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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삶은?

박근령 박지만 "우리가 도와야지" ... 아직은 최순실 측근들이 지켜

2017-03-27 16:03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조선DB, 뉴시스, 모던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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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이틀 만이던 3월 12일 오토바이 수대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했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후 청와대로 거처를 옮긴 지 4년 15일 만이다. 자연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의 생활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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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베일에 싸인 삼성동 자택

“선생님이 이쪽으로 가지 말랬잖아.”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둘이 손을 붙잡고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으로부터 10m가량 떨어진 사거리 골목, 지름길을 앞에 두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당부를 상기했다. 결국 왕복 6차선 도로가 있는 큰길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기자가 3월 중순 삼성동을 찾았을 당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경찰,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와중에도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계속해서 거리를 오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바로 근처에 있고, 수학·영어 등의 전문학원과 종합학원이 많은 탓이었다. 박 전 대통령 집 앞에서 보호자 없이 머뭇거리는 아이들은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지나는 내내 에스코트를 해주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42-6번지, 선정릉역에서 100m 거리에 위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은 1983년 완공된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대지면적은 484㎡, 건물면적은 317.35㎡. 동쪽으로 나 있는 출입구가 삼릉초등학교 후문과 맞닿아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고급 아파트가, 그 앞으로는 편의점, 카페, 식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일인 21일까지 삼성동 집에 머무르며 단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층에 드리워진 커튼을 열거나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는 일이 없었으며, 해가 진 후에도 텔레비전 불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자택을 드나드는 차량에는 짙은 선팅이 되어 있고 뒷좌석에 가림막을 치고 있어 ‘보안손님’에 대한 단속도 철저했다. 경찰과 경호 인력의 삼엄한 경비로 박 전 대통령 측이 허가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의 출입도, 물품의 배송도 불가하다.
 
 
삼성동 집 내부구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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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방송에서 공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 내부.

박 전 대통령은 사생활 공개를 꺼려왔다. 방문을 반기지 않는 듯 초인종과 문패도 없이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4선 의원으로 당대표까지 지냈지만 자택에 정치인이나 기자를 들이는 일도 많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집에 정치인과 기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것과 비교된다. 불통에 대한 지적이 일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에 걸쳐 기자단과 당직자 초청행사를 다섯 차례 가졌다.

당시 삼성동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가재도구가 많지 않고 애써 가꾼 흔적 없이 수수한 느낌이었다고 기억했다. 1층은 응접실과 작은 주방, 손님방, 드레스룸, 화장실로 구성돼 있었다. 육영수 여사가 시집오기 전 수를 놓은 무궁화 자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린 풍경화 등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벽난로 위에는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과 박정희 전 대통령·육영수 여사의 사진, 동생 지만 씨·서향희 변호사 부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자리했다. 일반적인 가정집과 달리 화장실에 남자용 소변기와 여자용 좌식변기가 둘 다 설치돼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거실과 방 2개가 있었다. 방 하나는 서재, 다른 하나는 침실로 쓰였다. 서재에는 피아노와 컴퓨터, 책장이 있었고 침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방송에서 최초로 자택 내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명사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애장품을 받아 경매로 얻은 수익을 기부하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의 ‘고맙습니다’ 코너였다. LG그룹의 전신인 럭키금성의 에어컨, 30년 된 전축 등 수십 년이 된 가전제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애장품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 옷걸이, 그림, 백자 등이 물망에 올랐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20~30년이 넘은 집기들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12년이 지난 현재에는 집 안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 씨가 2015년 삼성동 자택에 있는 침대와 서랍장 등 집기를 빼내 조카 장시호 씨의 압구정동 집으로 옮겼고, 박 전 대통령은 이번에 사저로 복귀하며 42인치 LG 텔레비전과 디오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재도구를 새로 구입했다.
 

집 계약과 관리도 최 씨 일가가

박 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고 4선 의원을 하는 동안 줄곧 삼성동 집에서 생활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를 마친 후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집으로 돌아갔다가 성북동에서 2년, 장충동에서 6년을 거주한 뒤 1990년 삼성동 집에 정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당시 10억5천만원을 주고 삼성동 자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순실 씨의 모친인 임선이 씨가 모든 계약을 진행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자택 관리도 최 씨가 해왔다는 정황증거가 여럿 드러났다. 특히 최 씨가 자신의 직원 문모 씨를 시켜 자택 관리와 수리 등을 해왔고, 자택에 상주하는 관리인 급여도 직접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PART 2  비서·집사 역할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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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 10월 최태민·임선이의 집. 왼쪽부터 최순영, 임선이, 최순천, 조용래, 김경옥이다.
2 1990년대 초 한자리에 모인 임선이의 자녀, 사위, 며느리. 왼쪽부터 최순득 남편 장석칠, 최순득, 김경옥, 조순제, 정윤회, 최순실, 최순천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생활할 때부터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는 곁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늘 함께 있었다. 특히 최태민과의 인연이 시작된 이후로는 자금 관리를 비롯해 생활 전반의 일을 최태민-임선이-최순실의 순서로 최 씨 일가가 도맡았다.

최태민의 아들이자 최순실의 이복오빠인 최재석 씨는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지트에 금은보화가 가득 있었다”며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1조원을 목표로 재산을 모으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돌려주려 했다”고 말했다. 최태민 사망 후에는 임선이 씨가 박 전 대통령의 첫 국회의원 선거운동 당시 선거자금을 트렁크에 실어 융통했다는 사실도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확보됐다.

최 씨 일가가 재산만 관리해준 것은 아니다.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인 조순제의 장남이자 최태민의 의붓손자, 최순실의 의붓조카인 조용래 씨는 최근 출간한 책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 약봉지 하나도 최태민이 챙겼다”고 했다. 또 조용래 씨는 할머니인 임선이 씨가 며느리 김경옥 씨(조용래의 모친)를 시켜 박근혜 집 살림살이와 청소, 건강관리를 맡을 사람과 운전기사를 고용하며 소소하고 민감한 모든 것을 관리했다고 전했다. 임선이 씨가 사망할 무렵 이런 관리자 역할은 최순실 씨가 물려받았다.
 
 
동생 박근령·박지만 “돕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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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박지만 EG 회장, 우)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이제 박 전 대통령의 손발이 되어주던 최순실 씨는 감옥에 있고, 최측근이던 ‘문고리 3인방’도 곁에 없다. 파면으로 인해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비서관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두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박지만 EG 회장에게 이목이 쏠렸다. 남은 건 피붙이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박 전 이사장과는 인연을 끊다시피 했고, 박 회장과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박 씨 일가라기보다 최 씨 일가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박 회장은 선고 전부터 “누나의 안전이 가장 걱정”이라며 탄핵 후 청와대에서 언제 나와야 하는지, 누가 살림을 도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탄핵 후에는 지인을 통해 “누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 달라”는 뜻을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작은누나인 박 전 이사장이 “그래도 함께 찾아가보자”고 박 회장을 설득하기도 했으나 “우리가 문전박대를 당하면 큰누나가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기다렸다가 먼저 연락이 오면 언제든 가자”고 만류했다고 한다.

박 전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 “언니의 뜻을 존중해 당장은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먼발치에서 지켜주는 가족으로 대통령의 뜻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곁 지키는 최순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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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윤전추 행정관, 우) 이영선 경호관

삼성동 자택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으로 미루어보면 박 전 대통령 삼남매의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전히 최순실의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퇴거한 날 눈물을 흘리며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간 윤전추 행정관이다. 특급호텔 헬스트레이너 출신인 윤 행정관은 최순실 씨의 입김으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실 3급 행정관에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에도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을 챙기며 최 씨의 심부름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파면 이후에도 저녁 시간 자택에 들어가 2시간가량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가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사저를 드나드는 또 다른 최 씨 측 인사는 이영선 경호관이다. 최 씨, 윤 행정관과 함께 ‘의상실 영상’에 등장했으며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등이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0여 대를 대신 개통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경호관은 윤 행정관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삼성동을 오가며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유도선수 출신인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일 때부터 경호원을 하다 2013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원래 비서실 소속이었으나 재작년 경호실로 소속을 옮겨 사저 경호팀 합류가 가능해졌다.
 
또 ‘문고리 3인방’ 중 검찰과 특검의 칼날을 피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물밑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도울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월 16일에는 안 전 비서관의 명의로 된 통신비 고지서가 삼성동 자택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20년간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안 전 비서관은 최 씨와 비선 의료진이 청와대를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편의를 봐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0년 넘게 삼성동 집을 관리해온 60대 남성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장에서는 오 집사, 청와대 관계자에게는 오 주임이라고 불린다는 이 남성 또한 최 씨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PART 3  생활비·운전·식사는 어떻게?

만약 박 전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거나 자진 사퇴했다면 대통령 연금 월 1천2백38만원과 기념사업, 교통·통신 및 사무실, 병원 치료,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대부분의 예우를 박탈당해 경호·경비만 지원받는다. 나머지 부분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매달 생활비 충당은 어떻게?

파면 전 박 전 대통령의 연봉은 약 2억1천2백만원이었다. 그러나 파면 이후에는 국민연금 월 1백68만원과 보유하고 있는 예금의 이자소득 1백만원가량을 합해 약 2백68만원의 고정수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3천2백만원 수준, 기존 수익의 15%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수입만 따진 수치다.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재산은 35억2천만원에 달한다. 삼성동 자택의 가격이 작년 기준 공시지가로 27억1천만원이며, 박 대통령은 지난해 약 10억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자소득 1백만원은 이 예금 보유액에 근거한 수입이다. 그런데 매일 아침 전속 미용사 정송주·정매주 자매가 삼성동 자택으로 출근하고 있다. 미용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미용실 이용료, 원장 프리미엄에 출장요금까지 합치면 하루 미용비용만 50만원이다. 매일 서비스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월 1천5백만원에 달한다. 고정수입 2백68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다.
 
 
운전기사 지원 안 돼…  박 전 대통령은 ‘장롱면허’

박 전 대통령에게는 운전기사도 지원되지 않는다. 운전면허가 있지만 이른바 ‘장롱면허’ 소지자다.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 대행, 영남대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국회의원 등 고위직을 맡아 직접 운전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경선을 치를 당시 한 언론으로부터 운전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운전한 지가 오래되어서…”라고 답했다.

이영선 경호관이 경호와 운전을 함께 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핵 이전에 이영선 경호관이 최순실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고 주사·기(氣)치료 아줌마의 대리운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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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3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 샹들리에가 켜져 있는 모습.
2 삼성동 자택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한식요리연구가 김모 씨. EBS 방송화면 캡처.

장보기, 요리는 누가 맡나

과거 박 전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위해 시장을 찾았을 때 카드 한 장 들어 있지 않은 빳빳한 지갑을 꺼내 들고 어색하게 물건값을 치른 바 있다. 또 감자를 고르며 냄새를 맡아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당시 그 모습을 지켜본 상인들 사이에서 “물건 고르는 데도 상당히 난감해하더라”, “감자라는 건 흙냄새밖에 안 날 텐데 의아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운전면허가 있어도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박 전 대통령은 장을 보거나 생필품을 직접 살 필요가 없었다. 최 씨 일가가 고용한 가사도우미가 살림을 도맡았고, 최순실 씨가 직접 생필품을 챙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도 헌재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최순실은 이런 제게 과거 오랫동안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줄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고 밝혔었다.

요리는 2012년부터 박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수행하며 음식을 만들어온 것으로 전해진 70대 한식요리연구가 김모 씨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고 요리서적도 출간했던 김 씨는 박 전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관저로 들어가 식사를 챙겼으며, 박 전 대통령의 바로 옆방을 쓸 정도로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삼성동 자택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탄핵 국면 속 대비된 여성 리더십
‘헤어롤 신드롬’ 이정미 전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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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전 재판관은 3월 10일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헤어롤 두 개를 머리에 단 채 출근해 화제가 됐다.
2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월 10일 이 전 재판관이 헌재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발표문을 읽고 있는 모습.
3 3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정미 전 재판관 퇴임식 현장.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전 헌법재판관은 11시 선고를 앞두고 일찌감치 헌재에 도착했다. 미처 빼지 못한 헤어롤 두 개를 뒷머리에 달고 있었다.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에 우리나라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도 크게 주목했다. 웃음거리로 삼는 이들은 없었다.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운 실수라는 평과 함께 환호 섞인 패러디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헤어롤에서 이 전 재판관이 판결을 위해 얼마나 고뇌했는지, 얼마나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지를 읽고 있었다.

지난 6개월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과하며 “다시는 여자 못 뽑겠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또 한 나라의 수장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이러려고 여성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든다는 이들도 많았다.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이 첫 여성 대통령에게서 받은 상처를 씻어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전 재판관은 헌재 사상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 첫 40대 재판관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원래 꿈은 교사였다. 1979년 대학입시를 앞두고 10·26 사태가 터져 혼란을 겪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재판관, 두 여성의 운명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 사건이었다. 이 전 재판관은 올바른 사회에 대해 고민하다 진로를 바꿔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대전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고 서른을 넘겨 결혼했다. 남편인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신혁승 교수와의 사이에 이제는 성인이 된 1남 1녀를 두고 있다.

2011년 헌법재판관 취임 100일을 맞아 <법률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중학생이었던 자녀들에 대해 언급했다.

“애들이 잠들고 나면 일을 하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습니다. 잠은 짬짬이 잤어요.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띄기 때문에 전체 여성법조인에 대한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이 전 재판관은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했다. 아이를 봐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도 부침을 겪어 당시 생각을 하면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에 내정됐을 당시 “소수자와 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간통죄 폐지 결정 때는 “간통죄가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한다”며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03년 울산지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제왕절개 수술로 산모가 숨진 사건을 맡아 “의사가 산모에게 위험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며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가상 아동포르노를 제작하고 배포한 행위자의 신상을 등록하도록 한 것에 합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마지막 결정이었던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여성 리더의 모습을 선보였다. 판결 후 사흘 후 가진 퇴임식에서는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를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란다”며 6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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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희  ( 2017-03-27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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