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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 장서희... 봄이 오는 길상사

혜민스님, 장서희... 봄이 오는 길상사

2012-04-27 19:06

젊은 스님과 여배우의 만남.
이 낯설고도 근사한 조합이 탄생한 것은 둘 사이에 불교학자와 수행자라는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일진대, 혜민 스님과 배우 장서희의 만남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셈. 봄이 오는 길상사에서 두 사람이 나눈 봄볕처럼 따뜻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트위터 팔로어만 12만 명에 이르는 소통하는 젊은 스님, 하버드 출신 엄친아 스님, 꽃미남 스님 등 많은 수식어로 영혼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혜민 스님이 봄방학을 맞아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 있는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데 대한 인사차 방문이다. 2주라는 짧은 시간에 전국 서점에서 진행되는 사인회와 강연회 등을 모두 소화하려니 일정이 빡빡하다.
배우 장서희. 드라마 <인어아가씨>, <아내의 유혹> 등이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현지에서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했고, 작년부터는 본격적인 중국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5백억 대작인 중국 드라마 <수당영웅>의 여주인공을 맡아 모든 촬영을 끝냈고,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중국 북경 BTV 드라마 <서울임사부(림사부재수이)>는 방송이 이미 시작됐다. 중국에서 광고 촬영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 화보 촬영차 이틀 전에 국내에 들어왔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미국과 중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두 사람이 성북동 길상사 앞마당에서 만났다. 이들의 공통분모인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억겁의 시간을 거치고서야 만들어지는 귀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만남.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기에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정성이 묻어난다. 따뜻한 합장과 함께, 둘만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1
서희, 저는 왜 절을 하면 눈물이 핑 돌죠?

“집안 자체가 불교예요. 엄마 아빠 두 분 다. 다섯 살 때부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어요. 향냄새 맡는 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리고 절밥도!(웃음) 기도 열심히 하면 스님들이 ‘꼬맹이 잘한다’며 칭찬해주시는 게 좋아서 더 신나게 열심히 다녔어요. 108배도 어릴 때부터 했고요. 그러다 무명시간이 길어질 때는 속이 상해서, 절에 가서 ‘왜 저는 노력을 하는데 기회가 없을까요?’ 하면서 울었죠. 그러다 <인어아가씨>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는데 서른한 살이라는, 여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드라마 주인공을 맡으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봉은사에 가서 스님께 너무 떨리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여쭸더니 3,000배를 권해주셨어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이 되고,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미륵전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어머니와 아홉 시간 동안 절을 했어요. 1,000배쯤 할 때는 속으로 ‘언제 끝나지?’ 하다가, 1,500배 지나고 나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제 자신을 차곡차곡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근데 저는 왜 절을 하면 눈물이 핑 돌죠?” 

혜민 원래 그래요. 우는 거 좋은 거예요. 울고 싶으면 우세요.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서 정화되는 과정이거든요. 눈물을 흘리는 건 무의식에 담아둔 것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하나씩 정화되는 과정인데, 그런 과정이 있을 때가 좋은 겁니다. 근데 밤 아홉 시부터 하셨다고요? 와하,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건데. 스님들이 계 받기 전에 아홉 시부터 세 시까지 여섯 시간에 걸쳐서 아주 빡세게 하는 거거든요. 3,000배라는 게 단순하게 절만 하는 거지만, 잠과의 싸움이기도 하잖아요. 그걸 어떻게 하셨네요?
장서희 그땐 저 자신한테 뭔가 해야 한다는, 그런 게 필요했나 봐요. 마음만 매달린 거예요. 그렇게 3,000배를 마쳤는데, 못 걷겠더라고요.(웃음) 후들후들 떨리고 걸음이 안 걸어지는데, 희한하게 저 자신한테 의지가 되는 거예요. 혼자 뿌듯한 마음 있잖아요. 다행히 드라마가 잘되어서 부처님께 다시 와서 약속을 드렸어요. “3,000배를 하면서 느낀 게 많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하겠습니다.” 하고요. 그때부터 매년 한 번씩 꼬박꼬박 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국에 있거나 몸이 안 좋을 때는 나눠서 해요. 한 5, 6년 전부터는 체력이 달려서.(웃음)
혜민 네, 그렇게 해도 돼요. 잘하고 계시네요. 절은 정성이 중요해요. 불교 신자이신 건 알았지만, 이렇게 독실하신 줄은 몰랐어요. 
장서희 그런데 저는 미련하고 무식하게 해요. 천수경도 다 못 외우는데요. “미련하게 믿음을 몸으로 때우겠습니다.” 하고 기도만 열심히 해요.(웃음) 그러면 왠지 제 잘못된 점 같은 게 용서될 것 같고, 그래서 절하면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시간이 저에게는 유일하게 절할 때인 것 같아요.
혜민 저도 사람들이 고민을 물어보면 몸을 쓰는 기도를 하라고 해요. 단순하게 ‘이거 해 주세요’ 식의 기도보다는 자기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되거든요. 누군가를 용서 못 하거나 화를 낼 때는 특히 더, 목소리를 내거나 몸을 쓰는 기도가 도움이 돼요. 그러면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알아서,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서희 절에 가면 그런 게 좋았어요. 편안함. 불교에서는 뭐든 자기 탓으로 돌리잖아요. 모든 것이 나로 비롯되고, 모든 잘못이 나로 비롯된다는 교리가 참 좋아요. 연예계 일을 하다 보면 남과 비교를 많이 당하고, 스스로 비교하기도 하면서 높은 곳만 보게 되는데, 그러면 욕심이 한도 끝도 없잖아요. ‘안 돼도 내 탓이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미운 사람도 적어지고, 저 자신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신비주의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불자인 게 감사해요. 그런데 저, 교회도 가봤어요.
혜민 저도 가봤어요.(웃음) 성직자들이 수행이 깊어지면 드러나는 모습 중 하나가 자기를 내려놓는 거거든요. 모든 것을 나 위주로 생각하다가 절이나 수행을 통해 보면, 에고 중심의 사고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아, 그런데 우리 시작부터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사적’인 이야기하기로 했는데.(웃음)
장서희 그러게요. 그런데 스님을 뵈면 본능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서요!(웃음)

#2
혜민, 얼굴을 붉히다

“가벼운 이야기 나눠요. 아까 장서희 씨께서 본인이 출연한 작품 봤는지 물어보셨죠? 저도 중국에 잠깐 머물렀어요. 2003년부터 2005년 정도까지? 박사논문 쓰려고 북경에서 유학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살던 집의 주인아주머니가 <인어아가씨>를 정~말 열심히 보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 드라마들이 중국에서 엄청나게 돌풍이었거든요. <인어아가씨>는 특히 인기였죠. 아주머니 덕분에 저도 덩달아 열심히 봤습니다.(웃음)”

장서희 어머, 정말 신기해요. 유명한 스님께서 제 작품을 봐주셨다니까 정말 감사하고 신기하고. 저는 오늘 오면서, ‘제 작품도 잘 모르시고 어색하면 어쩌지?’ 했거든요.
혜민 왜 몰라요? 저보다 훨씬 더 유명하신 분을 모를 리가요. 스님들도 드라마 보고 다 보죠.(웃음) 최근에 영화도 개봉했잖아요. 
장서희 <사물의 비밀>이요? 맞아요. 작년 11월에 개봉했어요. 근데 그것도 보셨어요? 근데 그게 수위가 굉장히 높은데? 부끄럽…. 스~님, 보셨습니까?(웃음)
혜민 네, 아, 그 뭐지, 사실 다 보진 못했는데, 이게, 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네요.(웃음)
장서희 아, 우리 스님, 스님! 하하. 스님 출가 전에 영화 공부하셨다고 들었어요. 영화 좋아하시죠?
혜민 네, 좋아합니다.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영화를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틀을 깨더라고요. 저는 그게 정말정말 신기했어요. 특히 우디 앨런 영화를 처음 봤을 때요. 보통 영화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의 영화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를 해요. 틀이 깨지는 순간들이 하나씩 나오는 게 아주 매력적이더라고요. 상상력이 동원되는 그런 것들이요.
장서희 말씀 나눌수록 스님께서는 ‘스님이니까 이래야지’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아까 사진 찍을 때 스님 팔짱 끼고 찍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얌전히 있었거든요. 더 친하게 찍을걸!(웃음) 보통 스님들은 존경하면서도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스님은 대중적으로 활동하고 소통하시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자유로우시고요.
혜민 소탈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계산된 말은 안 하려고 합니다. 연기할 때도 보면, 배역에 몰입해서 스스로를 잃어버릴 때 정말로 멋있게 보이잖아요. 극 중 상황에 완전히 녹아버려서 내가 사라지는 단계. 아! 망가지는 것도 그래요. 어떤 분들은 못 망가져요. 어떤 틀이 있고, 자신이 그 안에 있어야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우아해야 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가 있어서요. 내려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 제가 책에 뭐라고 썼는데 기억이 안 난다!(웃음)
장서희 그러니까 이런 모습이요!(웃음) 그래도 너무 망가지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혜민 망가지는 사람이 훨씬 좋죠. 정신건강에 좋아요. 이상하게 망가지면 이상하지만, 제가 말하는 망가짐이란 솔직해지는 거예요. 안팎이 솔직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함께 있는 사람이 불편해요. 사람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어떤 상황도 재미가 있어요.
장서희 스님, 리차드 기어도 만나셨잖아요. 그분은 어떻던가요?
혜민 아, 리차드 기어를 만나서 재밌었던 건 리차드 기어 스스로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스타로 대접해주면 도망가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할리우드 배우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스님은 스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불교 입장에서 그 말이 맞아요. 특별할 게 없어요. 모든 사람은 개개인이 특별하기 때문이죠. 승려로 살다 보면 유명하고 권력과 돈도 많고 대단할 것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 고민 들어보면 다 똑같아요. 뭐든지 별반 다른 게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어요.
장서희 연예인도 다 똑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고생하는 사람도 많아요. 고생해서 자리에 오른 사람도 많고. 

#3
서희, 스님도 미운 분이 있으세요?

“아역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어요. 아홉 살 때. 연기생활을 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많았고, 고생도 많이 해봐서인지 이 생활에 단련이 많이 되어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두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요즘 같으면 ‘한국에서 할 거 없으니까 중국 넘어갔다’는 말들이요. ‘한국 사람들끼리 감싸주지는 못하나?’ 이런 마음이 들고 서운한 마음도 많이 생겨요. 그게 쌓이면 미운 마음이 들고, 이럴 때마다 마음에 죄를 짓는 것 같아 갈등을 하고요. 그런데 스님도 미운 분이 있으세요?”

혜민 중국에서 유학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아파트를 빼야 했어요. 일주일 남겨두고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죠. 그런데 이분이 그때 이후로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거예요. 이상했어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걸었는데 또 안 받아요. 예전 열쇠로 문을 열어보니, 안 열려요. 보증금을 떼먹으려고 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전 주인이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돌아갈 시간은 다 되었고. 친구들과 화기애애하게 송별회를 하는데, 잘 놀다가도 갑자기 집주인 생각이 팍! 나는 거예요. 새벽 세 시에 벌떡 일어나서 또 집주인 생각을 하며 부글부글.(웃음) 그런데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었느냐면, 첫 번째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피해자가 결국 저더라고요. 평화롭고 즐겁고 화기애애한 모임에서 미워하는 마음을 내니 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실제로 보면 집주인은 잘 먹고 잘살거든요. 그 사람은 잘먹고 잘사는데, 나 혼자 열 받고 힘들어하면 그거 자체가 피해를 입는 거잖아요. ‘미움의 피해자는 미움을 일으킨 사람이다’라는 것을 실감했어요. 두 번째로는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이 몸에 힘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마음이 꽁하다’라는 표현 있잖아요. 꽁하면 실제로 몸이 힘들어요. 온몸이 ‘꽁~’해지니 몸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세 번째로 불교적 입장에서 ‘내가 전생에 진 빚을 설거지했다.’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내려놓았어요. ‘내가 전생에 저 사람 돈을 꿨는데 안 갚았나 보다.’ 이렇게요. 그리고 또 하나, 이게 가장 중요해요.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워하는 순간에 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좋든 싫든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거예요. 무의식이 바뀌는 거죠. 얼마나 불행해요.
장서희  어머,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혜민 빨리 털어버려야죠!
장서희 연예인이다 보니까 모르는 사람이 태클을 걸 때도 많아요. 그럴 땐 ‘내가 전생에 빚졌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네요.
혜민 그런 식으로 접근하셔도 되고요. 이런 방법도 있어요.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태클을 건다면, 그 사람은 나의 어떤 단편만 가지고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다음에 태클을 걸어요. 그런데 그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 문제예요. 미워하는 사람 문제. 내 문제가 되는 순간은 그걸 내 마음에 담고 내 속에서 난리가 났을 때예요. 그럴 때 문제가 되는 거지, 저쪽에서 싫어하는 걸 내가 어떡하라고? 내가 그거까지 컨트롤해야 합니까?
장서희 그래도 되게 신경 쓰이잖아요.
혜민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그 사람에게 성의를 보이는 거예요. 저도 트위터 하면서 이런 말까지 들어봤어요. “땡중아, 산으로 들어가서 수행이나 해라.” ‘땡중아’까지만 해도 양반이에요. ‘중××야’도 있어요. 팔로어가 12만 명 가까이 되니 별의별 사람이 다 있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힌 글을 제가 빨리 동감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해주면 “왜 안 해주느냐. 스님이 한 목소리를 내라” 그러다가 결국 격앙된 말이 나와요. 그것도 반말로 “이럴 줄 알았다, 중아!” 하시죠. 전 그분들께 쪽지를 보내요. “잘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요. 그럼 십중팔구 답이 “스님, 사실은 제가 스님 글 잘 보고 있는데, 사건이 가슴 아파서 기분에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와요. 아! 그 이야기도 해줘야겠다. 남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기가 불행해서 그래요. 자기가 뭔가 지금 안 좋아. 제가 말한 집주인도, 돈에 한이 맺혔거나 뭔가가 걸려 있어서 돈에 집착하는 거예요. 사람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는 지나가는 거지도 도와주고 싶잖아요. 해코지하고 가시 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가시가 많은 거예요. 얼마나 불쌍해요. ‘참, 니 불쌍타.’ 생각하시면 돼요.  
장서희 저를 극에서 맡은 역할 그대로 바라보시는 시선도 속상해요. 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서 바라보세요. 저는 아주 못된 악역을 한 적은 없거든요. 선했다가 이유가 있는 복수를 했죠.(웃음) 그런데 비판을 많이 하세요.
혜민 그래요? 드라마 역할로요? 에이, 그건 아니지. 근데 그거 왜 그런 줄 알아요? 자기가 그러니까! 왜 친구가 누군가의 흉을 보면 속으로 ‘너도 해당되는 부분이야.’ 싶을 때 있죠? 자세히 보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안 해줬기 때문에 기분 나빠서 욕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죠.
장서희 사람 관계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사람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혜민 미국 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데, 놀라운 것은 돈이나 명예, 성공했다, 좋은 대학 나왔다는 것보다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내가 잘못해도 ‘아유,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느냐는 거래요. 누군가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한 달에 한 번씩 그러니까 친구들과 만나는 모임을 가질 수 있잖아요. 마음껏 수다를 떨면서요. 그게 월급을 한 번 더 받았을 때의 마음과 같대요. 그러니까 친구들과의 만남이 한 달에 두세 번씩 있는 사람은 보너스 300%예요.
장서희 저는 연예인이라 사람들 앞에 보이는 게 많아요. 스님도 많은 분들의 시선을 받고 계시잖아요. 인간인지라 스트레스도 쌓이실 텐데, 그럴 땐 누구에게 조언을 받으세요?
혜민 은사 스님과 멘토 스님이 계세요. 안국선원 수불 스님, 불광선원 휘광 스님, 상도선원 미산 스님. 미국 교수 친구들이 또 탄탄하고요.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하고, 속 이야기도 다 나눕니다. 다들 잘 들어주시는데, 저의 친한 친구는 다 50대예요.(웃음) 나이 많은 친구들이 상당히 편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잘 포진시켜놓는 게 삶의 행복을 느끼는 데 상당히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참 행운아죠. 



#4
혜민, 인생을 너무 어렵게 살지 말아요

“작년에 1년간을 서울대 규장각에 있으면서 느낀 게 있어요. 미국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그게 항상, 상당히 궁금했어요. 왜 그럴까. 왜 끝없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할까. 우리는 늘 남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상관도 많이 해요, 남의 일에. 조정하려고 그래요.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려고 해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은 상관을 안 해요. 개인주의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잘살죠. 그런데 ‘니가 왜 잘사는데? 나도 잘살 수 있어.’ ‘너 때문에 못살아.’ 이런 피해의식이 얽혀 있으면 그게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돼요. 미국 사람들은 상관도 안 하고 피해도 안 주고 도움도 안 주는 거죠.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돼요. 한국에서는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안 돼요. 특별히 너무 잘해도 안 돼. 튀어나온 돌이 정 맞는다고.(웃음)”

장서희 저도 공감해요. 중국에서는 제가 할 일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어디서 몰매 맞죠. “그렇게 좋으면 중국 가서 살아라.” 하면서요.(웃음) 요 근래에 힘들었어요. 저를 깎아내리려 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혜민 근데 그런 거는 안 보면 안 돼요?
장서희  기사화되니까요.
혜민 그럼, 그 기사를 안 보면 되잖아.
장서희  누가 이야기해줘요.
혜민 이야기해주지 말라 그래요. 혹시 인터넷 포털에 자기 이름을 검색하세요?
장서희 저는 안 해요. 스님은요?
혜민 안 해요. 왜 해요.(웃음) 좋은 이야기만 들으세요. 시시비비를 다 가려서 “니가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어? 사실도 아닌데.” 그러면 그게 곧 내 인생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내 마음 속에 담아두기도 바쁜데, 미워하는 사람들을 마음의 방에 넣어두고 누군가를 용서 못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방에 그 사람을 공짜로 장기 투숙시키는 거거든요.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장서희  <인어아가씨> 이후에 한동안 공백기가 있었거든요. 욕을 먹었어요. “<인어아가씨>밖에 안 되는 애” 하면서. 그렇게 칭찬하던 사람들이 작품이 안 되니까 욕을 해요. 그러다 <아내의 유혹>이 관심을 받으니 “역시 장서희!” 하며 칭찬을 해줘요. 그리고 또 공백기. 중국 활동 시작하니까 “여기서 안 되니까 중국 가는구나.” 하셔요. 오기도 생기고, 인정도 받고 싶고 그래요.
혜민 제 책에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말자’라는 부분이 있어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만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저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나왔고, 어떤 화장을 했고, 전혀 기억 안 나. 소위 뒷담화도 잠시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면서 ‘나를 어떻게 봐줄까?’ 너무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스스로 만족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남이 만족하는 삶이에요. 남들의 의견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어요. 내 마음도 컨트롤 못하는데, 어떻게 그걸 컨트롤해요. 그래도 정 안 되면, 그땐 기도하세요. 놓게 해달라고. 뭐 때문에 저 사람들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에 휘둘리면서 살아야 해요?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정말로 행복해지기를 기도하세요. 나를 욕했던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들 스스로 불행해서 그런 거예요. “마음을 큰 바다처럼 쓸 수 있도록, 부처님 도와주십시오. 관세음 엄마 좀 도와주세요. 관세음 어머니처럼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5
서희, 미운 사람 떨쳐내기는 힘들어요

 
혜민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제일 처음에는 나를 중심으로 시작하세요. 내가 힘들잖아요. “내가 치유되기를, 내가 행복해지기를, 나의 원이 이루어지기를.” 이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
장서희 내가 치유되기를, 내가 행복해지기를, 나의 원이 이루어지기를.
혜민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해줘야 해요. 제 책 맨 마지막에 그거 나와요. 안 외워도 돼요.(웃음) 의도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면 실제로 그런 느낌이 일어나요. “내가 치유되기를.” 그 말 자체에서 치유의 능력이 나와요. “내가 행복해지기를.” “나의 원이 이루어지기를.” 이렇게 해서 내가 잘된 다음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까지 범위를 차츰 넓혀가는 거예요. 그 사람이 행복하고 상처가 치유돼 있었으면 나한테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크게 울음이 터지거나 뭔가가 울컥 올라오면서 맺혔던 것이 풀려요. 그게 업장소멸이죠.
장서희 사실 화가 나도 연예인이라는 입장 때문에 맞대응을 못 해요. 타깃이 될 수 있으니 운신의 폭도 좁고. 뭘 해도 조심스럽고. 그거 때문에 더 화가 날 때도 많아요. 늘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왜 얍삽한 사람이 빨리 잘될까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우직한 사람은 만날 일만 하고, 얍삽한 사람이 당장 잘돼요!
혜민 당장만 잘돼요.(웃음) 사찰에 있어보면,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잖아요. 장미꽃 같은 사람이 있고, 소나무 같은 사람이 있어요. 장미꽃 같은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입안의 혀처럼 굴어요. 장미꽃처럼 아름다우니까 끌리죠. 그런데 그런 사람은 금방 시들어요. 진실성, 진중함, 끈기 같은 게 없이 말로만 하는 게 있어요. 6개월, 1년만 지나도 다 드러나요. 반면 소나무 같은 사람은 일만 해요.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꾸준하게 잘해요. 그런 사람들은 6개월, 1년 지나면 ‘어떤 사람이구나.’ 모두가 알아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줘요. 우리 스님들도 보면, 어떤 스님은 오자마자 주지스님에게 잘해서 귀여움을 받고, 또 어떤 스님은 우직하고 그래요. 다 똑같아요.
장서희  어머, 스님들도 그런 거 있으시구나!(웃음)
혜민 그럼요. 주지스님한테 사랑받기, 그런 거 있지요.(웃음) 어떤 스님은 처음 와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한 번 시킨 건 우직하게 잘해요. 우직하게 잘하는 것이 6개월, 1년 지나면 믿음과 신뢰로 변해요. 말이 앞서는 사람은 처음만 좋아요. 남이 나에게 가짜인 이야기를 해서 힘들 때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꿋꿋이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예요.
장서희 오늘 정~말 좋은 게, 따뜻한 치유를 받은 기분이에요, 스님. 오늘 해주신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혜민 제가 더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사실 더 잘할 수 있는데. 지금 와서 말이 통하기 시작했어요. 아쉽게!(웃음) 앞으로 TV나 영화에서 장서희 씨가 나오면 단순히 많은 연예인 중 한 분이 아니라 소중한 인연으로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길상사에서 그리고 삼청동의 소담한 카페에서 진행된 아주 사적인 만남은, 젊은 스님과 여배우의 만남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와 소녀 팬의 만남으로 분위기가 전환됐다. “스님, 책에 저를 위한 문구와 사인을 해주시면 정말 감사히, 잘 읽고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웃음) 사실 오늘 저희 어머니도 함께 오시려고 했는데, 못 오셔서 무척 아쉬워하셨어요. 뉴욕 불광사에 계시지요? 제가 연이 생겨서 방문할 일이 있으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블로그도 트위터도 늘 잘 지켜볼게요.”
“아유, 제가 더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스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음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뜬 스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저녁 대접해드려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는 배우 장서희의 얼굴에도 충만한 행복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장서희의 웨이보(중국의 SNS)에는 혜민 스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사진 한 컷이 올라왔다. 드라마 <서울임사부>에 대한 중국 현지의 반응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혜민 스님은 전국을 돌며 사인회 등의 일정을 기쁜 마음으로 소화하는 중이다. 젊은 스님과 여배우는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라는 여행을 이어나갈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햇살 좋은 봄날 오후가, 앞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다가도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그리고 슬며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좋은 순간이었길 바란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는 덕목의 숨은 미덕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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