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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미투 '조재현 인터뷰 그 후'

2018-03-08 15:17

글 :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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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닫는 건 참 편리한 일이다. 언쟁의 가능성도, 해명해야 할 필요도, 구설수에 휘말릴 일도 없으니까. 출산으로 반년을 쉬고 최근 복직했다. 지난 6개월은 그야말로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었다. 두문불출하며, 묵언수행 하듯 오도카니 앉아 아기만 봤다. 한데 그 시간이 가져다 준 편리함 이면엔 정체, 불통, 고독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우울증에 호되게 당하며 ‘할 말은 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불쑥불쑥 그때의 관성이, ‘침묵’을 택하라하기도 한다. 아무렴 그게 편하니까.
동굴을 빠져나오자,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침묵의 유혹을 뿌리치고 입을 연 사람들로 인해서. 거기에 힘입어 가만히 응어리진 기억을 풀어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기자 또한 취재를 하면서 크고 작은 성희롱을 받아왔다. 그땐 몰랐다. 감정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 모욕감 보다는 그 사람과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했다. ‘오며가며 얽힐 텐데, 양질의 취재원인데.’
실제로 그 취재원들의 대부분은 포털사이트에 버젓이 이름이 뜨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 바닥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얘긴데, 그들의 수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 치의 쭈뼛거림도 없다는 것. 이를테면, “애인 할래? 아님 말고”하는 식이다. 당해본 사람은 알 테지만, 상대방이 뻔뻔하리만치 당당하게 나오면, 반사적으로 정색하기가 힘들다. 대신 자기검열을 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 장난이었는데, 정색했다가 관계만 망치는 건 아닌가.’
어쨌든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생활의 핵심이니, 그 속에서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얘기다. 대상이 유명인이라면 여기에 더해 ‘얼굴 알려진 사람이 겁도 없이’라는 분노와 ‘얼굴 알려진 사람인데 설마’라는 안도 사이를 끝없이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그러다 후자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이젠 알 것 같다. 바로 그 ‘영향력’이 무기가 된다는 걸.

그중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배우 조재현도 있다. 3년 전의 일이다. 2015년 여름. 그가 출연한 가족 예능이 한창이던 때,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내용은 평이했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났나. “영화 얘기를 좀 더 하고 싶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당시 그는 영화도 한편 찍었는데, 감독으로의 데뷔작이었다.
매니저가 동석한 채 저녁을 먹으면서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여느 저녁자리에서 나올만한 대화였다. 주로 영화얘기였고, 살아온 얘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어왔지만, 그 상황에서 대수로운 질문은 아니었다. 식사대접을 받았기에 인사치레로 다음엔 내가 사겠다고 했고, 사달은 그 ‘다음’에서 났다.
가볍게 맥주한 잔 하자며 만난 자리. 전처럼 일상 얘길 하다가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내 여자 친구 할 거야? 말거야?” “네?” 하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때 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내 얼굴 쪽으로 양손을 뻗더니 입을 맞추려 했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와이프랑 한 지 오래됐다. 여자 친구 해라”고 했다. “그런 의도의 여자 친구라면, 돈으로 만드시든지 해라”고 했더니 “그런 건 싫다. 영감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에도 접촉 시도가 더 있었고, 성적인 얘기도 몇 차례 더 나왔다. 너무나 태연한 태도에 “기사쓸 것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했더니, “만일 기사가 난다면 업보로 생각하겠다”면서도 “네가 정 싫으면 하지 않겠다”며 일단락 됐다.

떨떠름한 자리가 파하고 한동안 멍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대중 사이에서 그의 평판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에게 그는 어떤 이미지일까. 각종 커뮤니티에 그의 이름을 쳐봤다. 상남자, 연기파, 소신배우면서, 첫사랑과 결혼한 로맨티스트로 회자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톱스타’는 아니었지만, 당시 그는 대중들의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공고한 성역 같아서 반대의견을 냈다간 되레 역적으로 몰릴 기세였다.
그 와중에도 그는 2~3일에 한번 씩, 길게는 1주일에 한번 씩 안부를 전해왔다. 본인이 어느 지방에 촬영을, 강의를 와 있는데 놀러오라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거길 왜 가죠?”라는 말이 아닌 “휴가 중이라서요, 약속이 있어서요”라는 말로 완곡히 뭉갰다. 불편한 관계로 남기 싫은, 비겁한 처사였다.(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반복적인 자성 중이다. 그때 술 안 마실걸, 정색하며 화 낼 걸, 허술해 보인 내 탓이다, 라며)

미투 캠페인은 권력형 성폭행에 대한 고발이다. 취재원과 기자는 권력 구조에 놓이지 않는다. 때문에 “나도 피해자”라고 말할 명분도, 재간도 없다. 겁도 없이 기자에게까지 들이댔다면서 그에게 오명 하나를 덧씌우려는 것도 아니다. 같은 업계 내 상하구조가 아님에도 이럴진대, 그 굴레 안에서는 어느 정도였을까. 얼마나 만연했기에 그 틀 밖에서까지 버젓이 자행됐을까. 그 심각성을, 내 경험을 토대로 이해해보고 알리고 싶었다.
더 본질적으로는 비록 미약하나마, 침묵을 깬 이들의 심경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해서였다. 입을 열기까지 이런 심정의 변화를 겪었겠구나, 하는 걸 몸소 느껴보고 싶었다. 그 입장이 되어봐야, 이 캠페인의 당위성을 외치는 데 설득력을 실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캠페인 한 달여. ‘미투’가 ‘더 자극적인 폭로’로 찰나의 화젯거리가 아니라, 앞으로도 부디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란다. 침묵의 유혹을 물리친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결국, 제도적인 ‘방패’를 형성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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