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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ST] Shall We Talk 김정민

Brunch Talk Concert

2014-03-14 11:35

20년 전, 김정민은 순정 100%의 가슴으로 노래하는 로커였고 마주앉은 이들은 그 목소리에 가슴 떨려하던 여학생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둘러앉아 옛날을 이야기할 시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여성조선> 네 번째 브런치 토크 콘서트, ‘내 사랑 내 곁에’다.


“뭐든 궁금한 걸 말씀해주시면 제가 시원하게 대답해드릴게요.”

20년 전,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를 부를 때만 해도 김정민은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김정민입니다.”라는 말조차 떨려서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숫기 없는 연예인이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터프가이’의 대명사가 되면서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외로운 로커. 오직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때만 자기 본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도 세월이 흐르자 달라졌다. ‘슬픈 언약식’, ‘무한지애’ 때부터 그의 노래를 좋아하던 독자들이 브런치 토크 콘서트에 초대됐다. 이제는 김정민도 독자들도 모두 학부형 혹은 아저씨, 아줌마가 됐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그때 그 시절, 그때 그 마음이다. 



12월에 뮤지컬을 한다고 들었어요. <내 사랑 내 곁에>. 고 김현식 씨 노래 제목이죠?
김현식 선배님은 제가 가수를 준비할 때부터 롤모델로 삼았던 분이에요. 이 작품을 하겠다고 결정하한 데는 아마 그 영향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작품은 김현식 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내 사랑 내 곁에’를 비롯해 90년대에 많은 명곡들을 작곡하신 작곡가 오태호 씨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90년대에 히트한 감성적인 발라드를 모티프로 만든 극이죠. 저는 그중 세 번째 사랑 이야기를 맡았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는 건 제가 아니라는 거.(웃음) 

살이 좀 빠진 거 같아요.
초연에다 창작극이라 아직 세팅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요즘 살도 빠지고 있고요. 새로운 작품이니까 배우들이랑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수정하는 과정을 이번 주까지 끝내야 해요. 뮤지컬은 창법이 달라요. 제가 원래 부르던 방식을 바꿔줘야 돼요. 너무 튀면 단원들이랑 조화가 안 되거든요. 제 색깔은 한 부분 정도에서만 보여주죠. 이번 <내 사랑 내 곁에>는 세 번째 뮤지컬이에요. <더 팬츠>하고 <원효> 다음 작품인데요. 세 작품이 다 초연작이었다는 거. 이게 잘되면 엄청 보람 있는데, 안 되면 큰일인 거죠. 

근데 김정민 씨는 15년 전 영상이나 지금이나 정말 비슷해요. 헤어도 스타일도요.
체중 조절을 해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원치 않게 쉬었던, 일을 못했던 경우가 있어요. 그때 방심해서 몸무게가 불었었어요. 가끔 쉬었다가 나오면 몸이 아저씨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럼 느낌이 안 나니까, 그럼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운동 계속하고 있어요. 제가 실제로 보면 얇은데 화면에는 크게 나오죠? 강호동 씨나 이영자 씨도 별로 안 커요.
 
근데 성격은 생각했던 거랑 안 비슷해요.(웃음) 생각보다 안 터프한데요?
제가 원래 부드럽습니다. 터프가이 아니고요. 지난 20년간 원치 않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신인으로 데뷔할 때 이경규 씨가 “아, 터프한 가수가 한 명 나왔어요.” 그러신 거죠. 그 뒤로는 쭉 그렇게 왔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터프한 모습이 좋았는데.
지금 앨범을 내면 그만큼 팔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터프가이 이미지로 굳어지다 보니 원래 제 성격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결혼하고 나니까 원래 모습이 나오는 거 같아요. 스스로도 좀 편해졌고요.

내성적인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첫 작품이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시트콤이었어요. 그때도 제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에요. “김 변호사 역할은 너밖에 없다”고 피디 형이 하도 그래서 세 번 거절하고 했어요. 막상 한다고 하고는 걱정이 돼서 한 달 동안 연기 지도를 받았어요. 맹연습을 하고 갔더니 형이 대본을 탁 덮으시면서 “야, 이건 <이수일과 심순애>잖아.”(일동 웃음) 힘이 너무 들어갔으니까 편안하게 하라고 하셔서 그 1년 동안 많이 배웠죠. 그 후론 웬만한 톱 여배우들은 다 만나본 거 같아요. <히트>의 고현정 씨, <민들레 가족>의 송선미 씨, <커피프린스 1호점>의 채정안 씨…. 근데 해보니까 가수도, 연기도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남자의 자격 합창단’도 하고 계시잖아요. 
합창도 어려워요.(웃음) 제가 가진 음역은 테너에 가까운데, 선생님이 저를 베이스로 보내신 거예요. 프로든 아마추어든 다 같이 도전을 해야 의미가 있다면서. 처음엔 아무리 노력해도 낮은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근데 지금은 많이 늘었어요.

부인인 루미코 씨랑 같이해서 더 특별할 거 같아요.
뜻깊은 시간이죠. 저희가 결혼한 지 7년인데 둘이 뭘 같이 이루고 성취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함께해서 특별한 시간이 됐어요. 거기 오는 패밀리분들이 저희가 손잡고 다니는 걸 보시고 “아직은 좋구나.” 그러세요. 앞으로도 그래야 할 텐데, 잘 모르겠어요. (같이 합창단해서) 대부분은 좋은데 나쁜 점도 있죠. 둘이 같이 나가니까 애들을 누군가한테 맡겨야 해요. 방송은 50분 나오지만 녹화는 10시간 하거든요. 그럼 어머니가 아이들을 보시는데 다섯 살, 여섯 살 남자아이들이라 난리예요. 어머니가 힘드시죠.

그때가 제일 이쁠 때예요.
그래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지금이 제일 이쁠 때구나.(일동 웃음)   



운명의 여인 루미코, 미자와의 만남

김정민은 2006년 10월 재일교포 3세인 타니 루미코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넉 달 만에 식을 올렸다. 한국어를 배우러 여행 겸 한국에 온 루미코 씨는, 한 번도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서 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나는 동안 ‘결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도, 프러포즈를 한 적도 없는데 신랑 신부 입장을 하고 있더라고, 이런 게 운명인가 보다고 김정민은 웃었다. 딸이 열한 살이나 많은 한국인, 그것도 연예인과 결혼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걱정하던 루미코 씨의 부모님은 (일본어는 한마디도 못하지만) 연신 미소를 잃지 않던 김정민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특히 첫 만남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장인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자 당장 약방에 달려가 약을 사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결과는 만난 지 하루 만에 승낙. ‘속전속결’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김정민과 루미코의 결혼 이야기.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요?
2006년 6월 1일이 차태현 씨 결혼식이었요. 제가 왜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느냐면, 그날 제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에요. 태현이 결혼식에 갔는데 ‘와, 이제 동생들도 다 가는구나.’ 싶어서 심난하더라고요. 그때 연예인 골프단을 같이하고 있었거든요. ‘이글이글’이라고.(웃음) 멤버 중에 이순재 선생님도 계시고, 태현이는 거의 막내였죠. 막내까지 (장가) 가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무거운 거예요. 그때 제가 라디오를 하고 있었어요. 매주 게스트로 박혜경 씨가 나오셨는데, 제가 커플들 사연 나오면 노래 틀어놓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모습을 보셨죠. 자기 후배 중에 일본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날 그 말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어요. 일본 사람들은 원래 미리 약속을 해야 하는데 다짜고짜 약속을 잡은 거죠. 음식점에서 제가 한 세 시간 기다렸나. 그때 마침 이승엽 씨 야구 경기가 중계 중이라 보고 있었죠. 그걸 보고 있는데 나타났어요. 그날 태현이가 결혼을 안 하고 이승엽 씨가 야구를 안 했다면 저는 결혼을 못 했을 수도 있어요. 

만나고 나니 ‘이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이 오던가요?
처음 만난 날은 몰랐죠. 서로 이상형도 아니었고요. 저는 워낙 말이 없고, 아내는 한국말을 못하니까 정적만 흘렀어요. 그런데 만난 다음 날, ‘루미코’라는 이름이 한국어로 ‘미자’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올드미스 다이어리>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땐데, 주인공 이름이 미자(예지원 분)였거든요. 그런 게 있었어요. 연기자는 드라마에 빠지면 성향도 바뀌고 벗어나는 데도 시간이 걸려요. 근데 루미코가 ‘미자’라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지금도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 결혼을 했지. 결혼하자는 이야기도 안 했는데, 그게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요. 

연년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요.
태영이랑 도윤이에요. 다섯 살, 여섯 살인데 난리도 아니에요. 미치겠어요. 애들이 말을 안 듣고 과격해서. (막대과자를 들며) 이런 걸로 막 찍고 그래요. 스케줄 없는 날은 애들이랑 노는데요. 정말 애들이 안 뛰어다니고 누워있을 때가 이뻤던 거 같아요.(웃음) 아내는 저랑은 한국어로 대화하고 아이들이랑은 일본어로 얘기해요. 일본 친척들도 많으니까 아이들은 저절로 2개국어를 하게 되죠. 한국 사람 만나면 한국어로, 일본 사람 만나면 일본어로요. 

<우리 결혼했어요> MC를 3년째 하고 있잖아요. 결혼생활에도 영향이 있나요?
글쎄요. 저도 시청자의 마음으로 보게 돼서.(웃음) 아무래도 ‘아내의 소중함’은 알게 되는 거 같아요.(일동, “우리 남편 보여줘야겠다.”) 아내는 친정이 일본에 있다 보니까 여기 아무도 없잖아요. 또 가사도우미가 집에 있는 건 둘 다 불편해해서 일 없는 날은 제가 집에서 설거지 빼고 모든 걸 해요. 아내한테 주부습진이 왔어요. 악어 등가죽이에요.

설거지는 왜 안 하나요?(웃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 같기도 해요. 제가 하겠다고 했는데 두세 번 정도 밀린 적이 있어요. 아니, 됐다고. 그래서 청소, 빨래 개기, 빨래 널기, 애들 목욕시키기, 이런 건 제가 해요.(일동 환호, “다 해주네!”) 에이, 누나, 다는 아니에요. 친정 식구가 없으니까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해보니까 집안일이 힘들더라고요. 아마 제가 샐러리맨이었으면 몰랐을 거예요. 그 집안일이 육체노동이라는 것과 육아 스트레스를. 이런 이야기하면 남자들은 저한테 돌을 던질까요. 

저희가 막아드릴게요.(웃음) 루미코 씨도 아이돌이었잖아요. 가수를 다시 하고 싶어 하진 않아요?
아내는 집에서 돈을 벌고 있어요. 사도우미가 해줄 법한 일을 그냥 혼자 해요.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오후 5시까지 하는데, 아내는 그 안에서 움직여요. 알차게. 제가 “방송 안 할 거야?” 물어봤더니, 안 한대요. 연예인은 자기 적성이 아니었다며. 저는 속으로 ‘나이스!’ 그랬죠. 그러다 우연히 <자기야>에 나가게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는데, 꾸미고 메이크업하고 옷 입고 나가니까 아내는 그게 자기가 여자가 되는 거 같다고, 그 한 번 바람 쐬는 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까지는 시간될 때 타이밍 맞으면 하고 있어요. 와이프는 혼자는 안 한대요. “오빠랑 같이하는 시간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루미코 씨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책(《루미코의 오이시이 키친》)도 낼 정도로.
맞아요. 요리를 잘해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주는 것도 고마운데 반찬에도 늘 신경을 써요. 책에는 일본 사람이 만드는 일본 가정식이 담겨있어요. 저도 쉽게 만들겠더라고요. 이야기가 있는 요리책이라고 해서 기념으로 집에 두 권 남겨뒀어요.  



세상의 끝에서, 음악을 만나다 

김정민의 성장기는 풍요롭지 않았다. 어머니는 건물 청소를 17년 하셨고, 아버지는 편찮으시다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줄곧 보며 자랐다. 아홉 평짜리 집에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그 와중에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 공간마저 반으로 줄어들었다. 음악밖에는 도피할 곳이 없었다. 공부에도, 노는 데도 크게 흥미가 없었던 김정민이 욕심을 부린 건 하나, 기타다. ‘기타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치는 사람이 되리라.’ 음악이 유일한 구원이던 시절이었다.

원래는 기타를 쳤다고요.
저는 연예인을 꿈꿔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음악을 하고 싶긴 했죠. 그래서 악기를 열심히 했어요. 김민우가 제 대학 후배예요. 제 꿈은 한국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거였어요. 군에 간 사이 김민우 씨는 대스타가 돼있었어요. 제대하고 나니 그 친구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되더라고요. 맥주 한잔하려고 한 카페에 갔어요. ‘연예인 카페’라고, 연예인이 여럿 나왔어요. 김민우, 조정현 씨 이런 분들이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캐스팅됐죠. 저도 거기서 1집 제작하신 분한테 발탁됐어요. 왜 저를 캐스팅하셨느냐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그냥, 잘생겨서.”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가수가 된 거군요.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89년도에 밴드로 강변가요제에 나간 적이 있는데 코러스를 하다 잘렸을 정도예요. “너 때문에 정신이 사나우니까 안 되겠다”며.(일동 웃음) 그래서 저는 베이스만 쳤어요. 수상은 못 하고 대회 끝나고는 바로 군에 갔죠. 1집 계약을 한 게 제대하고 한 달도 안 됐을 때예요. 저희 집이 정말 가난했거든요. 군을 제대했는데도 용돈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는 계약금이 컸죠. 그래서 친구들도 안 만나고, 눈썹을 싹 밀어요. 

눈썹을 다 밀었다고요?
밖에 안 나가려고요. 연습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로 밀었어요. 근데 딱 민 순간 바로 후회했죠. 눈썹이 머리와 얼굴의 경계인데 눈썹 없으니까 도저히 못 나가겠더라고요. ‘모린’이라고 발모제를 사서 매일 발랐죠.(웃음) 그때 저희 집이 아홉 평이었는데 다섯 식구가 살았어요.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고, 저희 집이랑 옆집 사이에 송판이 하나 있었어요. 그때 보증을 잘못 서서 옆방은 세를 줬어요. 식구들이 다 모여 자는 방에서 노래 연습을 했는데, 제가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그 옆방분들이 참아주셔서 제가 가수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집 살던 분들은 다 잘됐어요. 저희 집도 옆집도 다들 집 사서 나갔으니까.(일동 박수) 그때 그룹 너바나의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죠. ‘일단은 소리를 틔우자. 개성 있는 목소리를 만들자.’ 싶어서요. 

김정민의 창법이 그렇게 탄생했군요.
근데 막상 데뷔곡인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를 부를 때는 부드러웠죠. 더구나 1집은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고요. 얼굴 잘생겨서 캐스팅됐는데, 왜 얼굴 없는 가수가 됐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일동 웃음)

얼마 전 TV를 보는데 <응답하라 1997>의 서인국 씨가 <가요톱텐>에 나온 김정민 씨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말 들으면 진짜 고마워요. 더구나 서인국 씨는 지금 제일 핫한 스타인데, 제가 그런 후배들한테 영향을 주었다는 게요. 후배 가수 중에는 제 노래를 리메이크하려다가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FT아일랜드의 홍기 씨가 한번 부르고는 없어요. 제 노래가 부르기 힘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제 느낌이 너무 강하니까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야구 좋아하는 남자, 요리 좋아하는 여자

야구를 좋아해 투수를 하다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 골프를 좋아해 연예인 골프단을 했고, 자동차에 관심이 있을 때는 자동차 동호회에 들었다. 이 모든 게 총각 때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김정민은 지금 “식구들에게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 매끼 9첩 반상을 올려주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결혼한 게 제일 잘한 일”이라고 할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가 됐다. 아내와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 ‘남자의 자격 합창단’에 지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두 아이와 두 아이를 혼자 돌보시는 어머니가 마음에 쓰인다. 20년을 터프가이로 살았지만 내면은 섬세한 남자였는데, 이제는 삶도 다정하고 섬세해졌다. 김정민은 그걸 “아저씨 된 거죠.”라고 표현했지만.   

얼마 전 야구장에서 찍힌 사진을 봤어요.
야구는 창단 시기부터 좋아했어요. 1998년에 제가 야구하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모르시나? 연예 뉴스 1면에 크게 났는데.(웃음) 지금도 나사가 6~7개 박혀있어요. 자기 몸으로 자기 뼈를 부러뜨리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에요. 그때 제가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속사에서는 난리가 났죠. 그때 안 부러졌으면 한류 원조가 될 수도 있었는데.(웃음) 그만큼 야구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연고지랑 상관없이, 친한 동생이 있는 팀을 좋아해요. SK 조인성 투수를 응원하죠. 사진은 대구에서 삼성이랑 경기가 있어서 구경 갔을 때 우연히 찍힌 거예요.

대구(삼성 팀의 연고지)에서 SK 응원을요?
그래서 조용히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찍혔더라고요. 

운동선수를 했어도 잘했을 거 같아요.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선수를 할 몸은 아닌 거 같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연예인에 딱 맞는 성격도 아니긴 해요.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김정민입니다.”가 안 돼서 감독님들한테 혼났다니까요. 제 목소리가 노래할 때는 지르지만 평소에는 안으로 먹는 소리거든요. 노래 마치면 대기실에서도 거의 혼자였어요. 그 정도로 내성적이고 숙맥이었죠. 지금은 20년이 지났으니까 편해졌고요. 

한 분야에서 20년을 보낸 사람에게는 뭔가가 있다고 하던데요.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죠. 제 이름이 가요계에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20년이 지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많이 편안해졌다는 거예요. 지금은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 엄마들 사이에서 학부모 대화에도 참여하고, 대화도 이끌고 그런다니까요. 결혼하고 수다가 늘었어요. 장동건, 이병헌 씨도 애들 생겨봐요. 다 저처럼 아저씨 된다니까요.(웃음) 





  카페베네에서 따뜻한 겨울 브런치를   



카페베네가 겨울 신메뉴를 선보였다. 1990년대 먹거리를 재현한 ‘고백(Go Back)’ 메뉴다. ‘롤리코코’는 코코아와 초코퐁듀를 넣은 음료다. ‘헤이즐넛 롤리코코’와 ‘스트로베리 롤리코코’ 2종류. ‘베네페’는 90년대 커피숍에서 가장 인기 있던 파르페와 빙수를 응용한 메뉴다. 딸기 토핑을 넣은 ‘딸기 베네페’, 무알콜 와인 맛이 특징인 ‘프루트 와인 베네페’가 있다. 일명 ‘다방커피’를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는 ‘헤이즐넛 99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혼합되어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풍미가 특징. 이 복고 음료와 함께 간단한 식사로 안성맞춤인 ‘츄로비(Churro B)’도 개발됐다. 바삭한 겉과 부드럽고 촉촉한 속이 조화를 이루는 메뉴로 레몬치즈 또는 초코딥 중 한 가지가 제공된다. 



  뮤지컬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여성조선 독자를 초대합니다 (10쌍) 

작곡가 오태호의 발라드 명곡을 테마로 한 뮤지컬 <내 사랑 내 곁에>가 여성조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가수 김정민과 배우 홍지민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세 가지 색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기간 12월 11일~2013년 1월 20일까지
장소 한전아트센터
응모기한 12월 10일까지  
응모방법
이메일
pri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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