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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직접 들려준 오스카 후일담

#오스카4관왕 #기생충

2020-02-25 10:07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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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침내 이곳에 오게 되어서 기쁘다. 기분이 묘하다.” 2월 19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봉준호 감독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가 직접 들려준 영화 <기생충> 그리고 오스카 후일담을 전한다.
‘아, 이 사람이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구나.’

봉준호 감독을 20년간 지켜본 배우 송강호는, 이번 오스카영화제에서 그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런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구나.’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총 4개 부분을 수상했다. 비영어권 영화 최초 작품상 수상이자 역대 아시아 출신 감독 중 두 번째 감독상 수상, 아시아 영화 최초의 각본상, 작품상과 국제 장편 영화상(외국어영화상) 최초 동시 수상 등 <기생충>이 만들어낸 기록은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쓸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2월 19일 기준, <기생충>은 해외 영화제 수상 19개, 해외 시상식 수상 155개로 모두 174개 수상 기록을 보유하며 굵직한 존재감을 갖게 됐다.

칸 황금종려상부터 오스카 4관왕까지. 한국 영화계의 ‘사건’을 만든 영화 <기생충> 팀이 기분 좋은 인터뷰 자리를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침내 다시 오게 돼 기쁘다”고 소회를 밝히며 공식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이날 현장에는 약 250개 국내 매체와 40여 개의 외신이 몰려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제작발표회를 마친 후 바로 칸영화제에 참석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스카 캠페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영화 출품과 심사위원 평가로 이뤄지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8000여 명의 회원에게 표심을 얻는 과정인 오스카 캠페인이 있다.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시상식까지 영화 홍보기간)’이 화제가 됐다. 후보에 오른 모든 영화들이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소배급사라다는 거였다. 다른 거대 스튜디오들이나 넷플릭스에 비하면 규모에 못 미치는 회사다. 대신 발로 뛰면서 열정으로 메꿨다. 그 말인즉슨, 나와 (송)강호 선배님이 코피를 흘리듯 열정으로 메꾸는 행보를 했다는 말이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뷰는 600회 이상, 관객과의 대화는 100회 이상 있었다. 다른 경쟁작들은 LA 시내에 광고판이 있었는데, 우리는 똘똘 뭉친 아이디어와 팀워크로 물량 열세를 커버하면서 열심히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나뿐 아니라 토드 필립스나 타란티노 감독 등 바쁜 창작자들이 일선에서 벗어나 캠페인을 하고, 스튜디오는 예산을 쓰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 적이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작품들을 밀도 있게 검증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고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진지하게 점검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더라. ‘오스카 캠페인’은 오랜 전통을 가진 과정이었다.

오스카 캠페인 중 “칸, 베를린, 베니스는 인터내셔널이고 아카데미는 로컬 아니겠냐”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다. 그것이 아카데미를 도발해 수상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처음 캠페인을 하는 와중에 어떻게 도발‘씩이나’ 하겠나.(웃음) 영화제의 성격을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인데, 미국 젊은 분들이 트위터에 많이 올렸나 보더라. 전략은 아니고 인터뷰 중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패러디가 등장할 정도로 수상소감이 화제다. 그것도 다 계획이 있었나. 하하. 유세윤 씨는 천재적인 것 같다. 문세윤 씨, 존경한다.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것 같다.(웃음)

감독상 수상 당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언급한 소감은 굉장한 화제였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내오셨다. 영광이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보내신 편지니까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고 이제 좀 쉬어라. 나도 그렇고 다들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고 편지를 보내주셨다. 감사하고 기뻤다.

1인치 자막의 벽을 허물었다는 말이 수차례 회자됐다. <기생충>의 대사 중 영어 자막으로 해석될 때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단어가 있나. 자막은 평소 하던 대로 열심히 했다. 달시 파켓과 작업한 지 오래됐다. <플란다스의 개>부터 모든 작품을 같이했다. 은근히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는 ‘수석’, 대만 카스테라, 짜파구리 등 번역이 불가하지만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 <살인의 추억> 때 “밥은 먹고 다니냐”를 해결해본 분이라서,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정은, 조여정 배우가 현지에서 이슈였다고 들었다. 이정은 배우가 미국에서 화제였다. 오리지널 하우스 키퍼인 그녀가 늦은 밤 벨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상식장 들어갈 때 톰 행크스 부부가 이정은 배우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LA 길을 가다가 타란티노 감독을 만나 길에서 20분 정도 이야기했다. 자기도 <기생충>을 봤다고 하시면서 10분 정도는 조여정 배우를 이야기했다.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앙상블 어워드에서 입증되었듯이, 전체 배우들이 누구 하나 균형 빠지는 것 없이 잘해서 미국 배우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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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캠페인부터 화제의 수상소감까지
세계가 <기생충>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실 봉준호 감독이 들고 나온 빈부격차라는 소재는 <기생충>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인 <설국열차>나 <괴물>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유독 <기생충>에 세계가 반응을 했을까. 봉 감독은 동시대 이웃들의 이야기를 현실을 토대로 실감나게 그린 것이 포인트가 아닐까 스스로 짐작해봤다고 말했다.

오스카 수상 이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육체적, 정신적,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어서 기내식 먹고 열심히 잤다.(웃음) 뭔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적인 문구도 남겨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전혀 없었다.

긴 여정이 끝나고 번아웃 증후군이 온 건가. <옥자> 촬영 끝났을 때 번아웃 판정을 받았었다.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모아 작품을 찍었다. 그리고 촬영기간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을 소화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침내 끝이 나는구나 싶다. 2015년 곽신애 대표(제작자)랑 이야기한 것이 시작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긴 세월인데,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서 기쁘다. 내가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건 사실이다. 쉬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웃음)

영화에 대한 반응이 열광적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기록을 남기며 세계적인 지지를 받은 소감이 궁금하다. 한국에서 1000만 명 이상 관객이 호응을 해주셨고 프랑스, 베트남, 일본, 영국 등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오스카 효과와 상관없이, 영화제에 노미네이션되기도 전에 북미에서 550만 달러 이상 최고 흥행 수익을 거뒀다. 이런저런 수상 여부를 떠나 전 세계 동시대 많은 관객들이 호응을 해줬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의미이고 기쁨이다.

<괴물>, <설국열차> 등 빈부격차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왜 유독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폭발력을 갖게 됐을까. 두 작품에는 괴물이 한강변에 나타난다거나 미래의 기차가 등장하는 SF적인 요소가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동시대 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배우들이 실감나게 표현했다.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분위기의 영화라 더 폭발력을 가진 게 아닐까, 스스로 짐작해봤다.

한국 영화 100주년에 오스카 수상까지, <기생충> 덕분에 한국 영화 산업에 활기가 생겼다. 한국 영화 특유의 활기는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나. 해외에서 많이 받는 질문이다.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금 누군가가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을 때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질문을 냉정하게 했을 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1999년에 데뷔했는데 20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뭔가 이상한 작품,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는 뭔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보인다.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는 독립영화를 만들어 평행선을 이룬다. 우리는 80~90년대 홍콩 영화가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그 기억을 선명히 갖고 있다.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금 한국은 영화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도전하는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온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많은 재능들이 꽃피고 있다. 결국은 산업과 즐거운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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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판 & 미국 드라마 제작 예정
봉 감독은 차기작 두 편 준비 중

<기생충>의 쾌거는 미국 드라마 제작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낳았다. 흑백판 개봉으로 색다른 느낌으로 <기생충>을 즐길 수도 있게 됐다.

차기작으로 두 편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봉준호의 작품 세계가 담기나? 준비하고 있는 두 편의 작품은 <기생충>의 반응과는 관련이 없다. 평소 하던 대로 준비한다. <기생충>은 평상심을 유지하고 찍은 영화인데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목표를 정하고 찍은 것이 아니다. (다음 작품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 접근 방식이 다르지 않다.

오스카 수상 후 정치권의 반응도 뜨겁다. 봉준호 생가, 동상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기사를 봤는데, 동상이라는 생각을…. 그냥 그런 이야기는 죽은 후에 해주셨으면.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은 넘겼다. 그걸 두고 내가 딱히 할 말이 없다.

곧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한다. 어떤 의도를 가진 결정인가. <마더> 때도 흑백 버전을 만든 적이 있다. 거창한 의도라기보다는 클래식 영화에 대한 동경, 로망이 있어서다. 세상 모든 영화들이 흑백이던 시절도 있었잖나. 내가 만약 1930년대에 살고 있고 이번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뿐 아니라 영화 팬이라면 관심이 있을 것 같다.

흑백은 어떤 느낌인가. 실제로 두 번 봤다. 묘하다.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에는 같은 영화인데, 이런저런 다른 느낌들이 있다. 보시는 분마다 다른 느낌이 있을 수 있는데, 선입견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로테르담에서 어떤 관객이 “흑백으로 보니까 화면에서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봤다. 컬러들이 사라지니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에 집중할 수 있더라. 섬세한 배우들의 연기, 뉘앙스를 훨씬 많이 느낄 수 있다. 내 느낌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보면서 느껴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미국 방송국 HBO에서 드라마로 재작된다.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나. 나는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연출하시는 감독은 이후 차차 정해질 거다. 영화 <바이스>의 아담 맥케이 감독이 작가 겸 감독으로 참여한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 동시대의 빈부격차는 오리지널 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지고 가고, 블랙코미디와 범죄 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게 들어갈 것 같다. 5~6부작의 완성도 높은 시리즈로 리미티드 시리즈라는 명칭을 쓰더라.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가 캐스팅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공식적인 사안은 전혀 아니다. 이제 이야기의 방향과 구조를 논의하는 시작 단계다. 순조롭게 첫발을 내디디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기생충>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한다면. 작년 5월 칸영화제부터 이번 오스카까지, 많은 경사가 있었다. 영화사적인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지만, 사실은 영화 자체가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 여기 있는 배우들의 아름다운 연기, 촬영팀, 모든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장면 하나하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하나하나의 고민들이 있다. 영화 자체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생충>의 숨은 주역들
제작사부터 통역까지… 우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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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작품상 받은 최초의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

“말이 안 나온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벌어지니까 너무 기쁘다. 지금 이 순간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이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결정을 해준 아카데미 회원분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의 영광을 안은 주인공.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다. 그는 작년 칸국제영화제부터 이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봉준호 감독과 함께 <기생충>의 모든 여정을 같이했다. 2015년 봉준호 감독이 건넨 15페이지짜리 시놉시스를 보고 흔쾌히 제작을 수락한 것이 지금의 큰 결실을 만들었다. 곽 대표는 <기생충> 제작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생충>이 주목받으면서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에게도 관심이 쏟아졌다. 1968년생인 곽신애 대표는 영화 전문 잡지 <키노>의 기자 출신이다. 이후 영화 홍보대행사와 제작사에서 근무하면서 <해피 엔드>, <여자, 정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했다.

곽신애 대표의 친오빠는 영화 <친구>, <극비수사>, <장사리>의 곽경택 감독이고 남편은 <유열의 음악앨범>, <은교>, <해피 엔드> 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으로, 이른바 영화인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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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기생충> 북미 마케팅에 100억 투자

“봉 감독에게 감사하다. 당신 자신이 되어줘서 감사하다. 나는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머리 스타일,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놀리지만 결코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기생충>을 지원해준 분들, <기생충>과 함께 일한 분들, <기생충>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현장에서 전한 소감이다. 지난 25년간 CJ그룹 영화 사업을 진두지휘한 이미경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과 <살인의 추억> 때부터 오랜 인연이 있다. 4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설국열차> 때 촬영을 앞두고 해외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자, CJ 측에서 제작비 전액을 책임지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CJ는 <기생충>의 북미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났지만,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계속 활동해왔다. 그는 201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이 됐다.

한편 이 부회장의 수상소감에 대해서는 자격 논란이 일어나면서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 제작자의 공을 치하하는 작품상 무대에 어울리지 않았던 수상소감이라는 반응이다. 이에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는 수상소감은 팀원들이 미리 정해놓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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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샤론 최
봉준호가 인정한 언어의 아바타

2월 19일 기자회견 자리. 한 외신기자에게 영어로 질문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샤론이 없이 영어 질문을 받아 순간 당황했다”는 농담을 건넸다. 작년 8월부터 약 6개월 넘게 이어온 캠페인을 거쳐 오스카 4관왕을 안기까지, 봉준호 곁에서 ‘언어의 아바타’라 불린 통역사 샤론 최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의 명확한 발음과 뛰어난 통역은 미국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어 인터뷰를 요청받을 정도였다. 봉 감독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완벽하다. 샤론 덕분에 모든 시상식 캠페인이 잘 굴러갈 수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샤론 최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인물로 과거 단편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몇 개의 장편 각본을 집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 통역사가 아닌데도 봉 감독의 센스 있는 수상소감을 특유의 유머까지 정확하게 살려 통역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올해 스물다섯 살인 샤론 최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국내의 한 외고 국제반에 들어간 뒤 유학을 떠나 지금은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내에서 대치동 학원가의 영어학원을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해당 학원이 그의 연관 검색어로 오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인기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도 뜨거웠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직후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샤론 최에게 “당신도 스타가 됐다”며 마이크를 건넸고, 샤론 최는 “저도 이 영화의 대단한 팬이다. 모든 무대가 긴장된다”고 수줍은 소감을 말했다. “스타가 됐다”는 말처럼 영화 팬들 사이에서 샤론 최의 인기는 상당하다. 샤론 최의 통역을 보기 위해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모두 찾아본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봉준호 감독 그리고 가족들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역사를 쓰는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봉 감독의 아내 정선영 씨와 아들 봉효민 감독이다. 각본상 수상 후 봉 감독은 “항상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시상식이 끝난 뒤 봉 감독과 함께 무대에 오른 정선영 씨는 남편을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축하해줬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봉 감독의 가족은 미국 언론을 통해 짧게 소개됐다. <LA 타임스>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이 무대 근처 앞쪽 객석에 자리했고, 그의 아내와 아들은 미국 배급사인 네온 관계자와 함께 객석 1층 뒤편에 앉았다고 전했다. 작품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호명하는 순간 아내와 아들이 서로 끌어안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고도 밝혔다. 두 사람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얼싸안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됐다.

봉 감독의 가족은 일명 ‘영화인 가족’이다. 아내 정선영 씨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봉 감독의 초기 단편인 <지리멸렬>에 편집 스태프로 이름을 올린 적도 있다.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1995년 결혼했다. 봉 감독은 미국 잡지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아내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다. 대본을 완성하고 그녀에게 보여줄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첫 흥행작인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기 전까지, 봉 감독은 수입이 적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내 정 씨는 묵묵히 남편의 영화 활동을 지지해준 것으로 알려진다. 한 방송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은 과거 “아내에게 1년 치 생활비 모아놓은 것이 있으니 1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못 먹어도 고’라며 아낌없이 지원해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현한 바 있다.

아들 봉효민 감독은 2017년 YG케이플러스에서 제작한 웹 무비 프로젝트를 통해 <결혼식>을 연출했다. 청각 장애인 주인공이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결혼식장에 찾아가 겪는 뒷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손호준이 주연을 맡아 눈빛과 몸짓만으로 감정을 표현해냈다. 당시 그는 아버지 후광 덕분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본명 대신 ‘효민’이라는 이름으로 프로필을 작성했다. 이후 영화 <1987>, <골든슬럼버>, <옥자>, <리얼>에도 조연출로 참여하며 영화인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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