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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은 내 이상형, 먼저 만나자 하고 먼저 안아줬다"

'해피투게더3' 출연 야노시호의 반전 매력

2015-11-13 10:58

글 :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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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모델이자 아내고, 엄마다. 모델인 건 그렇다 치고 아내, 엄마인 건 그저 흘러가다 보니 된 것 아닌가.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모두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거란다. 한국 예능프로그램(KBS <해피투게더>) 첫 출연으로 인기와 주가가 한층 높아진 톱모델 야노시호의 아직 숨은 매력과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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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건 꼭 손에 넣고 만다. 스스로를 욕심쟁이라고 하는 이유다. 훌륭한 모델이고, 예쁜 아내고, 사랑스러운 딸의 엄마. 그 외에도 호칭은 많다. 의류사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NPO(Non-Profit Organization·비영리 민간단체) 활동가이기도 하다. 야노 시호는 “욕심쟁이로 사는 건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이 모든 게 다 ‘시호’다”라며 웃었다.
그중에 우연히 얻어진 건 없다. 좋은 모델이 되고 싶어 20년을 갈고닦았다. 일 때문에 결혼도 늦었다. 엄마가 되기 위해선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생활에 누군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됐느냐고 물으면, 그는 “진정으로 그걸 원했으니까”라고 답한다고 했다.

# 모델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한 번도 그만두겠단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도쿄에 머물며 단칸방 생활을 한 적이 있다. 3평짜리 작은 방에서 숨죽여 운 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그를 다잡아준 건 할아버지의 말버릇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까짓 것, 근성으로 몰아붙이면 되지!’라고 늘 말씀하시던 분이었어요. 그 말이 어느새 제 안에서도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한 후에도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죠. 이까짓 일, 근성으로 몰아붙이면 되지!”
그녀는 엄마의 아주 우연한 제안으로 모델이 되었다.
고등학교 예비 소집일.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첫마디가 ‘여러분이 대학에 가기 위해선 말입니다’였어요. 아니, 애써 고등학교에 왔는데 왜 대학 얘길 하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녀에게 엄마는 “너 대학에 갈 생각 없지 않아? 모델이 되는 건 어떠니?”라고 했단다.
“엄마는 늘 생각하셨대요. 저는 공부로 승부를 볼 아이가 아니라고.(웃음)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는 딸에게 그렇게 제안하신 거죠.”
어릴 때부터 키가 컸다. 부모님의 체형을 물려받은 덕이다. 팔다리가 길었고, 쉽게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그렇다고 딱히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멋도 몰랐다. 그 흔한 패션잡지를 사본 적도 없다. 모델을 생각하기 전엔 꿈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문집엔 장래희망으로 ‘백화점 점원’을 적었다. 계산대에서 포장하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다. 패션과 모델에 관해선 무지에 가까웠다.
‘그래, 모델이 되자.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모델이 되는 것. 당연히 모델이 되는 게 훨씬 재밌잖아’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 대해 백지 상태였던 거예요. 그래서 모델이라는 세계에 뛰어들 수 있었겠죠. 아는 게 많았더라면 덜컥 겁을 먹었을 거예요.”
오디션에는 생각보다 순탄하게 합격했다. 탄탄대로인가 싶었는데, 곧장 벽에 부딪쳤다. 본격적으로 모델을 하면서 막연히 꿈꾸던 일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차이를 느낀 것. 다른 모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당하며 자신감을 잃은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 힘든 시기에 항상 원인을 외부로 돌렸던 것 같아요. 일이 문제인가, 매니저가 문제인가, 소속사가 문제인가, 하면서요. 그때 소속사 대표가 가만히 한마디 건넸어요. ‘일이 언제나 거기서 거기인 건, 시호가 원인이잖아’라고요.”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잡지를 보라, 모델의 몸짓과 시선을 연구하라,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움직임을 의식하라, 그동안 찍은 사진을 재촬영하라, 자신의 감정을 갈고닦아라는 조언을 깊이 새기고 곱씹기 시작했다.
현재의 애칭인 ‘카리스마 시호’를 얻기까지 부단히도 노력했다.

# 추성훈 아내

그러느라 결혼은 좀 늦었다. 연애하던 시절 남편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밀당’이 없었어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으면 그저 즐겁고 편한, 그런 사람이었죠.”
친구들은 처음에 반대했단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 사람이냐고 했어요. 자상하고 착실한 사람인데. 모두가 그를 이해할 날이 올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됐어요.”
지금도 남편은 든든한 파트너다.
“언젠가 오후 스케줄이 있던 날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딸을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장 보러 갔다가 저녁 찬거리를 집에 둔 후 촬영장소로 향했습니다. 일이 끝난 뒤 다음 촬영을 위한 회의를 하고 집에 돌아왔어요. 막 씻고 나온 남편이 묻더라고요. 오늘 뭐 했느냐고.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고 하니까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는 거예요. “말을 했으면 좋았잖아! 우리는 부부니까 서로 일을 분담해야 하는 거야”라면서요.”
연애 시절 크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단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갈등이랄까, 위기가 생기는 시점이 찾아오기 마련이잖아요. 어쩌면 그 시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때 결혼을 한 것 같아요.”
딸을 낳고 나서 갈등이 생겼다. 크게 싸운 어느 날. 남편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딸이 막 태어나서 수유를 하던 시기였다. 그땐 아이에게로만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모성 스위치가 최대로 켜졌던 시기. 지금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여유를 조금 찾았다. 그래, 나도 여자였지.
“엄마 역할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여자인 나를 완전히 잊고 사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 거예요. 남편은 굉장히 낭만적이고 섬세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던졌던 거겠죠. 다시 연애하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여성으로서의 나를 의식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 사랑이 엄마

내 눈엔 사랑스럽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사랑해줄 줄은 몰랐단다.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죠. 남편과 두 사람의 애정은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것. 그 소망이 굉장히 빨리 이뤄진 것 같아요.”
인기를 끈 한 육아 프로그램. 처음부터 오래 출연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빠와의 추억이 차곡차곡 기록에 남는 게 좋았단다. 딸의 한국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도 보였다. 야노 시호는 “아무래도 방송의 힘이 컸다”면서 “덕분에 나도 조금씩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예쁜 딸이었다. 입덧 한 번 시킨 적 없고, 아픈 구석도 없었다. 임신 8개월까지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강도를 줄여 쉬엄쉬엄하긴 했지만, 임신 중이란 사실을 딱히 의식하지 못했을 정도로 편했어요. 기특하게 배 속에서도 엄마 생각을 했나 봐요.”(웃음)
출산과정도 순조로웠다.
“옆에서 남편이 계속 말을 걸며 안심을 시켜줬어요. 의사 선생님은 여태 본 남편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칭찬해줬고요.”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육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야노 시호는 “아이가 몇 살이 되더라도 육아의 무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육아를 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바로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것.
“때때로 엄마들은 아이를 어른의 속도에 맞추려고 해요.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에 ‘어서 양치질해’라고 말한다거나, 빨리 밥을 먹여야 해서 식탁에 앉으라고 하죠. 사실 아이에게도 양치질하고 싶을 때와 배고플 때가 있을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아이와 마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자연히 애착 형성이 잘 이뤄졌다.
“시간이 좀 걸리는 건 맞아요. 여유가 필요한 작업이죠. 그래도 속도를 맞춰가다 보면 아이와 마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답니다.”
물론 감정이 앞설 때도 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는 금세 목소리를 높이고 말아요. 그럼 아이는 엄청 슬픈 얼굴이 돼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저를 바라봅니다. 그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바로 후회해요.”
아이에게는 웬만하면 타일러서 말하는 편이다. 이제 곧 밥을 먹어야 할 텐데 아이가 과자를 먹고 싶다고 보채면, “곧 밥을 먹어야 하는데, 지금 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 밥 먹은 후에 과자를 먹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식이다.
“아이에게도 멈출 수 있는 힘이 충분이 있더라고요. 엄마가 조금 기다려줄 줄만 안다면요.”
어떤 딸이 되길 바랄까. 그는 “엄마가 내 개성을 찾아내 모델의 길로 인도해준 것처럼 나 역시 딸아이의 좋은 점을 찾아 아이가 반짝이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끌어주고 싶다”고 했다.
“딸아이는 흥미가 있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하거든요. 승부욕도 있는 편이에요.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집 앞까지 달려가기 시합을 하는데 딸아이는 자기가 가장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려요. 그래서 져줘야 하는데, 일부러 져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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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엄마 딸

좋은 게 좋은 거. 야노 시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몸에 밴 사람이다. 논리는 단순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둘 중에 좋은 게 이득 아니냐. 좋게 생각하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나쁜 생각은 안 한단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랑이 가득한 집안 환경이 작용한 것 같다.
그는 시가 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8명이나 되는 대식구 틈에서 자랐다.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함께 웃고 울고, 늘 서로 보듬어주던 나날들 속에서 ‘가족의 힘’을 알게 됐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늘 말했어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참 많은 게 자신의 보물이라고요.”
야노 시호의 엄마는 스물세 살에 결혼했다. 시할머니까지 계시는 대가족의 며느리였다. 집안일을 도맡으면서도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늘 웃는 얼굴로 일을 척척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결혼 전까진 엄마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했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다 보니 엄마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히는 듯했다. 평범한 생활 가운데도 엄마를 떠올리는 시간이 늘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식으로 엄마도 나를 지켜보셨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야노 시호는 곧 서른아홉을 맞이한다. 그는 나이를 먹는 게 슬프지 않다고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수한 시간과 마주하는 거잖아요. 그 시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랑과 환희가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20대 때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어요. 30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40대 때는요? 글쎄요. 20·30대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 훗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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