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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를 찾아가는 여정의 삶 홍석천

2017-07-06 11:12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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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의 떠오르는 핫스팟, 마이 스카이(My sky)에서 홍석천을 만났다.
근사한 남산타워 조명과 함께 초여름 서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그의 새로운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뻥 뚫린 하늘만큼이나 시원하고 유쾌했다.
이태원 일대에 위치한 일명 ‘홍석천 레스토랑’들 중 가장 최근에 생긴 마이 스카이는 홍석천이 직접 지어 올린 건물 4층과 5층 루프톱에 위치한 루프톱 바(Rooftop Bar)다. 층수는 낮지만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기가 막힌 장소에 위치해 있어서 도심 속 망중한을 즐기기에 딱 좋다. 청량한 칵테일부터 샴페인, 와인, 양주까지 다양한 술이 마련되어 있고, 홍석천 레스토랑들의 노하우가 집결된 음식들이 선을 보이고 있어서 입맛과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미 합격점을 받았다. 여기에 아이돌을 비롯한 인기 연예인들이 많이 다녀가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평일 오후에도 역시나 손님들이 꽤 많았다.
 
 
세입자 마음 아는 착한 건물주
 
“아유, 빛 좋은 개살구예요. 겉으로 좋아 보여도 속으로 들어가면 허덕허덕허덕.”(웃음)
 
마이 스카이는 홍석천에게 최초로 건물주라는 수식어를 준 곳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래된 건물을 사서 직접 5층짜리 건물로 신축했다. 세입자에서 건물주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오랜 시간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세입자의 애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인지라 배려하는 건물주가 됐다.
 
“저는 착한 건물주 하려고요. 건물 완성하고 나서, 옷가게 하는 친구들이 3개 층을 쓰겠다고 하더라고요. 고맙다고 했죠. 그런데 2·3·4층을 쓰겠다는 거예요. 매니저에게 ‘왜 2층부터야? 쇼룸 만들 거면 1층이 낫지 않아?’라고 했더니 비용 문제가 있었나 봐요. 본인들이 생각하는 월세 부담금이 있었을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럼 내가 4층 쓸 테니까 1층 주라고요. 월세는 당연히 그 친구들이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라고 하고요.”
 
이유는 단순하다.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런 인정 넘치는 본인의 성격 탓에 사촌동생인 총괄 매니저와 부딪칠 때도 많다고 한다. 레스토랑의 실제 살림을 맡아야 하는 매니저의 눈에 홍석천의 심성은 너무나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그거 때문에 늘 싸워요. 그럴 때마다 저는 ‘방송에서 번 돈 있잖아? 그걸로 박아!’라고 하죠.”(웃음)
 
 
경리단길 분위기 깡패 ‘마이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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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길 제일 자주 와요. 아직 오픈 초기라 자리를 잡아야 하거든요. 방송이 없을 땐 거의 이곳에 있어요. 매장 상태도 점검하고, 메뉴도 꾸준히 체크해야 하고. 무엇보다 제가 자주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방송이든 레스토랑 운영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다. 방송 녹화가 늦게 끝나서 피곤한 얼굴로 도착한 그이지만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반기니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방송 일과 레스토랑 일에 경계가 없는 그는 대중과의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먼저 맛있게 먹었느냐 말을 건네고 스스럼없이 사진도 찍어주면서 친밀도를 높인다. 이태원을 섭렵한 홍석천의 노련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간 홍석천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오픈한 레스토랑들처럼, 이곳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자랑한다. 마이 스카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곳은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다. 5층 루프톱은 말할 것도 없고, 4층에는 커다란 원형 창문을 만들어서 꼭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하얀색 원형으로 된 조명은 구름을 연상시키는데 홍석천이 센스를 발휘한 결과다.
 
작은 미니 바와 함께 만들어진 5층 루프톱은 방콕의 트렌디한 루프톱 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방콕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홍석천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즐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온다.
 
“여기 의자에 앉아서 칵테일 한 잔 들고 남산타워를 바라보면 최고예요. 그냥 서울이 내 거야.(웃음) 요즘 날씨가 좋아서 루프톱을 즐기기에 가장 좋을 때죠.”
 
 
한 권의 에세이가 된 찬란한 47년
 
현재 홍석천이 이태원 일대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모두 13곳이다. 매출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이 레스토랑 사업에 굉장한 애정과 노력을 쏟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방송에서 번 돈으로 레스토랑 먹여 살린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양평이나 가평, 제주도 등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의 바쁜 삶과 바꾸고 싶진 않다.
 
“제가 이렇게 끊임없이 하는 데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첫째는 브랜딩이에요. 홍석천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건데요, 말 그대로 과정이죠. 사실 아직은 제가 해놓은 것은 대단히 없어요. 아까 말했듯이 허덕허덕.(웃음) 두 번째는 저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예요. 우리는 태생적으로 욕을 먹는 위치에 있으니까, 친구들에게 ‘괜찮아, 이렇게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 욕먹는다고 기죽거나 비뚤어지지 말고 하고 싶은 것, 꿈꾸면서 가. 너네도 나처럼 당당해질 때가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이 하나 정도는 앞장서줘야 ‘아, 그래 쟤도 하지? 그래, 힘내자’ 이런 느낌 들잖아요. 나도 완벽한 사람 아니고 실수투성이지만,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잘 살아야 해요.”
 
알려진 대로 그는 커밍아웃을 선언한 국내 처음이자 마지막 연예인이다. 커밍아웃을 선언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17년이라는 그의 시간은 문자 그대로 치열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사람들 시선도 많이 변했지만, 당시 그가 감내해야 했던 현실은 무척이나 혹독했다. 하루아침에 방송에서 퇴출을 당했고, 창업한 가게는 실패했고, 돈은 다 떨어졌다. 마포대교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그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냈고 지금의 홍석천이 됐다. 이태원에서 내로라하는 사업가, 방송인, 그리고 건물주. 더 늦기 전에 본인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무엇보다 본인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찬란하게 47년>이라는 제목에 ‘아름다운 게이, 홍석천 지랄발광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를 펴냈다.
“정말 힘들게 살았는데, 그런 저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분들이 있어요. 너무 감사하고 신기해요. 제가 외롭고 힘들 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제 이야기를 정리해봤어요.”
 
<찬란하게 47년>에는 그의 연애사부터 가족사가 솔직하게 들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픈 이야기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본인이 힘든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그 고통 한가운데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 본인의 이야기로 단 한 명의 이름 모를 사람이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My’를 찾아가는 여정이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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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는 모두 ‘My(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마이 스카이, 마이 스윗, 마이면, 마이타이 등등. ‘My’라는 수식어는 홍석천이 만든 고유의 네이밍이다.
 
한편 ‘My’는 홍석천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실제 그의 삶에서 커다란 부분은 가족들과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 본인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더한 행복을 느끼는 그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행복에 대한 갈망이 큰 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가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 건물도 사고, 방송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하세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아직 과정에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최종 목표는 ‘My’를 찾아가는 거예요. 제 브랜드 ‘My’를 제대로 구축하고 싶은 마음과 제 인생에서 ‘My’를 찾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요. 행복, 사랑, 사람 이런 것들이요. 어찌 보면 제 삶을 관통하는 단어가 결국 ‘My’인 것 같아요.”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 늘 방황했으며 고민이 많았던 그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운할 때도 많았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던 시간을 살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왔다.
 
요즘 그는 경리단길의 젊은 크리에이티브 집단과 교감하는 데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있다.
 
“제가 초기 이태원 멤버잖아요. 요즘은 이태원에서 경리단길로 스폿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젊고 감각 있는 예술가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각 분야에서 자기 재능을 펼치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단순히 레스토랑 몇 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대하는 역할을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47년을 살아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의 마음이 생긴다는 홍석천은 젊은 친구들이 좀 더 치열할 수 있도록, 좀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내 나이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열려 있고 젊게 사는 사람에 속하는데, 점점 달라지는 것도 느껴요. 이를테면 제가 ‘요즘 젊은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쓰더라고요. ‘야 20대 너네들 이리 와봐, 불평불만 할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웃음) 감각 있는 젊은 친구들이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이 더 신나게 잘 놀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제 놀고 싶어도 더 놀 수가 없거든요. 뭐, 커밍아웃 전에 많이 놀았으니까 괜찮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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