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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간소한 삶 지켜낸 고 구자경 명예회장

#LG그룹 #명예회장

2020-01-08 09:52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LG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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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그룹을 일군 기업인,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은퇴 후 자연을 벗 삼은 간소한 삶을 살면서 귀감이 된 구 전 회장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그는 향년 94세다.
“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청사 인근 허름한 ‘진주집’에서 일행도,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뵈었다. 회장님의 그런 풍모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키웠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본인의 SNS에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을 회상하는 글을 남겼다. 12월 14일 별세 이후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구 전 명예회장의 소박하고 소탈한 삶이었다. 여느 대기업 오너들과는 달랐던 장례식장 풍경도 화제였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장례식은 평소 고인의 소박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뜻에 따라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도 없이 유가족과 친인척, 일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간단한 발인식만 진행됐다. 화장 후 안치된 고인의 마지막은, 기업 총수의 장례식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눈길을 끌었다. LG그룹에 따르면 장례가 치러지는 4일 동안 친인척을 제외한 외부 조문객은 200명을 넘지 않았다.
 

소박하고 소탈했던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님
국내 최초 대기업 무고 승계 업적

구 전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LG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기업인이 되기 전 그는 교사의 삶을 살았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LG그룹 경영에 합류하기 전까지 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락희화학공업사를 이끌던 부친의 부름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때였다.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고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사업이 번창해, 구 전 회장은 교편을 놓았다. 이사 직함으로 시작했지만 직접 가마솥에 불을 지펴 럭키크림을 만들었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손수 판매를 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배달 과정에서 화장품 뚜껑이 파손되는 일이 생기자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뚜껑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장을 누비며 습득한 경험과 지식은 훗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70년 구 전 명예회장이 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본격적인 글로벌 LG의 행보가 시작된다. 이후 구 전 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25년 동안 LG가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전 명예회장은 은퇴 후 보여준 발자취도 남달랐다. 생전 그는 “70세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실제로 70세가 되던 해 은퇴했다. 생전에 회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많은 상징성을 가진다.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 승계는 재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해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퇴진을 단행했다. 당시 구 전 명예회장은 사장단에게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퇴임 의사를 표명했다. 은퇴 후에는 후임 경영진에게 부담을 안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LG그룹은 구 전 명예회장이 취임한 1970년 매출 260억원에서 1995년 30조원 규모로 약 1150배 성장했다. 구 전 명예회장은 1995년 1월 럭키금성 명칭을 LG로 바꾼 뒤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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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 1월 취임 당시 고 구자경 명예회장
2 1987년 2월,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18대 회장에 초대된 구 명예회장이 정주영 전임 회장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3 1995년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은퇴 후 자연인의 삶
충남 천안에 머물며 버섯 연구에 몰두

구 전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고 한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에 따라 은퇴한 이상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주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 결심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1995년 이후, 구 전 명예회장은 철저하게 평범한 삶을 살았다.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연암대학교 농장에 머물면서 버섯 연구에 몰두하는 등 간소한 삶을 즐기면서 자연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구 전 명예회장은 은퇴 후 인재를 육성하고 소외이웃을 돕는 공익사업에 매진했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설립한 LG연암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해외연구 지원사업을 펼쳤다. 젊은 대학교수들이 해외에서 견문을 넓히고 연구에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구 전 명예회장은 재단 이사장 역임 당시 연암해외연구교수 증서수여식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교수들을 일일이 격려했을 만큼 큰 애착을 가졌다고 LG그룹 관계자들은 전했다.

1991년에는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체계적으로 펴고자 LG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구 전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부터 2015년까지 20년 동안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왔다. 재단은 지방자치단체에 사회복지관과 어린이집을 건립해 기증하고, 저신장 아동에 성장호르몬제 지원, 독거노인에 생필품 지원 등 사회 곳곳의 소외이웃을 돕는 복지사업을 펼쳤다. 본인은 소탈하고 소박한 삶을 유지하면서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구 전 회장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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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명예회장의 75세 생일 당시 가족사진

LG그룹,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구광모 회장이 4세 경영

구 전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LG그룹의 후계구도에도 관심이 쏠렸다. 현재 LG그룹은 1978년생인 4세 구광모 회장이 지키고 있다. 구 회장의 경영승계 과정이 흥미롭다. 2세인 구 전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은 후,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장남 구본무 회장이 3세 경영을 맡았다. 구본무 회장 슬하에는 1남3녀가 있었는데, 고등학생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구 회장은 조카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들여 경영권을 승계하며 LG의 전통을 이어갔다. 구광모 회장은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구광모 회장은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양자가 된 후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LG전자 뉴저지법인 차장, 시너지팀 상무, 경영전략팀 상무, ID사업부장 상무 등을 거쳐 2018년 6월 LG그룹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견기업 자제와 결혼한 것도 화제였다. 부인 정효정 씨는 식품업체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두 사람은 미국 뉴욕 유학시절 만나 연애를 한 뒤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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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명예회장이 구본무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구 전 명예회장이 농업에 매진한 이유는?

은퇴 후 버섯 연구에 매진하며 살아간 구자경 전 명예회장은 유독 농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취미생활은 교직생활을 할 때 시작한 나무 가꾸기부터 난과 버섯 연구까지 자연과 벗 삼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자는 허례허식 없는 간소한 삶이 그의 성향에서도 나온다고 평했다.

그가 농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초등학교 시절 과학을 접목한 농경법을 가르친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자연친화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는 1973년 학교법인인 LG연암학원을 설립했고, 낙후된 농촌의 발전을 이끌 인재 양성을 취지로 이듬해 천안에 연암대학교를 세웠다. 1984년에는 우수한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경남 진주에 연암공업대학도 세웠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구 전 명예회장은 인재 육성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각종 장학사업과 해외연구교수 지원사업은 물론, 도서관과 공연장 등을 설립해 교육과 문화 사업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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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내를 산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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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효  ( 2020-01-08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구본무 회장 슬하에는 1남3녀라니..1남1녀임..아들 죽고 아들 낳을려고 했는데 딸이 태어나서 딸2명이였다가 양자로 입적시켜서 1남2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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