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star&

미국 브로드웨이의 '시스터 액트' 주역 맡은 김소향

2017-12-11 14:08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주역을 따낸 배우 김소향이 아시아투어, 말 그대로 동남아 순회공연 중 내한공연을 위해 귀국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녀가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주역을 따내기까지, 그녀의 브로드웨이 돌파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세계 연극의 중심지라 불리는 브로드웨이. 수많은 배우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지만 여전히 동양 배우에게는 더없이 혹독한 곳이다. 이미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주역 배우로 승승장구하던 김소향(37세) 역시 미국에서는 배역의 한계에 부딪쳐야 했다. <미스 사이공>이나 <왕과 나>처럼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만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초, 드디어 동양인 역할이 전무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아시안 최초로 주역을 꿰찼다. 영어 울렁증 때문에 “아임 프롬 코리아(I’m from Korea)”도 잘 못 해서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 그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아시아투어를 하며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한창 아시아투어 중인 그녀가 11월 24일 서울에서 막을 올리는 <시스터 액트> 내한공연을 위해 귀국했다.
 

뮤지컬은 내 운명
대학로 토박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다

김소향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통하는 대학로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 집 밖에 나가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거나 꽹과리, 북, 장구, 징을 들고 사물놀이를 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늘 공연을 보러 다녔다. 유치원 대신 스포츠단을 다니며 6살 때 기계체조를 시작했고, 안양예고 연극영화과를 다니면서는 부전공으로 현대무용을 했다. 그녀에게 노래, 춤, 연기를 모두 해내는 종합예술 뮤지컬은 필연과도 같았다.

“예술가들을 매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예술과 문화를 인생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배우가 될 거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았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뮤지컬 배우를 목표로 진지하게 생각한 건 고등학교 때였죠.”

그녀는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한 후 10년 동안 1년에 평균 두 작품씩을 소화했다. <페임> <아이다> <맘마미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드림걸즈> 등 굵직굵직한 작품의 무대에 오르며 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지만 2011년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났다.

“배우로서 힘든 시기였어요. 분명 새로운 작품을 하는데도 같은 작품을 하는 느낌이고,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많이 하던 때였죠.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만들어서 뉴욕필름아카데미에 보냈어요.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하게 됐죠.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히 해왔는데 계속 작품을 하다보니 마음먹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녀는 미국 생활이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처음에 아예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가장 힘든 것은 언어였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첫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떨려서 ‘나는 어디서 왔고 누구다’ 하는 말도 못했을 정도니까요. 친구나 선생님들이 무슨 말을 하면 ‘응? 뭐라고?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

한국에서 10년 동안 활동하며 모았던 잔고가 1년 반 만에 바닥이 났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영어 공부하고 발음교정을 받고 레슨을 다니느라 바빠 다른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내 돈이 다 가는구나, 안녕~’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뭘 해도 굶어죽진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신감인 것 같아요. 돈을 빨리 열심히 모아서 시집을 잘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다른 욕심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미국에 가서 깨달은 게 많아요.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얼마나 레슨을 많이 받으러 다니는지요. 부끄럽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했죠.”
 

본토 배우들과 경쟁에서 맛본 좌절
악바리 욕심쟁이에서 늘 감사하는 배우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미국에 머무는 동안 <왕과 나> <미스 사이공> 등 큰 무대에 올랐지만 어쩐지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시아인이 할 수 있는 배역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 사이공>을 하면서 전미배우조합에 정식 가입을 하게 됐어요. 이 조합에 들어가면 사실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적어지거든요. 아마추어는 페이가 없는 공연도 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조합 소속 배우는 정말 좋은 무대에만 오를 수 있게 돼 있어요. 100% 프로페셔널들이죠. 뛰어난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경쟁을 해야 하니 중압감이 어마어마했어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배우들과 서양 배역을 놓고 경쟁하며 우울증이 찾아왔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말도 못 하고, 한동안 바깥출입도 못한 채 식음을 전폐하고 14시간씩 잠만 자는 시기를 보내야 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저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그러던 중 뮤지컬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베버 역을 맡아 한국 무대에 컴백하게 됐죠. 돌아오고나니 깨닫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짜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내 나라에서 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무엇이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감사했어요.”

20대 때 그녀는 악바리였다. 어디에서 뭘 하든 이기고 싶었고 잘하고 싶어 해서 ‘독한 년’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단다. 하지만 미국 생활 이후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 사소해서 지나치던 것들 하나하나에 감사할 수 있게 됐다. 이 일련의 과정은 그녀를 더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 손 안에 있는 것을 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사람이든 돈이든 일이든 비우는 만큼 채워진다는 믿음이 생겼죠. 저 원래 굉장히 비관적인 사람이었거든요. 지금의 제 모습만 아는 사람들은 예전의 제 모습이 상상이 잘 안 간대요. 저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본문이미지

<시스터 액트> 최초로 동양인 캐스팅
커튼콜서 가장 크게 쏟아진 박수

그렇게 더 행복할 수 있는 배우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 김소향은 <보이첵> <마타하리> <모차르트!> 등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가끔 미국 오디션 공고 사이트에 들어갔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가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소식도 접했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동양인을 캐스팅한 적 없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사 대표님이 <시스터 액트>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아시아투어니 혹시 모르지 않느냐며 용기를 북돋아주셨죠. 오디션에 갔는데 역시나 동양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주역 오디션도 아니고 커버 역과 앙상블에 지원했는데 노래를 불렀더니 그 사람들 눈이 똥그래지더라고요.”

<시스터 액트>의 로버트 마리는 원작 영화에서 우피 골드버그가 맡았던 들로리스 역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어리고 착한 수녀였던 마리는 합창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자유롭고 힘있게 노래한다.

“한국에서의 저하고는 다른 성격이지만 미국에서의 저하고는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에요. 미국에서 사는 동안 언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항의라는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마리가 부르는 곡은 초짜 자리에서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내용이에요. 실수를 많이 했고 앞으로도 많이 할 테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가사죠. 연습을 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는데 오디션 장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노래를 불렀어요. 최종 오디션에서는 조용하게 있다가 꺅 하고 굉장히 높은 음으로 노래를 했는데 끝나고나니 모든 스태프가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얼마 후 출연 제안 전화가 걸려왔다. 커버도 앙상블도 아닌 주역 로버트 마리 자리였다.

“나중에 들으니 춤과 노래, 캐릭터는 전부 통과였는데 발음이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대요. 그런데 그걸 감수하면서도 뽑을 가치가 있다고 했다는 거죠. 그 말을 듣고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발음 교정하는 데 썼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대사를 하루 종일 중얼거리며 다녔죠. 한국말이라면 틀려도 지어내고 넘어갈 수 있는데 영어는 못 그러잖아요. 2회 공연이 있는 날에도 중간에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 솔로, 대사를 계속 연습했어요.”

같이 무대에 서는 배우들에게도 집요하게 물었다. “내 발음 괜찮아?” “내 말 알아들을 수 있겠어?”
 
“첫 번째 투어는 싱가포르였어요. 공연을 마친 후에 배우 중 한 명이 저를 안아주면서 그러더라고요. 오늘 친구가 공연을 보러 왔길래 ‘마리 역 배우 봤어? 그 친구 말 알아들을 수 있었어?’라고 물었더니 ‘100% 다 알아듣겠던데’라고 대답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요.”

그녀의 노력은 통했다. 커튼콜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고 ‘작은 체구의 동양인 배우가 극장을 뒤흔들었다’ ‘아시아의 자존심이다’ 등 현지 언론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공연 후 버스로 찾아오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뤄 미국 배우들이 그녀를 아시아에서 굉장히 유명한 스타로 착각할 정도였다.
 

미국과 한국 오가며
진짜 잘하는 배우라는 이야기 듣고 싶어

인터뷰 당시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국내 최초 내한공연을 한 달여 앞두고 있던 그녀는 한국 관객들로부터 더 많은 응원을 받을지 날선 잣대로 평가받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저는 원래 심각하고 어둡거나 눈물이 나는 작품을 좋아했어요. 예전에 브로드웨이에서 <시스터 액트>를 봤을 때도 노래는 좋지만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관객들이 이 작품을 왜 좋아할까 의문을 품기도 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웃을 일이 별로 없잖아요.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다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무 생각 없이, 밝게 웃을 수 있는 작품도 필요한 거구나라고요. 공연에서 관객들과 함께 춤추고 박수치고 하는데 그것도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관객들은 조금 점잖으신 편인데 웃을 준비하시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셔서 활짝 웃으며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17년 차 배우로서 자신의 일에 대해 얼마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 계획은 어떤지도 궁금했다.

“먼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이 길이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져본 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몇 년 안 된 배우처럼 부끄럽고, 만족감이나 확실한 자신감이 잘 안 들기도 해요. 배우는 오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닦달하고 채찍질하면서 힘들어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녀는 최근 라이선스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시스터 액트> 공연이 끝나면 한국에 머물며 국내 팬들을 좀 더 만날 계획이다.

“30대 후반은 여러 이유에서 힘들 수 있는 나이거든요.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역할이 바뀌기 전에 당분간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드리고, 저 자신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의 꿈도 확실하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 동양 배우 참 잘하더라’ ‘여기서 자라지 않았는데 진짜 잘하더라’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요.”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