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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이제훈, 사명감을 말하다

2017-09-26 09:22

취재 : 강수정 TV리포트 기자  |  사진(제공) :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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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그러면서도 매 순간 진심으로 지금을 사는 배우 이제훈을 만났다.
이제훈은 스스로를 ‘노잼’이라 부른다. 질펀한 농담이 오가는 또래 친구들과 수다에서도 그가 끼어들면 어느새 진지한 기운이 감돈다. “제가 좀 재미가 없죠”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그지만, 방심한 사이 무심하게 툭 던지는 ‘아재 개그’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없는 너스레를 억지로 끄집어내려 발버둥치지 않는 모습이 딱 천생 배우다. 작품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술 담배를 멀리하는 이유도 연기를 위한 자기관리 때문이란다.

6년 전, 이제훈의 등장에 충무로는 박수를 보냈다. 분명 한국 영화계에서 전에 없던 얼굴이었다. 이제훈은 영화 <파수꾼>에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 섬세하고 여린 고등학생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말갛고 뽀얀 얼굴로 반항심, 질투, 분노, 슬픔으로 한데 엉킨 소년의 모습을 스크린에 풀어낸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대 수확이었다.

<파수꾼>으로 시작된 이제훈에 대한 기대는 영화 <고지전> <건축학개론>을 거치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수혈이 시급하던 한국 영화계에 이제훈의 존재감은 신인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몇 편의 영화가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받으며 때 아닌 연기력 논란까지 불거졌다. 쉴 새 없이 필모그래피를 이어간 그에게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이제훈은 그 시기 군입대를 선택했다. 잠시 카메라 밖에서 보낸 시간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까닭일까. 이제훈은 전역 후 확실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어느 순간 작품을 끝낼 때마다 허탈해지고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더 신중하게 출연하게 됐죠.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는 행위에 대한 책임감도 느꼈고요. 저 역시 극장에 가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거든요. 영화 볼 때가 그 어느 순간보다 즐겁고 행복해요.”

신중하게 필모그래피를 꾸려가자 ‘개념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왔다. 이제훈은 지난 6월 저예산 상업영화 <박열>(이준익 감독)로 2백30만 명을 불러 모았다. 꽃미남 비주얼을 버리고 일제시대 항일운동가 박열 그 자체가 된 이제훈은 확실히 이전보다 독기로 가득 차 보였다. 늘 지적받아온 발성 문제도 말끔히 사라졌다. 영화 메시지, 흥행, 연기 모든 면에서 알찬 성과였다.

<박열>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로 이어지는 행보도 흥미롭다. <아이 캔 스피크>는 미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통과를 위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청문회를 모티브로 한 작품. 반응 없기로 유명한 기자 시사회에서 이례적으로 박수가 쏟아져 나왔을 만큼 호평받고 있다. 이제훈은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로 등장해 디테일한 생활 연기를 펼쳐 보였다. 전작에 이어 또다시 일본 제국주의를 저격하는 작품에 출연한 그는 “두 작품 모두 사명감으로 출연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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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요. 전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성장했던 시간들이 배우를 꿈꾸게 했거든요. 영화는 제 삶의 전부예요. 내가 참여한 영화가 관객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영광이 있을까요. 다만, 개념배우라는 수식어는 쑥스러워요. <박열> 이후 점점 더 많은 분이 저를 주목해주시니 아무래도 의식하게 되죠. 이건 배우로서 받아들여야 할 삶인 것 같아요. 스스로 유연해져야죠. 개인 삶이 재미는 없더라도 흐트러지지 말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해요.”

기존 위안부 소재 영화들이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유쾌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방법을 택했다. 영화는 중반까지는 나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가 쌓아올리는 따뜻한 정과 유머에 초점을 맞추다 후반부에 들어서야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사연을 밝히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무너져간 소녀들의 영혼, 일본군의 잔혹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위안부 청문회 장면에서는 울분과 통쾌함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솔직히 처음엔 우려도 있었죠. 혹시나 우리 영화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누가 되진 않을까. 하지만 제작진과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5년 전 <건축학개론>으로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홍보나 마케팅이 자극적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죠. <아이 캔 스피크>는 할머니들의 사연과 아픔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영화예요. 강요보다 잘 스며드는 영화죠. 저를 포함해 우리는 과연 위안부 문제와 아픔을 보살피고 헤아리려 얼마큼 노력했나요. 할머니들께 이 작품이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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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제훈은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출연했다. 작품 속 말끔한 모습을 180도 배신하는 엉뚱하고 싱거운 이제훈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배우 이제훈과 자연인 사이 간극을 두고 있다는 그는 <삼시세끼> 탓에 자신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부끄러워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짜 제 모습이 나갔어요. 배우로서 어느 정도 신비로워야 연기할 수 있는데 환상을 너무 깨버린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엔 <삼시세끼>에서 나온 것처럼 대충 입고 나가면 아무도 몰라봤는데 이젠 알아보더라고요. 꾸미고 다녀야 하나 싶어요. <삼시세끼>에서 가장 놀란 건 에릭, 이서진 형의 요리 실력이에요. 와, 어떻게 그렇게 맛있을 수 있죠?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뭐든 뚝딱뚝딱 만들잖아요. 저도 그런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데.”(웃음)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은 이제훈을 두고 “처음엔 설정인가 싶을 정도로 진지했다”고 말했다. 원칙주의자, 철저한 자기관리, 썰렁한 아재 개그가 <아이 캔 스피크> 속 민재와 똑 닮았다고. 이제훈 스스로도 “이야기로 재미를 유발하는 타입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예전엔 누가 먼저 말을 걸어야 입을 떼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해요. 드라마 <시그널> 때 김혜수, 조진웅 선배님이 스태프들과 시시콜콜한 소통하는 걸 보며 느낀 게 많았거든요. 예전엔 연기만 신경 쓰느라 직진했는데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현장 분위기를 신나게 주도하는 것도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가만 생각해보니 구설수뿐만 아니라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었다. 연애를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이제훈은 “시간이 없었다”고 지극히 그다운 대답을 했다.

“지금 소속사를 만나고 데뷔하면서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어요. 이후엔 군대 다녀왔고, 전역해선 연기 복귀하느라 정신없었죠. 안 쉬고 달렸어요. 20대 초중반에는 연애를 꾸준히 했는데 일을 하면서 맥이 끊겼어요.(웃음)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연애 상대로 동종 업계를 선호한다, 선호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건 없어요. 하지만 작품할 땐 조금 더 프로답게 잘하자는 생각이 많아서 사적으로 어울리는 부분이 크게 없어요. 가끔 만나는 연예인들도 <파수꾼>의 박정민 씨, 같은 소속사의 한예리 씨 정도가 다예요. 저, 참 재미없게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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