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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피해 여성들, 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나

#성범죄 #텔레그램

2020-04-27 11:03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뉴시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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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된 지 4년이 지났다. 그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더 악랄해졌다. 약점을 잡은 피해자를 ‘노예’라고 부르며 성착취를 일삼는 가해자들, 이를 관전하는 또 다른 가해자들. 이른바 ‘N번방 사건’이다.
“반복되는 잔인한 영상에 웬만큼 단련됐을 무렵 마주한 영상은 꽤 오래 말을 잃게 했다. 여성의 몸 안에 애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눈만 감으면 그 장면이 떠올랐다.”

N번방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린 대학생 ‘추적단 불꽃’은 다수 매체를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이 취재를 위해 직접 확인한 N번방에선 상상할 수 없는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개처럼 짖고 있는 아이들,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널브러진 아이들,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위를 하는 아이들이 발견됐다. 이건 일부에 불과했다.
 

텔레그램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 N번방·박사방은?

N번방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영상물 등이 공유된 방이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처럼 문자, 사진, 동영상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보안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메시지가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자동으로 삭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입 시 휴대폰 번호만 필요해 기타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메시지 송·수신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밀 대화’ 기능도 있어, 이 점이 범죄의 창구로 악용됐다.

가해자들은 1번방을 만들고 영상을 공유한 다음,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2번방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총 8개 N번방을 만들었다. N번방 운영자는 미성년자의 신상을 캐낸 뒤 “개인정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성착취 영상을 만들도록 했다. ‘갓갓’이 바로 그다.

N번방이 있다는 걸 홍보하며 가담자를 늘린 가해자 ‘와치맨’도 있다. 그는 ‘AV-SNOOP 고담방’이라는 대화방을 운영하면서 N번방 피해 사실을 묘사하고 피해자 신상을 공개해왔다.

범죄 규모는 빠르게 확대됐다. N번방에서 활동한 ‘켈리’가 2019년 6월쯤 ‘k-fap(켈리방)’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곧이어 켈리방 회원 ‘체스터’가 나서서 ‘완장방’이라는 또 다른 공유 통로를 열었다. ‘박사’로 불린 조주빈이 ‘박사방’을 꾸리기 전 활동한 곳이 여기다. 조주빈은 완장방의 범죄 행각을 그대로 습득해 진화시켰고, 최악의 범죄 소굴로 지목된 박사방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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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을 운영해 온 조주빈과 그의 조력자 ‘부따’ 강훈

‘고액 아르바이트’, ‘SNS 사진’ 빌미로 접근
“요구 거절하면 집까지 찾아와”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례를 종합해보면 고액 아르바이트 채용, 모델 섭외 절차로 여기며 신상정보를 넘겼다가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다. SNS 계정을 통해 밝혀진 피해 사실을 정리했다.

중학생 A양은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성에게서 ‘스폰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남성은 자신을 ‘주식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회사 이름, 보유 주식 현황 등이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A양은 그를 믿고 이름과 계좌를 공개했다.

“주식을 빼려면 5일 정도 걸리니 기다려달라면서 입금 예정 내역 사진을 보내더라고요. 그러고선 자위 영상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처음엔 얼굴이 나오지 않게 찍었어요. 그걸 보내고 몇 분 뒤엔 아이폰을 사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요. 제품을 주문한 사진까지 보여주기에 100% 믿었어요.”

이후로 남성이 요구하는 영상의 수위가 높아졌다. 가령 필기구를 성기에 넣는다든지, 신체 곳곳을 노골적으로 촬영하라고 시켰다. A양은 연이은 요구를 들어줬지만 당초 약속한 돈을 받지 못했다. 돈을 달라고 하니, 남성은 A양 모습이 담긴 영상을 들이밀며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다 가지고 있다는데, 저를 다 안다는데 어떻게 해요. 너무 무서워서 걔가 요구하는 걸 며칠 더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영상 유포한다 수고’라면서 대화방을 나가요. 비밀 대화방이라서 내용 캡처도 안 되고 내용이 전부 사라졌어요. 그 일 겪은 뒤로 내 영상이 유포되면 어쩌나 불안하고, 정말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또 다른 미성년자 B양은 쇼핑몰 브랜드에서 보내온 ‘캐스팅 제안 메일’을 받았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였다.

“아이돌 방에 매일 사진 공유를 했던 터라 텔레그램 계정이 있었어요. 메일을 보낸 언니랑 뷰티 관련 얘기를 해보니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죠. 언니가 잘하면 쇼핑몰 메인 모델로 써준다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나체 사진을 보내야 한대요. 자꾸 망설이니까 나중엔 언니 앞에서 벗을 텐데 뭐가 부끄럽냐고 해요. 그래서 언니를 믿고 보냈어요. 메일 도메인이 ‘○○○○○’(유명 온라인 쇼핑몰)였거든요.”

‘언니’라던 사람이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은 그때부터다. 사진을 빌미 삼아 성적 착취를 가했다. 이전에 옷을 보내준다는 핑계로 얻은 집 주소까지 협박 대상이 됐다.

“저희 집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가까이 있으니 다른 생각 말라고 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폰도 못 보고 3개월 동안 방에서만 지냈어요.”

초등생 자녀를 둔 엄마가 작성한 경험담도 눈길을 끈다. 그는 딸아이가 모바일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문화상품권 판매자에게 연락했다가 성범죄 위험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문화상품권 판매자는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학교 알림장 앞뒷면의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했다. 그렇게 확보한 개인정보는 아이에게 나체 사진을 요구하는 데 쓰였다. 다행히 아이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해 더 큰 피해를 면했다.

“N번방 기사를 읽고 당시 경험이 떠올라 큰 충격을 받았어요. 스마트폰 게임 아이템을 사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접근한 방식을 돌아보니 이런 게 N번방 수법인 것 같아요. 딸이 영상을 달라는 요구에 응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 돋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SNS에서 ‘일탈계’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탈계란 자신의 신체 노출 사진에 ‘#일탈계’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게시하는 트위터 계정을 뜻한다. 가해자들은 일탈계 게시물을 올린 미성년자들을 선별해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을 사칭해 겁박하는 내용이 주였다. 가해자들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보내준 링크에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신상정보를 건네면, 가해자들은 얼굴 사진, 탈의 사진 전송을 강제했다. 거절할 수도 없게 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주저함을 보이면 이미 받은 사진들을 주변에 유포하겠다고 몰아붙였다. 결국 피해자의 몸부림은 가해자를 더 자극할 뿐이었다. 특히, 조주빈(‘박사’)이 수많은 피해자에게 공통으로 주문한 사진은 참혹했다. 신체 일부에 칼로 ‘노예’, ‘박사’ 등을 새긴 사진. ‘내가 만든 노예가 맞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추적단 불꽃’에 따르면 박사는 하루에 노예 2명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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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얼굴에 나체 합성한 뒤 성희롱까지…

텔레그램에서 자행된 디지털 성범죄는 N번방, 박사방뿐만이 아니다. ‘추적단 불꽃’은 ‘지인능욕방’, ‘통로방’을 대표적인 예로 들어 그곳의 실태를 고발했다.

‘지인능욕’은 가해자가 지인 사진과 명예훼손 이상의 비방, 성희롱을 적어 공유하는 성범죄다. 친구나 직장 동료뿐 아니라 연인, 누나, 동생, 배우자까지 지인에 포함됐다. 1차 제공자가 관리자의 텔레그램에 지인 사진과 개인정보를 보내면, 관리자가 이를 지인능욕방에 올린다. 다수 가해자는 나체와 합성한 사진을 퍼트리기도 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피해자의 이름·나이·거주지역 공개와 함께 성희롱을 덧붙이는 것이 규칙이다. 이를 공유한 다른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당신이 맞냐”고 위협하며 끊임없이 범죄를 저질렀다.

통로방은 N번방, 박사방에 입장하기 전 거치는, 말 그대로 ‘통로’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성착취 영상, 불법 촬영물, 해외 포르노 등이 게재되고, 숱한 성범죄 모의가 이뤄진다. 신고로 방이 사라져도 범행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새로운 방과 연결되는 ‘대피소’를 통해 집결했고, 이전과 동일한 혹은 더 담대한 범행을 이어왔다.
 
 


내 아이 어떻게 지키나?
“죄책감도 가르쳐야 하는 시대”

N번방 사건은 대중적 공분을 샀다. 아이를 둔 부모는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들에겐 과제가 주어진 것과도 같다. ‘어떻게 우리 아이를 지킬 것인가’. 여기서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건 우리 아이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성교육 전문가이자 ‘손경이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 소장은 “죄책감도 가르쳐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비단 ‘성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교육’도 짚어야 할 부분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N번방 사건이 터지고서 어떤 생각부터 들었나. 터질 게 터졌구나…. 소라넷 같은 다크웹에서 버닝썬으로, 또 N번방으로 진화한 거다. 정확히 말하면 중심은 같고 가지치기 하는 것처럼 생긴 범죄다.

이야기한 대로 유사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많다. (범죄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도 있고, 신고는 못 해도 상담을 받은 피해자도 많고. 견디지 못해 이민을 가는 사람, 죽음을 택한 사람, 자신을 알아볼까 봐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란 건 ‘엄마 몰카’가 나타났을 때다. 지난해 버닝썬 사건이 터졌을 때 아이들이 ‘엄마 몰카’를 대대적으로 찍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 몰카’라니? 실제로 엄마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이들이 ‘엄마’를 찍었다며 몰래카메라 영상을 올린다. 더 큰 문제는 그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나도 찍어서 올리겠다’는 사람도 많다. 거기서 누군가는 ‘이건 범죄다, 잘못된 것이다’라고 야단쳐야 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는 게 심각한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결국 ‘교육’과 연관된 부분이다. 현재 (성)교육을 진단해보면? 우선 학교 성교육이 잘못돼 있다. 너무 형식적이고 지루하다. ‘하지 마라’, ‘하면 안 된다’는 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선 왜 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른다. 해외에선 토론 형태로 교육을 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비판 능력을 길러준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통보’인 셈이다.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제외된 채 어른들끼리 해결책을 논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만, 그것을 수면 위로 올리는 걸 되게 두려워하는 것 같다.

부모의 교육 면에서는? 기성 부모 세대는 성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다. 가정 시간에 조금 배운 게 전부다. 그렇다 보니 본인 역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게 너무 힘들다. 결국 성에 대한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 성에 대한 세대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부모도 아이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미디어 환경, 새로운 문화 등을 빠르게 흡수하는 것처럼 부모도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부모가 먼저 배워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비쳤을 때 아이들 역시 부모를 이해하고 다가올 것이다. 근데 성교육 측면만 말하는 게 아니다. 넓게 보면 인성교육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망가진 게 아닐까 한다. 거기서 ‘성’이 도드라진 것뿐,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들을 만나보면 죄책감이 없어 보인다. 사과를 하려면 어떤 말을,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더라. 어느 날은 가해자에게 “내가 죄책감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냐”고 했는데, 정말로 죄책감을 가르쳐야 하는 시대다. 우리가 국어, 영어, 수학 공부를 가르칠 때 ‘몇 페이지를 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교육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대체 어디서 교육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나. 많은 도서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또, 아이들 의무교육처럼 교육청 주관의 부모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N번방과 같이 다른 메신저 플랫폼을 통한 성범죄가 또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좋은 모델 기법’이다. 우리가 집을 구할 때 모델하우스를 보고, 옷을 살 때 마네킹을 보고 코디를 구상하듯 좋은 어른 모델이 있어야 한다. 아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아이 주위에 있으면 나쁘게 변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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