고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좋은 거예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미래 세대 진로를 과거 세대가 결정해도 되겠냐는 의문을 제기했어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아이들은 잡초처럼 던져놔야 한다고 봐요. 어차피 잘되고 못되고는 자기 팔자라는 생각이에요. 그걸 컨트롤하려고 애쓰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요. 컨트롤한다고 되는 게 아닐 거거든요. 결국 놓아야 하는데. 물론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런데 지금 교육은 과거 사고를 바탕으로 짜인 프로그램이잖아요. 이 교육을 믿고 출전하면 100% 깨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학교를 때려치울 수는 없지만 정도껏 공부하면서 새로운 기기나 문명을 빨리 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빌 게이츠도 자녀에게 휴대폰 안 주고 인문학을 강조했다고 해요. 좋아요. 그런데 잡초들은 모든 것에 노출된 상태에서 큰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휴대폰이 새로 나오면 사주고 휴대폰 들여다보는 시간도 방조해주는 편인데 엄마한테 들키면 혼나죠.(웃음) 스마트폰에 시장이 다 들어있잖아요. 여기 담긴 기술을 신체 일부로 갖고 놀지 못하면 앞으로는 원시인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크게 성공도 했고 실패도 맛봤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사람이 40대 이후까지 살게 된 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해요. 조선시대만 해도 마흔 정도까지 살다가 죽었는데 지금은 그 두 배도 더 살잖아요. 불혹이라는 나이, 변화를 겪는 시기가 인간에게 아직 체화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정체성의 방황을 많이 겪는대요. 사회가 성공과 실패를 놓고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려는 가치관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수십 가지, 수백 가지 가치들이 있잖아요. 행복한 삶도 있고, 자기한테 맞는 직업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요. 잘사는 인생이라는 건 후회 없는 인생인데 저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한 것 중에 성공으로 보이는 것도 있을 테고, 실패로 보이는 것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저 해보고 싶어서 해본 거예요. 결과적으로 안 맞았더라도 해본 걸로 됐고, 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면서 사는 거죠. 그래야 나중에 눈감을 때 ‘아 재밌었다’ ‘하고 싶은 게 더 있었는데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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