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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철의 뒤집기 한판

우울증, 자살시도를 딛고 찾은 제2의 성공시대

2014-03-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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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서 차력사로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탤런트 송경철이 최근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2002년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다 사고를 당한 뒤 항간에는 사망설까지 나돌던 그이지만, 그간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성공한 사업가로, 명품 조연배우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3년 MBC 공채 6기 탤런트로 데뷔한 송경철은 <수사반장>, <옥이이모>, <형> 등의 드라마에서 범인이나 동네 건달 등 주로 악역을 소화했다.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매번 범인 역을 맡을 때는 경찰서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범죄자로 오인 받아 경찰서장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는 웃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가 연기자로서 최고 정점에 올라섰던 시절은 1997년 말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 출연할 때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차력사로 출연해 서민적인 말투와 빡빡 깎은 대머리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악역 이미지를 벗고 주연급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는 2002년 수상스키 사고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후 몇몇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는 그리 깊게 남지 않았다. 하지만 송경철이 최근 SBS 드라마 <자이언트>로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삼청교육대 471번 출신 건설의 달인 ‘남영출’ 역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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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출로 다시 태어난 송경철

많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TV에 출연하는 그가 반가웠지만, 정작 그는 드라마 복귀를 결심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업실패, 사고 후유증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깨끗이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필리핀에서 120개의 객실을 갖춘 대형 리조트의 CEO가 되었고, 무엇보다 그가 간절히 원하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작가와의 인연 때문이었죠. 제가 필리핀에 있을 때 탤런트 이덕화가 전화를 걸어서 ‘그곳에 방송작가가 여행을 가니, 잘 부탁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작가랑 친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작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이언트>라는 드라마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극 중 ‘남영출’이라는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는 ‘시청률을 올려달라’고 말하며 출연을 부탁하는 작가의 말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오랜 공백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자신을 잊어버렸을까 봐 두려웠고, 예전 같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인기 있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시청률을 올려달라는 말이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자신은 없지만, 전라도 쪽 시청률은 책임질게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전라도 사람이거든요. 하하.”
그의 출연은 23회부터였다.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특히 동료 연기자들의 격려가 끊이질 않았다. 가장 먼저 탤런트 정혜선이 전화를 걸어서 연기 복귀를 축하해주었다.
“‘송경철, 녹슬지 않았네. 너무 잘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정혜선 씨도 제가 출연한다고 해서 일부러 챙겨보았는데 너무 긴장돼서 가슴이 덜덜 떨리더래요. 그런데 정작 저는 제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지 못했어요. 정말 보고 싶었는데, 너무 겁이 났어요.”  하지만 뜻밖에 그가 정작 힘이 들었던 것은 연기가 아니라 달라진 방송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녹화가 끝나면 연기자와 연출자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가족적인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촬영분량만 마치면 하나 둘 녹화장을 떠났다.
“일부러 제가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지금은 소속사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로드매니저까지 많은 사람들과 동행을 하다 보니 배우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어쩌겠어요. 제가 맞춰야지요. 그런데 요즘 연기자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예의는 참 바르더라고요.”

나를 이끌어준 친구 이덕화

그가 촬영현장을 찾았을 때 가장 반갑게 반겨준 사람은 막역한 친구인 탤런트 이덕화였다. 이덕화는 그가 드라마에 복귀하도록 이끌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덕화는 송경철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필리핀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고,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도록 작품을 직접 섭외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송경철은 친구의 도움을 매번 거절했다.
“배우는 진열대에 놓인 상품이 아니잖아요. 이거 사가세요, 저거 사가세요, 할 수 없는 거죠. 저는 작가나 PD들에게 작품을 출연하게 해달라고 구걸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배우는 무대에 오르면 즐겁거든요. 노래를 하든, 연주를 하든, 연기를 하든, 무대가 제일 좋아요. 그래서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어요. 제발 누가 나를 불러다오.”
그는 1997년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라는 작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짜릿한 쾌감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내나 아들은 가족이니까 당연히 기쁘겠지만, 주변 분들이 참 많이 격려해주세요. 내가 신인도 아닌데, 잠을 못 잘 정도로 전화가 빗발쳐요. 그래서 ‘과거에 내가 사람을 너무 빨리 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송경철의 아들은 수시로 인터넷 뉴스를 읽고 네티즌들의 반응을 알려준다고 한다. 드라마 출연은 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기쁨인 듯했다. 송경철은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것이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다. 아들이 사춘기를 겪을 무렵 아들과 떨어져 필리핀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저를 안 닮고 아내를 닮았어요. 저를 닮았으면 난리 났을 겁니다.(웃음)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컴퓨터 판매, 출장뷔페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스무 살 때는 회사에 취직해서 모은 돈 2천5백만 원을 아내에게 주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이 없죠.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요.”

 죽을 힘으로 살았다

송경철은 마흔 살 후반부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업이 번창했고, 연기자로서도 입지를 다질 무렵 그에게 느닷없이 불행이 찾아왔다. 형제처럼 믿고 지낸 사람들에게 차용증 한 장 받지 않고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고, 보증을 선 것이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그이기에 지인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좀 살아보겠다고 돈을 빌려달라는데 어떻게 거절을 합니까? 도박을 하겠다면 빌려주지 않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데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사람을 무조건 믿는 편이라 차용증도 받지 않았어요. 당시 운영하던 식당이 번창하던 시절이라 크게 돈 걱정도 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그것이 조금씩 누적되다 보니 한꺼번에 들이닥치더라고요. 돈 잃고, 사람도 잃었던 거죠.”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 6월 25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 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다가 커다란 바지선을 묶어놓은 와이어에 얼굴을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한강에서 성수대교 인터체인지 공사를 했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수상스키가 서툴러서 뒤따라오던 후배를 챙긴다고 바라보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한강에 떠내려가는 저를 후배가 꺼내서 병원으로 이송했고, 무려 16시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어요. 얼굴 전체가 함몰되는 큰 사고였어요. 얼굴뼈가 으스러져서 나사를 조이고 철심을 박았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끔찍해서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더라고요. 얼굴만큼 마음의 상처도 깊었죠. 그때 함몰된 코는 최근에 드라마 출연을 위해서 세웠어요.”
얼굴이 생명인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망가진 얼굴을 보면서 절규했다. 나사가 지탱하는 얼굴을 볼 때마다 목숨을 끊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당시 저는 목 깁스를 하고 구급차에 겨우 몸을 싣고 장례식장에 가야 했어요. 안타까운 건 아버지께서 제가 잘나갈 때 돌아가셨으면 편하게 눈을 감으셨을 텐데, 더 이상 추락할 것도 없는 바닥일 때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때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 후로 그는 부모를 잃은 깊은 상실감, 지인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 그리고 사고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심지어 아내와 각방을 쓰기도 했다.
“솔직히 자살시도도 했습니다. 죽고 싶었어요.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죽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기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은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막상 목숨을 끊으려고 하니까,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는 자기 목숨을 버릴 용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후배들이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이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다

 

그 후로 그는 무작정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낚시를 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고국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제가 필리핀에 있는 동안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차장에서도 일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이해해주었어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그가 브라운관을 떠나서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존재는 점점 잊혀졌다. 심지어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탤런트 견미리의 친척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요. 연락을 늦게 받은 탓에, 자정 무렵 장례식장을 찾아갔는데, 새벽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한참 동안 저와 시간을 보내던 견미리가 다른 문상객을 배웅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곳에서 일을 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저 실례지만 송경철 씨 아니세요?’라고 묻길래 바라봤더니, ‘죽은 줄  알았던 송경철이 귀신이 되어서 장례식장을 찾은 줄 알았다’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송경철은 필리핀에서 스킨스쿠버와 리조트 사업가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리조트는 현재 한 개의 건물을 추가로 짓고 있다. 그것이 완공되면 그는 120개 객실을 갖춘 대형 리조트의 사장이 된다.
“세부는 정말 그림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요. 최민수, 박상원, 전인화 등 수많은 연기자들이 저희 리조트에 놀러왔었어요. 탤런트 김나운도 수중결혼식을 저희 숍에서 했고요."
그는 사업가로 돌아와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업이 안정적이니까 드라마도 편하게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잊지 않았던 시청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위축되었던 날개를 활짝 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아마 제가 날개를 펴면 대한민국이 난리가 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너의 시대가 왔다고 하니까. 제2의 인생을 산다는 마음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마음껏 누릴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취재 백은영 기자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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