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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61년 대학로에서 노인치매 연극하는 이순재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고 울던데"...중고교 찾아가는 뮤지컬 공연도

2017-05-04 08:58

글 : 김보선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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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예그린 극장에서 배우 이순재를 만났다. 올해로 연기 인생 61년째다.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목소리는 또렷했고, 생각의 정리도 명료했다. 드라마를 넘어 예능에서도 종횡무진인 그는 요즘도 연극무대에 꾸준히 오른다. ‘예술성의 발견’이라는 젊은 시절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태어나도 당연히 배우….
요즘 같으면 수백억도 벌 수 있는데 왜 안 해요?”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전도유망한 청년 이순재가 흔히 말하는 성공 대신 연기를 택한 이유는 ‘연기예술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딴따라로 무시당하고 출연료 한 푼 받지 못하는 배고픈 시절을 한 치의 후회 없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61년을 달려온 이순재는 어느덧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연기자이자 배우들의 우상이 됐다.
 
 
“잠깐 정치,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내 원래 자리 찾는 것”
 
여전히 건강하신데 특별히 아침에 운동하거나 건강관리 하는 게 있나요? “우리 같은 사람은 늘 시간에 쫓겨 다니기 십상이죠. 약속된 시간에 나가야 하니 아침 운동을 할 시간은 거의 없어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나 그러는 거지 우리 같은 직종은 6시에도 나가고 8시에도 나가니까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은 있을 수 없죠.”
 
골프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80년도에 좀 늦게 배운 운동인데, 그나마 그거라도 배워놓았으니까 시간이 맞으면 운동하고…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 그거예요.”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거야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거겠죠. 우리 국민 모두가 지금 걱정하는 부분이 그거 아닙니까. 좋은 지도자가 나와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텐데…. 참 불행하게도 획기적인 대통령이 안 나와가지고 이 모양이 된 거죠. 이번엔 제대로 된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정치하셨잖아요. “잠깐 했어요, 조금. 그것도 뭐 목적은 당시 우리 협회(연기자협회) 회장이 (고) 이낙훈 군이었는데 11대 비례대표를 받아가지고 그 인연으로 시작했죠. 그 당시만 해도 우리 직종이 비례대표를 받는 건 획기적인 사건이었어요. 우리 문화의 정책적인 부분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발현할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내가 도와주겠다고 정치에 참여한 거거든요. 근데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요. 잘되지 않더라고. 14대에 지역(서울 중랑을)에서 뽑혔는데, 지역 대표보다는 직능성 대표를 강조했기 때문에 4년 동안 문화예술위원회에만 있었어요. 처음부터 정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니까. 정치하려 생각했다면 진작 했지.”
 
정치를 갑자기 그만두셨죠. “15대 때 안 한다고 선언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나이가 60이 됐더라고요. 그럼 내 직업으로 돌아와야 한단 말이에요. 사실 의원 생활을 하면서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골치만 아프고 힘만 들고요.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 여론조사도 높게 나와 야당위원들조차 한 번 더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원래 내 뜻이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둔다고 그랬죠. 그것도 당이나 동네에 말하면 절대 안 돼요.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못 합니다. 그래서 신문에다 먼저 터트렸어요. 왕영은씨 남편이 신문기자였는데 그곳에 먼저 터트려버렸죠. 당이나 동네에선 난리가 났지만, 한번 발표했으면 번복할 수 없다고 설득했어요. 무엇보다 빨리 내 자리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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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주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아직도 진행형”
 
지난해엔 연기를 시작한 지 60년이 넘어 기념공연도 하고,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객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어요. 40주년이나 50주년도 그냥 넘어가고 60주년도 사실 무슨 기념을 해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왜냐면 나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난 60주년인지도 몰랐어요. 따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후배들이 따져보더니 소박하게 한번 해보자 해서 작년에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전국투어 공연을 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은 벌써 네 번째라 크게 부담이 없었죠.”
 
TV를 비롯해 활동이 많은데 연극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요? “연극으로 시작했고 내 본질이 여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시간 조건만 맞으면 연극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근데 연극은 시간의 조건이 필요해요. 보통 한 달 내지 두 달의 연습기간이 있어야 하지요.”
 
요즘 출연하는 작품은 치매를 다룬 <사랑해요, 당신>이죠? “이번 작품은 노인 치매에 관한 것이라 조금은 더 구체적이죠. 연극이지만 치매에 대한 요인, 현상, 가족들의 치매 가족 대처법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요. 상당히 현실적인 작품입니다. 와서 보시면 나이 먹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아, 치매는 저런 것이구나’, ‘치매에 걸린 가족에게는 저렇게 배려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공감하죠. 나이 먹은 사람은 다 자신의 이야기이고, 젊은이들도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와서 많이 울더라고요. 자기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하는 모양이야. 잘못 생각하면 동숭동(대학로)에서 다루는 나이 먹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너무 진부할 것 같아서 소외하는데 사실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작품들은 젊은 층에서 훨씬 더 많은 반응을 일으켜요. 젊은 층에게 주는 메시지도 상당히 크고요.”
 
다음 작품은 어떤 걸까요. 얼마 전에 기사를 보니 <신혼일기>(tvN)를 연출했던 PD가 이번에는 선생님 부부를 대상으로 해서 <황혼일기>를 해볼 생각이라던데요.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다음 작품은 시간을 봐야 돼요. 연극하자고 하는 작품이 두서너 개 있고, 텔레비전도 가을에 예능이랑 잡혀 있는데 일정을 조정해야죠.”
 
최근에 부부의 러브스토리가 화제였죠. 연애 시절 편지 공세를 펼친 이야기요. “가족 이야기는 잘 안 합니다. 우리가 예능을 나가는 건 프로그램 홍보 때문이지 예능을 위해 나가는 게 아니고요. 무엇보다 가족 이야기나 개인 이야기는 잘 안 해요. 우리 집사람은 텔레비전에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어요. 지난번처럼 우연히 한 번 비친 거 말고는요. 또 본인이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게 대학 3학년 때죠. 그전에, 중·고등학교 때는 어땠나요? “중·고등학교 때는 연극에 대해 전혀 몰랐죠. 고1 때 6.25가 났어요. 그 이후 고등학교 생활은 본교에서 한 적이 없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란지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대전에선 대전고등학교에서 청강을 했었죠. 그때는 연극에 관심을 가질 만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50~60년대 대학생들은 여가생활의 활동 범위가 대단히 좁았습니다. 우선 돈이 없으니까. 당구 치거나 이런 게 없어요. 그럼 결국 용돈 생기는 거 모았다가 영화 보는 것밖에 없죠. 그럼 왜 영화를 보느냐. 아마 요즘 액션 영화 같은 거라면 안 봤을 거예요. 그 당시에 본 영화라는 건 전부 예술영화입니다. 2차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화들을 봤는데 특히 유럽 영화는 흥행(영화)이 아니라 예술(영화)입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명작을 보고 명배우를 보고 명연출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명배우들의 예술성을 발견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아, 저 정도면 해볼 만하겠구나’, ‘저건 참 예술이구나’ 하고 느꼈죠. 당시 사회 인식은 우리 직종을 예술로 치지도 않았어요. 소위 딴따라, 광대로 비하했지. 근데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이 분야의 역사가 깊은 나라는 전부 예술가로 인정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막연히 저런 정도면 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점점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또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해서 보면 각국 배우들에 대한 그 나라의 평가, 그 계통의 세계적인 평가들이 다 나오니까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뭐 그렇다고 이걸(연기) 직업으로 하려던 건 전혀 아니고. 처음 시작은 대학극 경연대회 때문이었죠. 그 당시에 1년에 한 번씩 남산 국립극장에서 대학극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하고 싶은 친구들끼리 만들어서 지원하는 거였어요. 서울대에서도 신영균 선배가 주인공이 돼서 하더라고요. 그러다 내가 3학년 되니까 없어졌어. 각 단과대학별로 해서, 우리도 인문대학에서 하다 다시 통합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마추어로 연극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사회 나가서도 활동이 이어진 거죠.”
 
돈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겠네요? “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돈 주면 좋지. 그렇지만 돈을 받을 데가 없으니까. 우리는 연극을 한 10년을 해도 한 푼도 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소위 ‘동인제’라 해서 각자가 책임지는 행위였죠. 무슨 흥행사가 있던 거도 아니고. 50년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돈을 받은 게 78년 <세일즈맨의 죽음>이었어요. 손님이 많이 드니까 그때 몇 푼 주더라고요. 그게 처음이에요. 그전에는 연극하면서 돈 달라는 소리는 해본 적이 없고 받을 생각도 못 했죠. 그 당시 직업으로 이걸 선택한 우리 대선배들은 대부분 말년에 다 경제난 때문에 슬프게 쓸쓸히 돌아가셨어요. 명배우들이 말년에 돈이 없어가지고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걱정이 안 됐나요? “걱정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성 발견’ 덕분이에요. 이걸 선택할 때 정말로 막연했어요. 어떤 구체적인 방안이나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뛰어든 거예요. 만약 돈을 생각했다면 진작 전직을 했겠죠. 보따리 싸가지고 육법전서 들고 산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있었다면 고시패스 못 하겠어요. 그러나 이걸 발견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지 간에 뚫고 나간 거죠. 그 당시에 우리 직종이 어려웠어요. 장가가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딸도 안 줬다고요. 완전히 제쳐놓은 직종이었죠. 같은 예술 계통에서도 우릴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한번은 우리가 촬영을 하러 아틀리에를 빌린 적이 있어요. 내가 보기엔 대단한 화가의 아틀리에도 아니었죠. 그 부인이 뭐 모르고 승낙을 한 거야. 한창 촬영을 하고 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주인 화가가 나타나선 ‘이거 뭐 하냐’고 소리를 지르며 ‘아니 딴따라들이 왜 내 화실을 더럽혀’라고 하더군요. 그런 판이었는데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당연히 변화가 왔어야 할 현실이고. 이미 외국은 다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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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찾아가는 뮤지컬 공연 펼치는 ‘아리인’ 총재
 
한류가 이렇게 성장한 요인이 무엇일까요? “따져보면 우리 공연예술은 전통성에서 낙후되어 있어요. 동양에서도 우리는 공연예술에 대한 전통이 전무했어요. 일본은 가부키라는 형태가 도쿠가와 때부터 있었고 중국은 경극이 있잖아요. 우린 아무것도 없었죠. 그런 바탕에서 이렇게 한류가 뻗어 나간다는 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그건 ‘타고난 재능’이라고 봐요. 우리 그런 기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정치에 몸담았던 경력 때문(?)인지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역사교육과 사회통합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단군 이래 900여 회의 외침을 받은 민족입니다. 전 국토를 유린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럼 다른 민족 같았으면 벌써 말살당했어요. 대국에 먹혀 저기 중국의 변강 민족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당당하게 자주성을 지키고 있는 거야. 이런 건 전 세계에서 우리 민족밖에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도 다 도망가서 그 지역에서 독자적인 생활을 하다 다시 뭉친 거잖아요. 우린 우리 내부에서 짓눌려 있으면서도 우리의 독자성을 잃지 않았던 거죠. 그 숱한 강요와 탄압을 이겨낸 겁니다. 이건 보통 민족이 아니란 거죠. 그 민족적인 자질을 부각시켜서 우린 뭐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줄 필요성이 있어요. 지금 이 현상은 후진적인 정치적 병폐에서 비롯된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우리의 본질이 아니죠. 그래서 난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의 비전이 뭐냐? 잘사는 거다. 지금보다 훨씬 유복하게 멋있게 사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우리가 가진 역량을 모아야 할 것 아니냐.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역량 강화로 결집해서 극대화하는 거다. 그럼 우린 금방 4만 불 돼요. 4만 불 되면 우린 어디 가든 대우받아. 왜? 팁을 잘 줘요. 어딜 가든지 인기 최고야.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우리가 힘을 모아야 돼요. 얼마 전 모 대통령 후보에게도 말했어요.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당신을 반대했던 세력의 최소한 3분의 1이 당신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아라. 그게 국민통합이다’라고요. 기존 세력들은 통합이 쉽지 않아요. 고질적으로 분열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국력을 통합할 수 있고 자기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중·고등학교에 찾아가 뮤지컬 공연을 하는 ‘아리인’의 총재를 맡고 있는 것도 그런 활동의 하나인가요? “아리인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뮤지컬 활동을 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 행위는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에요. 집단적인 행위란 말이죠. 집단행위가 뭐냐면 거긴 별놈이 다 있다고. 성격이 안 맞는 사람, 성질이 다른 사람, 가족 환경이 다른 사람까지 다 모여가지고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 힘을 합치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의 결집, 타협, 조종, 타협의 근간이 연극행위예요. 이건 청소년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스태프들과 앞에 나오는 전면, 후면이 하나가 돼야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 항상 서로 토론하고 협력하고 화합하고, 내가 하나 좀 맞지 않더라도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거고…. 이건 상당히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그 뜻에 찬성해서 총재로 참여하는 거고요. 많은 학생의 참여로 외연이 확장돼서 청년들 의식과 문화를 선진화하는 진취적인 활동을 하도록 해야겠죠. 그래서 우리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반드시 연극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이미 외국은 다 하고 있어요.”
 
그는 2015년부터 사단법인 ‘아리인’의 총재를 맡고 있다. ‘학교로 찾아가는 뮤지컬’을 표방하는 이 단체는 중·고등학교로 직접 찾아가서 청소년들에게 생명존중과 희망을 전하는 뮤지컬 공연을 펼친다. 또한 ‘전국 학생 뮤지컬 경연대회’와 ‘통일글짓기 공모’ 등의 사업을 한다. 서울시 교육위원을 지낸 최명복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명성황후>, <서편제> 등을 연출한 윤호진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 열심히 하다 마무리하고 싶어”
 
연기자 생활 61년째인데 도중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만두려고 했으면 벌써 그만뒀죠. 왜냐하면 그걸(어려움) 이미 감안하고 시작했기 때문이고 ‘예술성의 발견’이라는 미래가 보였으니까요.”
 
그래도 다음 생애에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이걸 하죠. 다시 태어나면 지금보다 조건이 좋을 거 아닙니까. 대박 나면 1~2년 안에 100억을 벌 수도 있고. 이 이상 좋은 직종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지금 100여 개 대학에 연기 관련 학과가 생기게 된 거예요. 재미있는 현상은 1980년대부터 시작해 이것 이상으로 확대된 분야가 없어요. 그건 결국 우리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다 여기에 집약이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또 경제적인 조건이 향상됐잖아요. 요즘 배우들은 드라마 한 편 끝내면 몇 달을 쉬어요. 우린 몇 달 쉬면 굶어야 됐어요. 하나 가지고도 안 돼요. 두세 개씩 해야 했었죠. 그런 시절에 우리가 했던 거예요. 지금 같은 시절이라면 100번도 더하지. 한 프로만 뜨면 대박이 나는데 그걸 왜 안 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다른 분야를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그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던 거 열심히 하다 마무리해야죠. 이 직종에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 암기력이에요. 암기력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둬야 하는 거죠. 특히 연극은 대사가 많아요. 최근 한 <세일즈맨의 죽음>도 580마디였어요. 막을 올리면 세 시간을 쭉 나가야 하는 거죠. 중간에 건망증이 있어 차단되면 막을 내려야 한단 말이에요. 보통 확신이 없으면 못 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TV나 영화는 잘라가면서 할 수도 있죠. 근데 후배들과 같이 있는데 다섯 번 여섯 번씩 NG 내고 ‘미안하다, 다시 시작하자’ 그럼 이거 벌써 체면이 말이 아니죠. 그때쯤 되면 스스로 판단해서 ‘아 이제 내가 끝났구나!’ 하고 물러나야죠. 아직은 정신 말짱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여든넷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대사를 외울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비법은 없어요. 대본 나오면 열심히 외는 수밖에 없어요. 각자가 기억력 유지나 체크를 위해서 이것저것 외어보는 방법들이 있죠. 각자 자기 방식대로요. 심심하면 이것저것 좀 생소한 거 외어봐요.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이름을 쭉 외는 거죠.”
 
그는 초대부터 45대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까지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통령들이 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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