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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폰 잡은 배우 문소리

2017-10-05 11:03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영화사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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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라는 타이틀, 그 화려함 뒤에 감춰진 일상이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엄마, 딸, 며느리, 아내 그리고 배우로서의 오늘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 담아 연출한 문소리를 만나고 왔다.
데뷔 18년 차 배우 문소리가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연출, 각본,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메릴 스트립 부럽지 않은 트로피 개수, 화목한 가정 등 남들 있는 것 다 있지만 정작 맡고 싶은 배역의 러브콜은 더 이상 없는 중견 여배우의 삶을 경쾌하게 담아냈다.

메가폰을 잡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녀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감독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나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영화 일을 10여 년 하다 보니 영화가 더 좋아지고,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 공부도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조몰락조몰락 만들게도 됐네요.”

조몰락조몰락 만들었다고 하지만 영화는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예측을 비껴가는 맛깔스러운 대사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계속해서 터뜨렸고 연기력과 매력,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배우의 고군분투는 깊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했다. 영화 속 대사와 함께 배우 문소리의 삶, 여자 문소리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자.
 

# Movie Quote 1
네가 보기엔 내가 예뻐 안 예뻐.
내가 그렇게 안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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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스틸컷. 엄마, 딸, 며느리, 아내 그리고 여배우로 살아가는 한 여성을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렸다.

영화는 1막, 문소리가 캐스팅이 무산됐다는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괜찮은 척 싹싹하게 전화를 끊고 매니저에게 다짜고짜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네가 보기엔 내가 예뻐 안 예뻐. 내가 그렇게 안 예뻐?”

속이 상해 괜히 매니저를 괴롭히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2002년 데뷔한 이래 ‘예쁘다’ ‘안 예쁘다’는 무수한 평가 속에 여배우로서 가졌을 고민이 동시에 전해지기도 한다. 출연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극중 문소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감독한테 내가 매력이 없었나 보지. 중요한 건 연기력이 아니라 매력인 것 같아.”

‘쿨’하면서도 진지한 그녀의 답변. ‘예쁘다’는 말 그리고 ‘매력’이라는 단어에 실제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화에 예뻐, 안 예뻐, 매력적이야, 아니야, 이런 말이 많이 나오죠. 데뷔했을 때부터 외모에 대한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어요.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 2천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배우가 도대체 누구냐고. 단역도 조연도 안 해본 신인이라는데 누구야 하면서 사람들이 궁금해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평범한 이미지라는 이야기 그리고 여배우를 할 만큼 예쁘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그때 생각했죠. ‘예쁜 게 뭐지?’라고요.”

이창동 감독에게도 물었다.

“감독님 제가 예쁜 건가요, 안 예쁜 건가요, 배우는 얼마큼 예뻐야 하나요?”

이 감독은 말했다.

“소리야, 너는 너무 충분히 예쁘고 아름다워. 그런데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지나치게 예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어. 그렇지만 너는 배우를 하기에 합당하게 예쁘니까 걱정하지 마.”

이것도 문소리에게는 다 지나간 시간들이다. 지금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고 그 에너지가 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연기력, 말투, 말솜씨, 외모에 매력과 에너지가 다 들어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신경 쓰이기도 했죠. 비단 여배우뿐만 아니라 남자 배우에게도 그렇고, 또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 사람에게도 예쁜가 안 예쁜가는 중요한 이슈잖아요. 다들 각자가 생각하는 나만의 아름다움이 뭔지, 얼마나 휘둘리고 사는지,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 Movie Quote 2
저거 엄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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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가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촬영 현장.

극에서 문소리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하나 둔 엄마다. 텔레비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엄마 모습이 나오자 딸이 신나서 “와! 엄마다!” 하고 외친다. 문소리는 화면을 한 번 보지도 않고 리모컨으로 티비 전원을 꺼버리며 말한다.

“저거 엄마 아니야.”

영화 2막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딸, 엄마, 며느리, 아내로서 현실을 살아내는 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우는 딸을 달래고,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하고,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들르고, 살림을 돌봐주는 친정엄마 부탁으로 임플란트 할인을 받기 위해 치과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남편 앞에서 힘들다고 술주정을 하는 등 참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녀가 실제로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의 사이에 일곱 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지라 영화가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고 말하자 “100% 진심을 담은 영화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극에서처럼 정확하게 이런 사람들과 이런 술자리가 있었고, 이런 감독님한테 이런 얘기를 했고, 시어머니 병원에서 그런 대화 나누었고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유사한 경험 많았을 테고 그것들이 다 합쳐져서 이야기로 나온 것 같아요.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에 가까운 거죠.”

가끔은 본인도 헷갈린다고 했다. 대본에서처럼 남편이 정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 싶어 물어보면, 남편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단다.

“기억이라는 게 재구성되기도 하고 그렇게 인생에 다른 식으로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 두 가지가 섞이면서 재미나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영화는 그녀가 딸의 이름을 따서 영화사 ‘연두’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장 감독도 영화에 남편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제 남편 역은 처음부터 장현성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무서운 역할을 많이 했지만 사석에서 만나보면 굉장히 부드러운 분이고 천천히 가는 리듬을 갖고 계신 분이거든요. 그런 면이 비슷해서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어요. 남편 역에 맞는 배우를 끝까지 찾을 수가 없었죠.”

남편에게 출연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완강히 거절당했다. 촬영 전날까지도 “당신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이야기해서 결국 합의를 본 것이 뒷모습과 어깨만 걸고 찍기로 한 것.

“촬영장에 가보니 분장을 마치고 ‘양말을 신을까요, 말까요’ 하면서 고민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어떤 게 더 리얼할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심지어 저는 오케이를 했는데도 본인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 테이크 더 가겠다고 하기도 하고요.(웃음) 다음에 저에게 시나리오를 주면 복수하는 심정으로 애를 태울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아무도 할 수 없는 연기를 해줘서 고마워요.”
 

# Movie Quote 3
내가 출연했어도 아닌 건 아닌 거죠.
그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고요.

기자들에게 영화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문소리는 조금 긴장돼 보였다. 유쾌했던 영화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간담회는 차분하게 진행됐다.

“연기자로서는 이런 자리에 많이 와봤잖아요. 그런데 훨씬 긴장되고 부끄럽네요. 감독이라는 사람들이 참 뻔뻔한 사람들이었구나.(웃음) 배우보다 훨씬 용감한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자리를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는데 의도대로 안 되네요. 신인 감독이다 보니 겸허해지고 자세가 낮춰져요.”

영화의 마지막 3막은 한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꾸며진다. 신인 여배우가 그 감독의 거의 유일한 작품이자 문소리와 함께 작업한 작품에 대해 예술이고 걸작이라며 극찬에 극찬을 하자 그녀는 이야기한다.

“내가 출연했어도 아닌 건 아닌 거죠. 그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고요.”

18년 차 배우이자 신인 감독인 문소리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에서처럼 ‘저게 영화야? 저건 쓰레기야’ 그런 말을 과격하게 많이 했었어요. 술김에도 한 적이 있는 것 같고 맨 정신에도, 또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한 적도 있는 것 같아요. 18년 정도 영화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은 다 달라서 누가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걸 좇아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소리는 그 과정에 함께해 진짜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 과정 또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앞으로 연출을 계속해나갈 계획인지 물었다. 영화 마지막에는 배우들이 “나 때려치우고 감독할까” “감독은 무슨 감독. 연기나 똑바로 하자”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연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던 거나 열심히 해라. 그거 잘하기도 얼마나 힘든데 뭔 능력자라고 이것저것 넘보느냐’ 이런 말을 저 스스로에게 해요. 그렇지만 그걸 결정할 수 있는 능력도 제게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이지만 ‘네 인생은 배우의 인생이니 연기나 해’라는 결정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살다 보면 친구들이랑 작은 거지만 만들어볼까 생각이 들 수도 있죠. 그런 것들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덤벼서 즐겁게 해볼 거예요. 지금 내 자리가 어디고 첫 번째로 무엇을 해야 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엄격하게 생각해보려 해요.”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모두가 아시듯 녹록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라며 “이렇게 영화를 연출하고 개봉하기까지 용기를 낸 것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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