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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와 우울증 딛고 ‘국민 왕자’등극한 이재황의 이미지 깨기

2009-02-27 11:46

마음에도 백신효과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 아파본 사람이 더 건강하다. 다른 이들의 아픔까지도 보살필 줄 알기 때문이다. 이재황은 건강했다. 누구보다도 더…. 위악도 위선도 없는 그의 표정과 이야기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카메라 플래시와 조명이 동시에 팍! 하고 터진다. 스튜디오 안 누군가 들릴 듯 말 듯 탄식처럼 말한다. “야…. 정말 잘생겼네….” 언젠가 들어본 말이다. 2001년, 일산 SBS 탄현스튜디오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함께 간 포토그래퍼도 그랬다. “와, 실제로 보니 정말 잘생겼네….”  그때, 그 남자 포토그래퍼 선배의 입에서 무심결에 흘러나온 말에 그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선해보이는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10분의 1초쯤 마주쳤다. 부끄러워 얼른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탤런트 이재황을 다시 보았다. 깨끗한 라인이 부드럽게 흐르는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왠지 그는 이전에 내가 만났던 그 남자가 아닌 것 같다. 더 남자다워지고 더욱 강인해 보였다. 수면처럼 잔잔히 흔들리던 눈빛은 이제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다. 하긴 왜 아니겠는가. 그도, 나도, 어느새 20대가 아니었다.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방황하지만 그런 것쯤 눈빛 저 깊숙한 곳에 숨길 줄 아는 30대가 된 것이다. 

perfect man의 불안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던 ‘시트콤 유망주’ 청년은 이제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국민 왕자’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그가 맡은 민건우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여자들의 로망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남자. 따뜻하고, 다정하고, 때론 냉정하면서도 연인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저돌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데뷔 이후 똑똑하고 착한 남자 역할을 주로 맡았다. 자주 부유하기까지 했다. SBS ‘그 여름의 태풍’에서는 미국에서 사립학교를 나와 MIT에서 MBA를 마친 남자였다. ‘다이아몬드의 눈물’에서는 유학파 출신의 촉망받는 디자이너였고, ‘돌아와요 순애 씨’에서는 능력과 외모, 학벌, 집안 모든 게 완벽한 그야말로 퍼펙트 맨이었다.
“일단은 좋은 역할이죠. 그런 배역을 맡게 된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꾸 한계에 부딪친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역할쯤은 이제 완벽하게 할 줄 안다는 건방진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의 부족함을 채우려면 더 다양한 역할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뿐이죠.”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주 앉은 그가 말했다. 가뿐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자신을 둘러싼 반듯반듯한 이미지의 유리벽을 어루만졌다. 출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느끼하다’고 표현하며 쑥스러워했고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가 오히려 불만이라고 했다.
“부잣집 도령 같다구요? 어휴~ 아니에요. 아주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리 넉넉한 집안도 아니었죠. 고등학교 때 용돈을 벌려고 호텔 커피숍 서빙, 룸서비스는 물론이고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수신호도 하고 곡괭이로 땅도 파봤는걸요. 온몸이 아파서 며칠 못하겠더라구요.(웃음)”

‘서태지와 아이들’ VS ‘사일로버스터’
이재황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의사가 되라’고 주문을 걸었고, 신문에 명문대학교 기사가 나면 그것을 오려서 보여주며 ‘네가 갈 학교’라고 했다. 그도 아버지가 보여준 길을 자신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얌전한 모범생 소년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폭풍이 당도하고 말았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죠. 그들의 음악과 춤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언제부터인가 수련회나 학교 축제, 체육대회가 열리면 으레 내가 나가 춤을 추는 것으로 되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데, 심지어 댄스 스쿨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서태지가 나오는 모든 방송을 녹화했고 그 당시 활약했던 듀스와 현진영의 춤도 마스터했죠. 이상한 것은, 지금의 제가 몸치에 가깝다는 거예요. 축구, 농구, 야구 등 웬만한 남자들은 다 하는 구기운동도 잘 못하고, 연기도 움직임이 커지면 어딘가 어색해요. 그 춤실력은 다 어디 갔을까요?(웃음)”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부모님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는 연예인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재수 끝에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친한 친구들 따라서  ‘사일로버스터’라는 학내 록그룹에 들어갔고, 아는 사람들에게 티켓 팔아서 하는 공연도 몇 차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가수 매니저를 아는데 오디션을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별 생각 없이 갔던 오디션에 덜컥 붙었던 이재황은 그날로 가수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1997년이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대화가 끊어졌어요. 아버지는 ‘우리 집에 광대는 안 된다’며 ‘공부나 해, 임마!’ 하고 타박하셨어요. 워낙 보수적이신 데다 고등학교 때부터 곤두박질치는 성적에, 가끔씩 술냄새를 풍기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조금씩 실망을 하셨던 거예요. 거기에 가수가 되겠다는 말이 쐐기를 박았죠.”
민망하게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가수 데뷔는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이미 학과 성적은 꼴찌까지 추락한 뒤였다. 다행히 그때 지금의 매니저를 만났고, SBS ‘카이스트’로 연기자 데뷔를 하게 된다.

‘내 아들이 탤런트라니!’
“TV에 출연을 하니까 부모님이 그제야 활짝 웃으셨어요. 그 전까지는 속으로 ‘저게 뭐가 되려고 저럴까?’ 하고 한심하게 보셨던 모양이에요. 집안이 넉넉해서 금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안타까움도 크셨겠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놓고 계셨다고 한다. 아들의 인터뷰뿐 아니라 아들이 출연한 드라마 기사에 이재황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가도 곱게 오려서 모아놓았던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신문기사를 오려서 파일에 넣으시는 걸 보았어요. ‘뭐예요?’ 하면서 보니까 그 속에 제 기사가 데뷔 시절부터 차곡차곡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콧날이 시큰해지는 걸 참고 ‘이러실 걸 예전엔 왜 그리 구박하셨느냐’고 했죠.(웃음)”
요즘은 물론 부모님이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자 보루다. 얼마 전엔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아내의 유혹’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드라마가 끝나자 어머니가 굉장히 흐뭇한 얼굴로 아들 쪽을 바라보며 ‘되게 신기하다, 탤런트랑 있으니까…’ 하시더란다. 지금까지 쭉 함께 살고 있는데도! 아버지도 아들에게 데뷔 10년 동안 한 번도 부탁하지 않았던 사인을 열 장씩, 스무 장씩 부탁한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큰 기쁨이다.
그는 연기자들이 참여한 ‘아내의 유혹’ OST 스페셜 앨범에 3곡의 노래를 직접 불러 녹음했다. 그의 OST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돌아와요 순애 씨’ OST에도 참여했고, 이것을 계기로 현재 일본에서의 음반 발표도 준비 중이다.
“‘돌아와요 순애 씨’가 일본에서도 방영이 되었거든요. 예전에 시도했던 것을 다시 하니까 재미있어요. 특히 내가 나오는 멜로 신에 내가 부른 테마곡이 나오니까 더 재미있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연기만 할 거예요. 아직 한국에서 앨범을 내기에는 제 실력이 모자라요.”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그에게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2년 동안의 암흑과 같은 슬럼프와 우울증을 이겨내고 출연한 첫 드라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런 게 우울증이겠죠. 바쁘게 일하다가 쉬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어요.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데다 사람들에게 잊혀질까 봐 초조했죠. 일을 안 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일본에서 가수 데뷔 제안을 받아서 ‘이거라도 열심히 하자’ 했는데 그것도 한없이 미뤄지는 거예요. 내가 상처받을까 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는 가족들 보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그 2년 동안은 부모님도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정말 민망했어요.”
절친했던 탤런트 정다빈의 갑작스런 죽음도 그를 깊은 우울의 수렁에 밀어넣었다. 이재황과 정다빈은 드라마 ‘그 여름의 태풍’에 함께 출연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알고 봤더니 친남매로 밝혀져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였다.
“연기하면서 다빈이만큼 친한 여자 연예인이 없었어요. 다빈이는 원체 살가운 성격에다 애교도 많고, 성격도 밝았어요. 좋은 것, 싫은 것 분명하고 아기같이 순수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다 잘했죠. 드라마 끝나고도 자주 보고, 스키장도 같이 갔는데….”
그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계속되는 슬럼프, 친동생처럼 아끼던 사람의 죽음…. 세상이 싫어진 그가 취한 행동은 단절이었다. 집 안에 틀어박혔고 바깥 풍경이 보기 싫어 온 창문에 커튼을 치고, 밤에도 눈에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싫어 전깃불 대신 촛불을 켜놓고 생활을 했다.
“고마운 것은 사람들이 자꾸 저를 찾아와서 밖으로 끌어내준 거예요. 안 나간다고 하면 집 앞까지 와서 억지로 데리고 나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줬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니 우울한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풀려갔어요.”
그는 얼마 전 정다빈의 추모 2주기를 맞아 바쁜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제쳐두고 그녀의 묘를 찾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문득문득 한없이 그립다고 했다.

fall in LOVE & …
그는 드라마에서 유독 연상녀들과 많이 커플을 이뤘다. ‘아내의 유혹’의 장서희도 그보다 연상이고 드라마 ‘다이아몬드의 눈물’에서는 윤해영과, ‘돌아와요 순애 씨’에서는 심혜진과 호흡을 맞췄다. 실제로도 이재황은 대학시절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사귄 적이 있다고 한다.
“3년 정도 사귀었어요. 헤어지고 나서도 간간이 연락하고 만나기도 해서 한때 좋은 감정으로 다시 돌아갈 뻔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일도 바빴고, 군대도 다녀와야 했고, 너무 여유가 없어서 연락이 뜸해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나 0월 0일에 결혼해. 와줄 수 있어?’ 하는 문자가 왔어요. 차마 결혼식에는 갈 수 없어서 ‘축하한다’고 답장만 보냈죠. 나중에 우연히 그녀의 사진을 보았는데 아이가 있는 거예요. 그때는 또 다른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더라구요. 축하해주고 싶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이후에도 몇 번의 짧은 만남이 있었지만 지금 그는 혼자다. 이상형은 친구 같은 애인. 가식 없이 맨얼굴을 보여줘도 창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 나에게 없는 모습을 꾸며내어 발버둥치면서 잡아두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많이 어린 여자보다는 나이가 자신보다 조금 많더라도 말이 통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단다.
“예전에 제가 여자친구 사귈 때 모습은 드라마에서의 모습과 정반대였어요. 일단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어요. 제가 했던 가장 닭살스런 멘트가 ‘조만간 한 번 보자’였으니까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연락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죠. ‘사귀는 게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무뚝뚝하기도 했지만 너무 어렸던 탓도 있는 것 같아요.”
하긴, 요즘 들어 갑자기 지나가는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에게 더욱 어울리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결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혼에 대해 무척 신중하고 현실적인 입장이다.
“인연이나 사랑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 결혼이잖아요. 지금은 결혼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대신 연애만큼은 이제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으니까 사람이 좀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요.(웃음)”

Have a smile again
with me

연기자 아닌 자연인 이재황의 모습은 무척 소탈하다.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 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술잔을 돌리며 이어지는 친구들과의 살가운 대화를 더욱 좋아한다. 얼큰하게 취한 후 이어지는 친구들끼리의 노래방 콘서트를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술자리에 가면 대체로 끝까지 남는 편이다.
“친구들한테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내가 좀 사려고 하는데, 참 착한 친구들이라 아직도 많이 사줘요. ‘드라마 잘 되니 쏴!’ 하지도 않아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잘 되었다며 또 술을 사주죠. 나중에 얼마나 큰 걸 먹으려고 하는지!(웃음)”
그의 웃음에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보다 훨씬 큰 고마움이 묻어난다.
때로 그는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거창한 해외여행도 좋지만 지방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잠깐 다녀오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절을 만나면 풍경을 울리는 맑은 바람 소리와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에 흠뻑 취해 시간을 잊는다.
“올해 1월 1일 눈 뜨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새벽에 정신없이 일어나 촬영하느라 바쁘게 지내지만 이렇다 저렇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와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요. 지난 2년이 나에게는 20년과 같았는데, 지금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욕심을 조금 더 낸다면, 앞으로는 조금 풀어진 역할도 하고 싶어요. 트레이닝복 입고 ‘야!’ 하고 소리도 지르고 껄렁거리기도 하는 역할…. 어? 왜 웃으세요? 그런 거 나랑 잘 맞아요. 내 생활인데?(웃음)”
그와 헤어지고 남은 것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뿌려져 있는 그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아내의 유혹’에서는 거의 들을 기회가 없는 그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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