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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어에서 문체부 차관 된 최윤희

#경기인 출신 여성 차관 #유현상과 비밀 결혼식

2019-12-29 11:26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뉴시스, 조선일보DB, SBS<좋은 아침>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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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인어’로 1980년대 후반 김연아 급 인기를 누렸던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최윤희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됐다. 국가대표 여성 선수 중 처음으로 차관의 자리에 오른 최윤희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포츠행정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금메달만 다섯 개, 청룡장과 맹호장 보유자, 이온음료 포카리 스웨트 CF 주인공.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던 최윤희가 남긴 기록이다. 그는 김연아 이전에 최윤희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최윤희는 언니 최윤정과 함께 1980년대 스포츠계를 이끈 스포츠 스타였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다섯 개를 획득하며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칭과 함께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랬던 그가 스포츠행정가로서 일을 시작하더니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국민소통실, 체육국, 미디어정책국,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등 스포츠, 문화, 관광, 소통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최윤희의 인사를 발표하며 “아시안게임에서 다섯 개의 금메달을 수상해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으로,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과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현장 경험과 행정 역량을 두루 겸비했다. 체육계 혁신과 관광·스포츠 산업 육성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첫 여성 경기인 출신 차관으로 임명

최윤희가 차관에 임명된 후 많은 이들이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가졌다. 수영선수를 은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틈틈이 들려오는 근황도 행정가보다 수영선수의 모습이 강했다. 최윤희는 2001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로 건너가 현지 수영센터에서 1년가량 코치로 일했고 2002년과 2004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과 아테네 올림픽 방송해설자로 활약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윤희는 오래전부터 스포츠행정가 길을 걷고 있었다. 2005년 대한체육회가 스포츠 외교 전문인력으로 발탁해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2007년 최윤희스포츠단을 창단해 스포츠 꿈나무를 발굴하면서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2017년에는 은퇴한 여성 체육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단법인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과 대한체육회 이사직을 병행했다.

차관에 임명되기 전 최윤희의 공식 직함은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다. 한국체육산업개발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산인 올림픽공원과 미사리경정공원 등을 관리·운영하기 위해 1990년 7월 설립한 곳이다. 이곳에서 최윤희는 최초 여성 대표이사로 활약했다.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로 임명될 당시 첫 여성 스포츠인 대표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인사라는 평도 있었지만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약 1년 5개월 동안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어온 최윤희는 첫 여성 경기인 출신 대표에서 첫 여성 경기인 출신 차관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최윤희의 남편 유현상은 아내의 소식이 전해진 날 바로 소감을 전했다. tbs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에서 고정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유현상은 12월 19일 방송에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아내를 더욱 사랑해주고 설거지와 청소도 더 많이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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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 집안 반대 극복한 러브 스토리 주인공

최윤희 신임차관은 수영선수로서의 커리어뿐 아니라 열세 살 나이 차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밀 결혼식을 올린 러브 스토리로도 유명하다. 아시안게임 이후 리포터 활동을 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최윤희는 1991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에서 부모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

유현상은 지난 11월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를 털어놨다. KBS 계단에서 최윤희와 처음 마주친 유현상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연애를 시작한 후 아내를 집에 데려다주다가 최윤희의 어머니에게 발각됐다. 유현상은 당시를 회상하며 “장모님이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윤희야, 상대가 되어야지’ 하곤 아내 손을 잡고 들어갔다. 나도 딸이 나 같은 놈을 만나면 허락 안 한다. 장모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윤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반대하자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이 모습을 본 유현상이 헤어져야겠다 결심하고 최윤희와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두 사람이 함께 갔던 미술관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이것은 운명’이라 생각해 다시 만나게 됐다.

집안의 반대가 거센 와중에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현상은 “(내) 가족은 다 미국에 있고 최윤희의 어머니는 반대가 심한 상황이라 비밀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최윤희는 ‘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오고, 유현상은 ‘방송하러 간다’며 외출해 봉선사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결심한 지 5일 만의 일이었다. 유현상은 “집안의 반대 때문에 몰래 한 결혼이라 아내가 많이 울었다. 피로연장에서 만난 아내의 전 다이빙 코치가 장모님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인사를 드리러 가니 등을 돌리고 계셔서 현관에서 등에 대고 잘 살겠다고 큰 절을 올렸다”고 전했다.

어렵게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부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헤어져 사는 길을 택했다. 최윤희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 시애틀로 떠났고 유현상은 한국에 홀로 남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유현상은 2011년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방송으로 공개했다. 당시 장남 동균 씨는 의대 진학을 앞둔 데다 미식축구 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공부와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둘째 호균 씨는 장래에 음악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당시 유현상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자주 못 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가족은 절대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기러기 아빠의 고충을 털어놨다.

큰 아들 동균 씨는 워싱턴대학교 치과대학에 진학한 뒤 현재 시애틀에서 치과병원 의사로 재직 중이다. 둘째 아들 호균 씨는 대학에 진학해 요리를 전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에는 동균 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애틀 치과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유현상은 “아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일을 시작했다. 자기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는 모습이 좋았다”며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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