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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윤재의 가을산책

2017-11-07 11:33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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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억새와 금빛 햇살이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안은 것 같은 시월 어느 날, 배우 박윤재와 함께 가을 산책에 나섰다.

헤어&메이크업 오지혜(보니또 02-715-8612)
스타일리스트 김래영
니트 소재 아이보리 티셔츠는 크리스크리스티, 블랙 코팅 진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 박윤재는 지난 9월 인기리에 종영한 102부작 일일 드라마 <이름없는 여자>에서 주인공 구도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픔이 있지만 한 여자를 만나 치유를 받고 그로 인해 변해가는 캐릭터로, 자상하고 로맨틱한 순애보적 인물이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감정의 큰 격차를 연기해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20%를 웃도는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넉넉한 가을을 보내고 있을 그와 함께 억새숲길을 거닐었다. 마침 배우는 지난 반년 동안 자신이 입고 있던 구도치라는 옷을 벗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만끽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온전하게 고유의 맛을 내는 배우로

이렇게 좋은 가을날 야외에 나오니까 좋네요. 평소 가을을 좀 타는 편인가요? 가을 너무 타죠. 많이 타요. 가을 타는 남자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혼자 있고 싶고 음악도 센티한 걸 듣게 되고요. 마침 드라마 끝나고 정리가 필요한 시기에 운 좋게 가을이라 더 좋아요. 저는 ‘우리나라가 사계절 중에 가을만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고 그래요. 좋잖아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날씨로 인해서 기분이 상하거나 짜증날 일도 없고요. 봄처럼 미세먼지가 있지도 않으니까요.(웃음)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박윤재는 지금 어느 계절에 와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봄인 것 같다가 겨울인 것 같다가, 여름인 것 같다가도 또다시 봄인 것 같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기분이나 상황, 주변 환경에 따라 바뀔 것 같아요. 제가 아직 박윤재라는 사람을 모르겠나봐요. 배우로서 말하라면 막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인 것 같아요. 수사자의 갈기가 막 새어 나오는 그때, 올챙이 뒷다리가 막 나오는 계절이요. 멈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네요.

모든 것이 무르익고 성숙해지는 가을에 내 인생이 와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항상 ‘어떻게 되고 싶으세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딱 막혀요. 생각을 많이 해보는데, 글쎄요. 누군가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고요. 이 정도로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로서 잘 숙성됐으면 좋겠다고요. 내 매력이 온전하게, 다른 향기에 묻히지 않고 박윤재란 사람으로 잘 숙성되고 싶다. 단점이든 장점이든 고유의 맛을 내고 싶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깊이를 더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후회 안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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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느낌의 브라운 가죽 재킷은 자라, 레이어드한 청셔츠는 바버, 아이보리 니트는 랄프로렌, 블랙 팬츠는 개인 소장품.

드라마가 끝나서 추석 연휴도 여유롭게 보냈겠습니다. 실은 추석을 챙기고 가족들과 함께 보낼 겨를도 없이 지냈어요. 연휴 동안 이사를 해서 이삿짐 정리하고 또 드라마를 하는 동안 워낙 에너지를 많이 써서 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겸 여행을 다녀왔어요. 아무래도 제 안에서 캐릭터가 빠져나가고 다시 저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면 제 모습을 찾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걸리는 것 같아요.

극중 캐릭터와 윤재 씨가 어떻게 다르길래요? 주변에서도 저보고 연예인 같지 않다고 하는데요. 저는 평범한 사람보다 더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아무래도 연기자는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삶을 살다보니 작품 후 감정을 털어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한동안은 좀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해요. 조용한 음악 들으면서 많이 걷고 사색도 하면서 정리하는 작업을 많이 하죠.

구도치처럼 순애보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농담처럼 얘기합니다만 그럼 사랑할 때 어떤가요? 하나의 이미지로 국한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분명히 도치 같은 면도 있죠. 모든 캐릭터는 저로부터 출발하는 거고 제 해석이 덧붙어 표현되는 거니까요. 사랑할 때라. 스스로 말하려면 닭살이 돋아서.(웃음)

그럼 도치와 닮은 점을 이야기해본다면요? 정의로운 인물이잖아요. 정의감에 불타는 부분이 있다는 게 닮은 것 같아요. 제가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어요.

완전히 상반된 점을 꼽아본다면요? 글쎄요. 아마 형수님(배종옥)이나 악역 캐릭터를 그렇게 쉽게 용서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오랜만의 작품이어서 각오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이번 드라마는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썼나요? 2년 만에 드라마를 하게 된 거라 욕심도 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그런데 항상 잘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처음에 오버 페이스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이번에 구도치란 인물을 맡으면서는 조금 내려놓고 내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좀 편안하게 가벼운 상태로 시작했죠. 막판에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좀 더 편하게 시청자 여러분에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결과가 어떤 것 같나요? 시청자 여러분이 판단해주겠지만 저는 처음으로 후회가 안 남는 작품이었어요. 너무 열심히 했어, 너무 대단해 그런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후회가 없어요.
 

배종옥 선배에게 배운 주연 배우의 자질

연기 연습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오늘 같은 화보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드라마 끝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가는데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를 하려면 내가 배우고 구도치였다는 걸 상기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감각을 열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면서 항상 감각이 열려 있고 오감이 열려 있지 않잖아요. 늘 충만한 예술가 같은 상태로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니까 많은 걸 접하려고 노력하죠. 시끄러운 곳에 가서 흥에도 젖어봤다가 조용한 곳에서 음악도 들었다가 극과 극의 상태를 많이 경험하며 감각을 열어보려 애써요. 오늘은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만큼 미리부터 작업을 더 해놓았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남기도 해요. 감각을 충만하게 열어놓지 않으면 대본도 온전하게 읽을 수가 없어요. 소설 읽듯 3인칭 시점으로는 누구나 볼 수 있는데 1인칭으로 바뀌려면 다른 시점이 필요하죠. 그런 사전 작업을 해야 시작점을 만들 수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만난 배우나 스태프 중 귀감이 된 사람이 있나요? 배우로 꼽자면 배종옥 선배가 그랬어요. 현장에서 항상 모범적이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셨죠. 저를 반성하게 만드는 분이었어요. 슛 들어가기 전까지 혼자 세트에 들어가서 계속 연습하시고, 촬영하다가 모두 밥 먹으러 가면 혼자 남아서 연습하세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다 밥 먹으러 가고 둘이서 연습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현장에 있으면 힘들어서 입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주연 배우를 맡았으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힘들 때는 그런 말씀조차 귀에 안 들어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끝나고나면 늘 그 말씀이 맞구나 하죠.

주연 배우는 어때야 한다던가요? 사람이 힘들면 자기만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 한 걸음 떨어져서 보고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김명욱 감독님은 KBS에서 일일 드라마를 많이 찍은 베테랑이시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달리신 분이에요. 왜 그 감독님 작품은 잘됐을까, 왜 시청률이 잘 나왔을까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다른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잘 이끌어주세요. 빠른 시간 안에 에너지를 뽑아내고 모든 스태프와 배우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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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 레드 재킷은 자라, 아이보리 티셔츠는 크리스크리스티, 블랙 코팅 진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워커는 닥터마틴.


좋은 아빠는 아직, 좋은 삼촌은 자신 있어

강렬한 모성을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혹시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저도 결혼할 때가 됐고 아이를 가질 나이가 됐죠. 아이를 예뻐할 자신은 있는데 잘 키울 자신은 반반이에요. 그런 두려움이 있어서 ‘갖고 싶다’는 말 자체가 조심스럽고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누나 채림 씨가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곧 삼촌이 되는데 소감은 어떤가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조카는 정말 많이 예뻐해줄 수 있죠. 왜냐면 내가 좋은 아빠가 안 되도 되니까. 좋은 삼촌만 되면 되니까요.(웃음) 아이를 혼낸다든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든지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든지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든지 하지 않고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잖아요. 좋은 삼촌이 될 자신은 있어요. 너무 좋아요. 

매형 가오쯔치 씨는 같은 남자가 보기에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은가요? 정말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요. 중국 사람들은 원래 다 이런가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 제가 평소에도 많이 반성하게 되거든요. 보면 알잖아요.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걸요. 지금도 아이가 생겨서 무척 행복해하고 좋아해요.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축하할 일이죠.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이 있다면 한마디. 어느 순간 깨달았는데요. 제가 팬이라는 존재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배종옥 선배 말처럼 주변 사람을 살피지 못하고 제 일, 제 연기만 바라보면서 ‘연기만 잘하면 돼’ ‘연기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돼’라고 생각한 거죠. 같이 일하는 주변 스태프나 팬들을 잘 못 챙겼어요. 그분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지낸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많이 서운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배우니까 연기로써 팬들한테 보답하면 되겠지만 그 외의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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