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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잡은 ‘33년 전 DNA’ DNA가 알고 있는 진실은 어디까지?

2019-11-19 17:53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뉴시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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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0차례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이른바 ‘화성사건’의 진범이 특정됐다. 30년 넘게 풀리지 않은 난제의 키는 ‘DNA’. 피해자 유류품에서 나온 DNA가 정확히 범인을 지목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알아봤다.
영화 <살인의 추억>
‘퍼런빛이 가득한 어느 공간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맨 차림을 한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무리가 있다. 그럴싸하게 붓을 털고 스프레이를 분사한다.’

수사물을 봤다면 꼭 한번 스쳤을 장면이다. 범인이 사건 현장에 남겼을지 모를 흔적을 좇는 거라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흔적, 특히 혈흔이 특수 물질과 섞이고 나면 눈에 띈다는 사실. 수사물 주인공은 그렇게 범인을 잡아낸다.

“에이, 그렇게 (혈흔이) 많이 나오면 눈으로만 봐도 보이지.”

성균관대학교 과학수사학과 임시근 교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임 교수는 1997년부터 22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신원확인정보관리실장, 유전자분석실장을 해오다 올해 3월 교단에 섰다. 그가 말하는 ‘DNA’는 참 많은 걸 알고 있는 정보원이다.
 

인종, 나이, 살아온 환경 등
DNA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 무수해

화성사건으로 숨진 피해자 10명의 유류품 가운데 1987년 1월 다섯 번째 피해자 홍 모 양의 속옷을 비롯한 의류, 1988년 9월 일곱 번째 피해자 안 모 씨의 속옷, 1990년 11월 아홉 번째 피해자 김 모 양의 속옷 등 현장 증거물에서 공통적으로 한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 DNA는 1994년 ‘청주 처제 강간·살인 사건’ 피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했다.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손꼽히는 화성사건의 진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범인을 향한 공분은 당연했고, 오랜 시간 묻혀 있던 범죄의 흔적이 발견될 수 있다는 놀라움이 더해졌다.

단서는 용의자 손에서 묻어 나온 땀으로 알려졌다. 범죄 당시 이춘재가 피해자 속옷 등을 만지면서 묻은 땀의 수분이 말라 없어졌음에도 땀 속 극미량 세포와 DNA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DNA가 제일 취약한 게 부패예요.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관하는 단계도 아주 중요하죠. 젖어 있으면 대부분 썩거든요. 그래서 (현장 증거품을) 잘 말리고, 냉동보관 하는 거고. 다행히 이번엔 보관이 상당히 잘됐던가 봅니다.”

DNA(Deoxyribonucleic Acid, 디옥시리보오스 핵산)는 흔히 알고 있는 ‘유전자’와 다르다. DNA를 뜻하는 국어가 없어 유전자와 혼용되고 있지만, 정확히 따지면 다른 개념이다.

“DNA에 단백질을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벽돌을 지어 집을 만들지 않습니까? 우리 몸을 집이라고 치면 벽돌 일부가 유전자예요.”

DNA는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 등 4개 염기가 쌍을 이뤄 나열된 염기서열로 구성돼 있다. 두 가닥의 실이 꽈배기처럼 꼬인 형상으로 하나는 엄마, 나머지 하나는 아빠한테서 나온 거다.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곤 사람마다 갖고 있는 DNA 염기 배열 패턴이 다르고, 이 점이 범인 검거의 ‘열쇠’가 되는 셈이다.

DNA 감식의 목적은 ‘개인 식별’, ‘신원 확인’이다. 개인 식별은 범죄와 관련한 현장에서 채취한 DNA를 용의자의 것과 대조하는 것이고, 신원 확인은 실종자나 신원불상 변사자를 그들 가족과 맞춰보는 것이다. 시료(검사·분석 등에 사용되는 물질)로는 혈액과 정액, 타액이 가장 중요하고 이 밖에 모발, 피부 세포, 뼈, 대소변도 시료로 쓰인다.

“혈액이나 정액은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증거죠. 같은 DNA가 나온다 해도 혈액과 정액에서 나온 건 가치가 달라요. 가령, 살인사건 현장에 담배꽁초가 있었고 거기서 나온 DNA가 용의자와 일치한다고 해봐요. 머리 좋은 애들은 ‘내가 거길 가서 담배는 피웠지만 죽이진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이죠. 혈액 같은 게 안 나오면 증거가 약해질 수밖에요.”

이춘재 DNA 감식의 경우 개인 식별 목적에 속한다. 중요한 점은 범인 DNA를 해독하더라도 누구의 것인지 대조할 수 있는 대상 즉, 데이터베이스(DB)가 없었다면 이춘재를 놓쳤을 수 있다는 것. 2010년 강력사건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영구 보관토록 한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되면서, 처제 강간·살인 피의자인 이춘재의 DNA가 보관되고 있었다. 미국 장기 미제 사건 ‘골든 스테이트 킬러’ 범인이 잡힌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1970~80년대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40여 건의 강간과 10여 건의 살인을 저질렀고 최근에서야 잡혔다.

“미국은 사건 때문이 아니어도 민간업체에 DNA 분석을 의뢰하는 일이 흔해요. 경찰이 그 민간 DB 속에서 옛날 현장에서 발견한 DNA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어요. 비슷하다는 건 친척이라는 의미예요. 30여 년 전 사건이니까 적어도 현재 50대 이상인 사람을 추려서 보니까 한 명이 나오더래요. 몰래 주운 그 사람 담배꽁초와 현장 DNA를 비교하니까 딱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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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교수는 시간대별로 본인의 피를 뽑아, 시간이 지남에 따른 혈흔 속 DNA의 변화를 연구 중이다.

점 크기 혈흔도 DNA 검출 가능,
현장 증거물 찾는 게 관건

DNA는 많은 정보를 이야기한다. 감식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량도 늘고 있다.

“인종 추정은 거의 되고요. 표현형,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특징. 예를 들어 외국인 중에서도 금발이 있을 수 있고 흑발도, 은발도 있을 수 있잖아요. 피부색도 파악할 수 있는데 흑색, 백색, 황색 이런 정도가 아니라 그러데이션 수준으로 나와요. 눈동자 색까지도. 연령 추정도 가능해요. 플러스마이너스 3세.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예전 신원불상 변사자는 뼈나 치아가 얼마나 닳았는지를 따져서 나이를 추정했거든요. 그러면 범위가 플러스마이너스 10살 이상 차이 나니 오차 범위가 너무 크죠.”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먹은 음식, 스트레스 등도 DNA를 통해 드러난다. 구체적인 예로 ‘흡연을 30년 이상 한 사람이다’ 하는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다. 범죄 수사에 있어 용의자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셈. 다만 일란성 쌍둥이는 DNA가 일치하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이나마 식별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태어났을 땐 같더라도 흡연, 음식, 공해 등의 영향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다.

DNA를 기반으로 개인 식별을 하려면 ‘DNA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도 관건이다. 세포 양이 얼마나 필요하냐는 질문에 임 교수가 볼펜을 들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었다.

“보이세요? 이게 혈흔이라면 안에 백혈구 세포가 160개 정도 있어요. 무게로 따지면 100피코그램(1g을 조로 나눈 양)이고요. 현재 기술로는 세포 15개면 DNA를 밝혀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점의 10분의 1 크기인 혈흔만 있어도 누구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작은 점 하나 크기도 안 되는 혈흔을 짚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더군다나 붉은 계열 옷에 튄 작은 혈흔이라면. 이때 활용되는 시약이 ‘루미놀’이다. 적혈구와 만나면 빛이 나는 원리의 시약으로,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임 교수가 인상 깊다며 꼽은 일화이기도 하다.

“원래 걔가 여대생을 죽여서 잡혔어요. 나머지(범죄)는 증거 가져오라면서 자기는 모른대요. 그래서 경찰이 강호순 옷을 다 들고 와선 피 튄 걸 찾아달라 했어요. 강호순이 몰던 트럭 조수석에 깨끗한 점퍼가 한 벌 있었는데 까만색 손목 부분에서 딱 파란빛이 돌더라고요. 당연히 죽은 여대생의 혈흔인 줄 알았더니만 웬일입니까. 다른 여자 거예요! 그럼 이 여자는 누구지? DB가 없을 때라 대조할 수도 없었어요. 당시 제가 실종된 여성 네 명의 DNA 식별 번호를 포스트잇에 적어두고 외우다시피 했을 때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조해보니까 딱 맞아요. 순간 소름이 얼마나 돋던지. 바로 경찰에 알렸고 증거를 들이밀었더니 그날 밤에 여죄를 시인했어요.”

강호순의 사례처럼 DNA로 여죄를 찾아내는 경우가 또 있다. 임 교수는 DNA 감식 수만 건을 진행하다 간혹 비슷한 사례를 봤다고 했다. 5000원짜리 밥을 먹고 도망간 사람의 DNA가 해결되지 않은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일치한 적도, 신발 바꿔 신고 도망간 사람의 DNA가 성범죄 용의자와 일치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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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감식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량이 늘고 있다. 시료로는 혈액과 정액, 타액, 모발, 피부 세포 등이 쓰인다.

언제 흘린 혈흔인지도 알아야

임 교수는 시간대별로 본인의 피를 뽑아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흔 속 DNA가 어떻게 달라는지 알아내기 위함이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피라도 어떻게 바뀌는지를 봐야 해요. 그 부분을 확실하게 알면 시체가 죽은 시점을 더 제대로 추정할 수 있는 기본 연구가 되거든요. 현장 증거를 조작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고요. 모든 사건에 필요한 건 아니고, 사고 발생 시점이 논쟁이 되는 사건들이 있어요. 몇 년 전에 남편이 아내를 살인한 사건이 있었는데 남편 차 안에서 피가 많이 나왔어요. 둘이 부부니까 차 안에서 피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남편이 그 피에 대해 옛날에 흘린 코피라고 주장하면 수사가 힘들어지죠.”

마지막으로 베테랑인 임 교수라도 어려운 감식이 있느냐 물었다.

“대변으로 감식할 때요.(웃음) 대변 겉면을 닦아내죠. 거기선 DNA가 안 나올 줄 알고 대변 누고 그냥 가는 범인들이 있어요. 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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