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간 배너
  •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hot issue

하늘로 돌아간 고 조양호 회장

마지막 가는 길 & 삼남매의 앞날은?

2019-04-25 10:08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조선일보DB, 한진그룹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안이 부결되어 경영권을 박탈당한 지 약 열흘 뒤에 들린 소식이다. 잇단 ‘가족 리스크’로 한진그룹 일가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라서 갑작스러운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 그의 영결식 현장을 찾아 마지막 가는 길을 취재했다.
4월 16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운구차와 하늘색 대한항공 버스가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다. 검은 의복을 갖춰 입은 대한항공 임직원이 각자 자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고 조양호 회장의 발인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LA에서 영면에 든 조 회장은 이곳에서 5일 동안 장례 절차를 밟았다. 앞서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석태수 한진칼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내 4대 그룹 총수를 비롯한 재계 거물, 정치인 및 관가 인사, 문화·스포츠계 유명인, 국제 항공업계 종사자 등 각계 인사 2600여 명이 조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
 

삼남매 배웅 받으며 진행된 영결식
아내 이명희 전 이사장은 불참

특실과 12호실을 연결해 조문객을 맞은 규모가 큰 장례이지만 영결식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새벽 6시부터 엄수된 가족 영결식은 불교식으로, 비공개로 진행했다. 상주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아들이 위패와 영정사진을 들고, 뒤를 이어 얼굴이 수척한 조원태 사장과 그의 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차례로 나와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전날 2시간 정도 빈소에 머무른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추모사와 영상물 상영 등으로 이루어진 영결식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추모사를 맡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는 “숱한 위기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길로 저희를 이끌어주신 회장님의 의연하고 든든한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하며 슬픔을 전했다. “회장님이 걸어온 위대한 여정과 추구했던 숭고한 뜻을 한진그룹 모든 임직원이 이어 나가겠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이 끝난 오전 7시 무렵, 위패와 영정을 든 손자들과 조원태 사장, 조 사장의 부인,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가 차례로 나왔다. 운구차에 실리는 고 조 회장의 관을 바라보며 가족들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조현아 전 부사장은 얼굴이 퀭했고, 검은 정장을 갖춘 조현민 전 전무는 눈물을 흘리며 조 회장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영정사진을 든 조원태 사장이 운구차에 올라탔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는 다른 차량에 탑승했다. 운구차는 1981년부터 2017년까지 36년간 고인의 차량을 운전한 이경철 전 차량감독이 운전해 눈길을 끌었다.

운구 행렬은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과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등 조 회장의 자취가 묻은 공간을 돌아봤다. 대한항공 본사에서는 출퇴근길, 격납고 등 생전 조 회장이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을 돌면서 이별을 고했다. 미리 나와 있던 검은 의복을 입은 임직원들이 운구차가 지나가자 고개를 숙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이다. 이곳에는 2002년 별세한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회장과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김정이 여사가 안장돼 있다.
 
 
본문이미지
고 조양호 회장은 다양한 부분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하며 국격을 높이는 데 힘썼다.

# ‘하늘 길 개척자’
고 조양호는 누구?

1949년 태어난 조 전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장남이다. 창업주의 유업을 이어 ‘수송보국’의 일념으로 한진그룹을 국내 대표 운송·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출범 당시 8대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늘었고, 일본 3개 도시를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 154배, 연간 수송 여객 수 38배, 화물 수송량 538배 등 성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양호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그를 ‘하늘 길 개척자’라 부른다.
 

체육계에 남긴 잔잔한 미담

조 전 회장은 항공업계의 중요한 인물이지만 강직한 성품, 해외에서 국위선양에 기여한 재계 원로,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높은 활동가 등의 평가를 받는다. 체육계에 남긴 잔잔한 미담도 눈길을 끈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시절인 2016년 2월 정선 알파인 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 대회에 출전한 앤드루 웨이브레이트(미국)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슈퍼대회전 은메달리스트인 웨이브레이트는 2016년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대회 알파인 스키 활강과 슈퍼대회전에 참가했다. 대회 도중 웨이브레이트는 미국에 있는 아내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길에 오르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보잉 비즈니스 제트기(BBJ)에 웨이브레이트를 동승시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버스나 승용차로 이동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일반 여객기가 운항하지 않는 강릉공항에서 출발해 김포공항까지 데려다줬다”며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도 별도로 승용차를 마련해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서 미국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웨이브레이트도 조 회장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2016년 6월 평창조직위원장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준비를 위해 드러나지 않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16년 가을 평창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에서 한국을 찾은 호스트 리히트너(독일)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사무총장도 조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 리히트너 사무국장이 한국으로 오는 도중 허리 병이 크게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은 조 회장은 한국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고, 독일로 돌아갈 때는 대한항공 일등석(퍼스트 클래스) 좌석으로 승급해줬다.
 

국격 높인 민간외교관

조 전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하며 국격을 높이는 데 힘썼다.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 회장은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켰다.

이밖에도 국격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많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 회장이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한국도 세계적인 문화사업에 후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소명의식으로 이끈 평창동계올림픽

조 전 회장은 국가에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한 뒤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 소재 육군 제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다. 베트남에 파병돼 11개월 동안 근무한 후 다시 강원도 비무장지대로 돌아와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이런 경험은 조 회장이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동안 IOC 위원 110명 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조 회장의 이런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 한국언론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2년 1월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2014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도 맡았다. 지지부진하던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경기장 및 개·폐회식장 준공 기반을 만드는 등 올림픽을 본궤도에 올렸다. 개최 당시에는 조직위원장이 아니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집 펴낸 사진애호가, 매년 지인들에게 달력 선물

조 전 회장은 사진애호가로도 유명하다. 2001년부터 직접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중학교 시절 선친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이후 사진 촬영에 취미를 갖기 시작한 그에게 사진은 삶의 일부다. 취미가 같은 부친과 사진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국내외 출장길에 오를 때면 카메라를 꼭 챙겼다. 여행지 자연 풍경이나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직접 메일로 보내는 인간적인 모습도 갖고 있다.

2009년에는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부친이 선물해주신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여행하며 렌즈 속에 담아온 추억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선연하다”고 말했다. 그가 촬영한 사진은 2011년 대한항공 광고에 활용되기도 했다. 한진그룹 산하 공익재단인 일우재단은 국내 청년 사진가들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일우사진상을 만들기도 했다.
 
 
본문이미지

# 아들 조원태 후계자 유력
경영권 승계 가능할까? 두 딸은 경영 복귀하나?

유족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세상을 뜨기 전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고 말했다. 고인의 시신과 함께 미국에서 입국한 조원태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앞으로 일은 가족들과 함께 협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4월 16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삼남매의 경영권 승계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조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본인 지분 17.84%를 포함한 우호 지분 28.95%를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세 자녀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지분은 각각 2.34%, 2.31%, 2.30%에 불과하다. 후계자로 유력한 조원태 사장이 조 회장의 지분 17.84%를 상속받으면 안정적인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지만 상속세라는 변수가 남아 있다. 조 회장 지분 약 1055만 주에 대한 상속세는 종가(3만400원)를 감안할 때 17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되는데, 조 사장을 비롯한 삼남매가 이를 납부할 현금 자산은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지분 승계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조원태 사장이다. 한진그룹 오너 3세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내이사에 등재돼 대한항공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여동생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은 현재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조 회장도 아버지이자 그룹 창립자인 조중훈 회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났을 때 다음 해 바로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1975년 출생한 조 사장은 1995년 미국 힐버칼리지에 입학했다 1997년 인하대학교에 편입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남가주대학교(USC)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3년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했다. 대한항공에는 2004년에 들어갔다.

조 사장은 대한항공에서 핵심 분야를 거치며 초고속 승진했다. 경영전략본부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등을 거쳐 2014년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부사장, 대한항공 그룹경영지원실 실장, 한진칼 대표이사를 겸직했다. 이후 2016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2016년 한국공항·대한항공·진에어 대표이사를 거쳐 2017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일명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논란으로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일각에서는 조원태 사장이 그룹을 승계받기 전 일시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거나 조현아·현민 자매가 경영에 복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원태 사장이 본격적인 경영능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향후 중대한 시험대가 남았다는 논리다.

한편,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이후 조원태 사장은 대한항공 사내 인트라넷과 직원들의 개인 메일로 선친의 별세에 대한 심경과 앞으로의 의지를 담은 글을 올렸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무실에 들어가면 여전히 그 자리에 회장님이 계실 것 같다”로 시작되는 편지는 “저에게는 회장님이기 전에 아버지셨다. 저 역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던 부족한 아들이었다”는 회고로 이어졌다. 덧붙여 “마음은 무겁지만 우리에게는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임직원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는 대한항공. 고객과 국민이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항공. 우리가 가야 할 이 길을 위해 지난날의 모든 아픔은 뒤로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조 전 회장 앓은 폐 질환은 어떤 질병?
폐섬유증으로 추정, 10년 생존율 15%에 그쳐

조 전 회장의 별세 소식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 4월 8일이다. 한진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조 회장이 미국 현지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병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조 회장은 평소 폐가 굳어지는 대표적 질병인 폐섬유증(폐섬유화증)을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숨지기 전 폐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을 겪었다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폐섬유증은 폐가 섬유화되면서 점차 딱딱해지고 기능이 떨어져 결국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는 질환이다. 온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폐가 굳으면 산소가 혈류로 옮겨지지 않아 호흡곤란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폐섬유증은 진단 후 5년 생존율 43%, 10년 생존율이 15%에 그칠 정도로 경과가 좋지 않은 질병이다. 게다가 아직 증명된 치료 방법도 없는 실정이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운 중년층에서 발병률이 높아 흡연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정 환경이나 바이러스, 유전 등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최근 정체불명의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사람은 급성 폐섬유증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