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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강남 여의사 프로포폴 중독자 된 이유

#마약 #프로포폴

2020-05-30 09:46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뉴시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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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울 강남에 위치한 4층짜리 성형외과가 돌연 폐업했다. 병원장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재력가를 상대로 프로포폴 불법 투약을 했다는 정황과 더불어, 병원장 본인도 프로포폴에 중독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병원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원장님 괜찮으세요? 술에 취한 건 아니죠?”

성형외과를 찾은 환자들이 원장인 김모 씨의 상태를 보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벌건 얼굴과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표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원장이 진료를 보는 시간은 부쩍 줄었다. 간호조무사에게 시술을 대신 하라고 지시했다. 원장은 ‘프로포폴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바늘 꽂을 곳 부족해 발에 꽂았을 정도

지난 5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 심리로 김 원장과 간호조무사 신모 씨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병원 동료였던 세 명이 증인으로 출석해 다수의 증언을 쏟아냈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이 자행돼왔다는 게 골자인데, 병원장마저 프로포폴 주사를 계속 맞아왔다고 했다.

증인 송 씨는 병원 입사 당시 전임자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여기는 무서운 곳이니 너도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송 씨는 우연히 김 원장이 피부관리실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점심시간에도 퇴근시간에도 원장은 같은 자리, 같은 상황이었다. 투약을 본격화한 2017년 하반기 후론 끊임이 없었다. 투약 중 기도가 막혀 간호조무사들이 원장에게 응급처치를 한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병원 압수수색을 하러 들이닥쳤을 때도 원장은 프로포폴을 맞고 있었다. 팔에는 바늘을 너무 꽂아 혈관을 찾을 수 없어, 발에 바늘을 꽂은 채였다.

5월 14일 세 번째 공판에 참석한 또 다른 증인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원장한테) 왜 투약하느냐고 물었더니 프로포폴에 중독됐다고 답했습니다. 장난식으로 얘기하긴 했는데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약물에 중독된 원장이 진료를 볼 수 없게 되자 무면허 시술이 이뤄진 경우도 다반사였다는 취지의 진술도 이어졌다. 해당 시술을 도맡은 건 총괄실장으로 근무했던 간호조무사 신 씨다. 신 씨는 김 원장과 마찬가지로 구속기소 된 상태다.

“신○○ 실장이 시술을 못 하는 경우 원장에게 보고하면 ‘너희들이 하면 되지, 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냐?’며 증인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에게 시술하라고 한 게 사실입니까?”

검찰의 질문에 증인은 “네”라고 끄덕였다. 내내 재판을 지켜보는 김 원장의 행색은 호졸근했다. 어두운 낯빛과 정돈 안 된 머리카락이 그의 심경을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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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일부 사람은 환각 효과로 착각할 만큼 개운함을 느낀다.

재력가 프로포폴 투약, 병원 수익원 됐을 것

프로포폴은 정맥에 투여하는 수면마취제로 국내에선 2011년 마약류로 지정됐다.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성형수술을 진행할 때 주로 쓰인다. 여느 마취제보다 마취 유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회복이 빨라 정상적인 목적으로 투여할 경우 환자와 의사 모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일부 사람은 환각 효과로 착각할 만큼 개운함을 느끼는데, 이것에 집착하면 중독으로 이어진다. 주사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호스를 통하거나 링거에 섞어 정맥에만 투여한다. 프로포폴 접근 가능성이 높은 의료진이라면 더욱 투여가 쉬운 약물이다.

현직 피부과 의사 A씨는 김 원장 사건을 두고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연예인, 유흥업소 종사자가 주로 (프로포폴을) 맞지만 의료진도 많이 맞아요. 본인이 의사이니 알아서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투약이 반복되면 의사라도 제어가 안 돼요.”

한때 몇몇 병원에서는 프로포폴 주사를 주 수익구조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프로포폴 한 병 기준 원가는 1만원이 채 되지 않는 데 비해 주입 가격대는 평균 30만~40만원, 많으면 100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몇십 배 남는 장사예요. 하루 20명만 누워도 최소 600만원을 벌 수 있으니 끌리지 않겠어요? 수익 기복이 생기면 의사들이 프로포폴 장사 ‘악수’를 두는 거죠.”

김 원장도 ‘악수’를 뒀다. 직원들은 김 원장이 시술을 마친 뒤에도 추가로 프로로폴을 투약하기도 하고, ‘특정 환자’들을 상대로 시술 없는 ‘생투약’도 했음을 증언했다. 프로포폴은 사용처와 반·출입 내역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반드시 전산으로 보고해야 한다. 김 원장 입장에선 보건당국의 감시가 큰 압박이었을 터. 그는 지인의 명의를 도용한 차명 진료기록부에 거짓 투약량을 기재했다.

‘특정 환자’ 중에서도 소수에 대해서는 진료 기록 자체를 적지 않았다. 검찰에서는 이 ‘특정 환자’가 병원 수익원의 핵심이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서는 증인 송 씨에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병원 운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재력가들이 고액의 현금을 주면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러 와서이지 않느냐”고 물었고, 송 씨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해 현직 의사 A씨는 “VIP들은 1인 원장 체제 아래 간호사 수가 적은 병원을 찾았을 것”이라며 “청담, 압구정 등지 개인 병원에 전화 좀 돌리면 어느 병원이 수면마취에 우호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으로, 6월 2일 네 번째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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