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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더' 이병헌, 그가 곧 장르다!

"결혼, 당연히 연기에 도움"

2017-03-28 09:52

취재 : 김수정 TV리포트 기자  |  사진(제공) : BH엔터테인먼트, TV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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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곧 장르다. 수많은 ‘믿고 보는’ 배우가 있지만, 그중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더하는 배우는 단연 이병헌이 독보적이다.
이병헌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16년 만에 웰메이드 감성 드라마로 돌아왔다. 영화 <싱글라이더> 이야기다. 이병헌은 <내부자들>, <마스터>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이미지를 벗고 증권회사 지점장이자 모든 것을 잃고 사라진 남자 강재훈 역을 맡아 눈빛과 표정만으로 감성을 전하는 독보적 연기를 선보였다. 오로지 연기만으로 한 작품을 오롯이 이끌어가는 경지라니. 괜히 이병헌이 아니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가장 충격적인 시나리오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한 가장이 부실채권 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밀정>에 이은 워너브러더스의 두 번째 한국영화 투자작으로, 충무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감성 드라마다. 단편영화를 비롯해 다수의 CF, 뮤직비디오로 실력을 쌓은 신예 이주영 감독이 직접 집필한 영화의 각본은 <밀양>,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이 각색 과정에 참여하며 더욱 완성도를 더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입소문은 이병헌이 출연을 결정하며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가장 충격적인 시나리오였어요. 영화의 전체적인 감성과 무드가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로 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겠다는 심정으로 출연하진 않았을 것 아니에요. 배급사한텐 미안한 이야기지만 흥행 고민이 크진 않았다니까요. 어떻게 모든 영화가 다 흥행할 수 있겠어요. 숫자로 영화를 평가하는 현실이 되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아주 예전부터 해왔어요. <싱글라이더>로 천만 흥행? 단 1%도 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꼭 출연하고 싶었어요. 관객은 적게 들더라도 영화에 대한 평은 좋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죠. 그 정도로 시나리오가 주는 충격이 강렬했어요.”
 
 
또 한 번 진화한 이병헌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의 어떤 점에 마음이 동했을까. 그는 무엇보다 캐릭터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이 연기한 강재훈은 한순간에 직장도, 돈도, 가족도, 사랑도 잃는 벼랑 끝에 선 남자다. 모든 것이 망가졌지만 아내와 아들이 있는 호주로 무작정 도피하고, 그곳에서 또 한 번 지옥 같은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강재훈은 벼랑 끝에 섰을 때 누구와 맞서 싸우거나 이겨내 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잖아요. 굉장히 무기력한 인물이라고요. 호주로 무작정 도피하듯 가서 아내가 외국 남자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도 가서 멱살 한번 잡지 않잖아요. 아내에게 추궁할 수도 있는데. 그 문제에 조금 더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해결할 수 있는데 무기력하게 포기한단 말이죠. 저는 재훈의 그러한 마음이 이해됐어요. 성격이 바뀌더라고요. 10년 전의 나라면 모든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내려놓고, 초월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쉽게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운이 빠지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내가 과연 여기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수동적이고 기운 빠진 캐릭터의 모습에 마음이 갔죠.”
 
영화는 엄청난 비밀과 반전을 품은 채 극적인 드라마 없이, 긴 대사 없이 이병헌의 내면 연기를 중심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모르긴 몰라도, 이병헌 한국영화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대사 양이 적은 작품일 터. 이병헌은 한 남자의 심리와 감정을 아주 미세한 표정의 변화, 대사의 뉘앙스, 눈빛의 농도로 조절해냈다. 이병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병헌의 연기는 매순간이 명장면이다. 또 한 번 진화한 이병헌이다. 심지어 연기견과의 호흡은 의외의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마스터>와 같은 장르 영화는 디테일한 그림을 놓치더라도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까지 망가지진 않거든요. 디테일 말고도 영화를 채우는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싱글라이더> 같은 감성 드라마는 디테일을 놓치는 순간 큰 그림이 흔들려버려요. 미세한 감정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는 거죠. 그렇다 보니 조금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현장 상황이 쉽지 않았거든요.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싱글라이더> 앞뒤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스케줄을 해오고 있었어요. <매그니피센트 7>을 엄청나게 더운 미국 사막에서 찍자마자 바로 <마스터> 촬영에 들어가야 했거든요. 그사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싱글라이더>를 호주에서 찍어야 했어요. 호주는 날씨도 좋고, 저야 뭐 걷는 연기 정도밖에 없으니까 (좌중 웃음) 쉰다는 느낌으로 하려 했는데 웬걸. 영화에서 비중이 90%나 되기 때문에 쉬는 날이 없었어요. 열흘에 한 번 쉬었나. 그럼에도 현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어가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웃음) 안소희 씨가 저의 아재개그 때문에 힘들어하긴 했지만.”
 
 
공효진, 안소희와 연기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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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싱글라이더>로 공효진, 안소희와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극 중에서 이병헌의 아내 역을 맡은 공효진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특유의 평범하지 않은 연기로 완성시켰다. 전형적인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복합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이병헌이 중반부까지 관객들을 끌어당긴다면 공효진은 영화 후반부 절절한 연기로 객석을 뜨겁게 적신다. <부산행>으로 흥행 배우 반열에 오른 안소희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나를 연기했다. 이병헌에게 도움을 청하는, 비밀을 가진 인물이다. 안소희는 어깨에서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로 <부산행>에서 불거진 연기력 논란을 말끔히 씻었다. 이병헌은 인터뷰 내내 두 사람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효진 씨는 늘 함께 연기해보고 싶던 배우예요. (공)효진 씨의 연기를 평소부터 좋아했죠. <싱글라이더>에서는 다른 영화에 비해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공효진이더라고요. 본 촬영에서도 마치 리허설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요. 마치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하더라니까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효진 씨의 힘은 전화를 받는 장면이나 오열하는 장면에서 격렬하게 퍼지죠. 생활 연기를 할 때는 연습하듯이 힘을 주고 빼는 것을 기가 막히게 잘해요. 안소희 양은 예전에 잠깐 저희 소속사(BH엔터테인먼트)에 있으면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지만 친해질 시간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연기 열정이 충분하더라고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오로지 역할, 연기에 대한 것만 생각해요. 심지어는 밥을 먹을 때도 영화 얘기만 하니까요. 선배 배우들과 함께 있어 부담감이 컸을 텐데도 여러 가지 의견을 내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죠.”
 
언제부터인가 이병헌과 애드리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평소 애드리브를 즐겨 하는 배우는 아니었던 그이지만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에서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하자”라는 대사가 영화의 흥행 신드롬과 함께 유행어가 되면서 대중에게 ‘이병헌은 애드리브 잘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각인됐다. 그의 애드리브 감각은 <마스터>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극 중 김우빈, 진경과 나란히 손을 잡고 팀워크를 다지는 장면이나 필리핀 영어 등이 그의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명장면이다. 이는 그의 장난스럽고 유쾌한 성격을 증명하는 대목. 이번 <싱글라이더>는 어땠을까.
 
“애드리브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일수록 애드리브는 상상도 못 해요. 이런 감성 드라마라면 더더욱 애드리브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사실적이고 정확한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현장에서 개그 욕심은 있었죠. 웃음은 어떤 장르에서건 꼭 필요하다고 봐요. 있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이렇게 감성적이고 잔잔하고 쓸쓸한 영화에서도 웃음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인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애드리브로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진 않았죠.”
 
 
하정우와 함께 <싱글라이더> 제작에 참여
 
<싱글라이더>는 이병헌과 하정우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이병헌은 주연과 공동제작으로, 하정우는 제작으로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은 시나리오만 읽고 제작 참여를 확정했다. 최근 브래드 피트, 콜린 파렐,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의 제작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상기해보면, 역시 좋은 배우가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행에서는 35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천편일률적인 충무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하정우 씨가 ‘형, 출연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영화 선택해주셔서’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 좋은 영화에 자기가 출연 안 하고 나한테 할 수 있게 해줬으니. 아, 하정우라는 배우가 마음이 참 큰 친구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우 씨 입장이라면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을 것 같았는데 고마웠죠. 몇 번 이야기했지만 이런 감성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하는 관객도 분명 있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다 재미있진 않을 테죠.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떤 이에게는 인생영화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싱글라이더>는 반전이 큰 영화다. 오죽했으면 개봉 전부터 ‘싱글라이더 반전’이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에 올랐을까. 이병헌은 반전이 큰 영화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반전을 아예 발견하지 못했어요. 결말에 가서야 알았죠. 반전이 큰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반전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에요. 영화가 끝난 뒤 세상 쓸쓸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허무함이 몰려오는 영화죠. 그 감정이 상당히 오래가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죠.”
 
 
결혼, 당연히 연기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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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배우 이민정과 결혼한 이병헌은 2015년 3월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는 평소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에게 아들 사진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아들바보’다. 아내 이민정과는 시나리오를 함께 읽으며 작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그는 결혼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연기라는 게 감성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당연히 결혼 역시 연기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죠. 결혼이 연기의 결을 몇 개는 만들어줬을 거예요. 물론 결혼보다도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연기에 도움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짙어지는 게 연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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