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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생환 있을까 이사도 안 갔어요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 인터뷰

2017-03-09 09:32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서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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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이태원의 한 햄버거집에서 일하던 대학생 조중필 씨가 살해된 일명 ‘이태원 살인사건’.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잡혀 온 아더 존 패터슨에게 대법원은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희생자의 유가족이 검찰의 부실수사를 주장하면서 힘든 싸움을 지속한 끝에 얻어낸 결과다. 아들을 위해 20년을 싸운 피해자 조중필 군의 어머니 이복수 씨를 만났다.
“이제 중필이를 만나도 할 말이 생겼어요. 죽은 것도 억울하고 속상해 죽겠는데, 재판까지 왜 이러는지. 평생을 ‘착하게 살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만 살았거든요. 20년 만에 일이 이렇게 되니까, 그래도 사람이 착한 끝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범인을 잡았지 않겠어요?”
 
혹시 기적이 일어나서 오늘 밤에라도 중필이가 돌아올까 봐, 혹시 그러면 아들이 ‘우리 집 이사 갔네’ 하고 서운해할까 봐 평생 이사는 꿈도 꾸지 않고 살았다는 삼성동 주택의 거실에 앉은 이복수 씨의 얼굴에서 후련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덕분에 오랜만에 아들 앨범을 꺼내 본다고 말하며 한 장 한 장 사진을 보여주는 엄마의 얼굴에서 지난 20년간 이어진 긴 싸움의 모든 것이 전해졌다.
 
 
그동안 많이 애쓰셨다.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내 마음에 늘 독이 나 있었다. 사람들이 죄 이상하게 보이더라. 착한 사람도 이상하게 보였다. 악으로 살았던 것 같다. 20년 만에라도 진범이 밝혀지고 최고형도 받아서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운이 없다.
 
판결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끝나자마자 구정이라서 바빴다. 명절이라 사위, 딸 다 모여서 ‘중필이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하면서 보냈다. 올해 명절은 안 될 걸 해냈으니까 좀 남달랐다. 딸, 사위 다 같이 모여서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도 되는구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드디어 진범이 밝혀졌다. 소감이 어떤가. 중필이 재판을 하러 법원에 가면 ‘평화, 평등, 정의’ 이런 문구들을 곳곳에 써놓은 게 보였다. 볼 때마다 ‘저게 다 무슨 의미냐, 괜히 남 보기 좋으라고 써놨지, 무슨 정의가 있고 평등이 있느냐’ 혼자 생각했다. 내 일이 되니까 다들 바보 같고 욕만 나오더라. ‘살인범을 내보내는데 똑똑하면 뭐하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는 여한이 없다.
 
누가 제일 고맙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들어준 감독님. 영화가 나오니까 이렇게 세간이 떠든 것 아닌가.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게도 고맙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도 몰랐는데, 방송을 보고 감독님이 영화를 하자고 한 거니까. 언론들이 애를 많이 써줬다. 신문사, 방송사, 잡지사 모두 고맙다. 이번에 변호를 맡아준 하주희 변호사도 많이 애쓰셨다. 내가 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 학생이었다고 하더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장과 함께 많이 도와주셨다. 내가 전국의 대학교를 다니면서 서명을 받았었다. 그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대학생들에게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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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꾼 것 같은 20년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이 씨의 삶은 97년 아들을 보내고 완전히 바뀌었다. 아들은 죽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미칠 노릇인데 죽인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이 진범을 밝히고 아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달려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이 씨는 그것보다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전국의 모든 단체들을 다니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알렸다.
 
 
‘이제 그만하자’는 가족들의 반대 속에서도 열심히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밥만 먹으면 서명가방을 들고 나갔다. 발바닥이 아프도록 다녔다. 아침저녁으로 시아버지 밥 차려드리고, 요구르트 한 병 먹고 나갔다.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워서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데 물도 안 마셨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엄마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긴 시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이잖나. 돈도 많이 들었다. 변호사비도 꽤 많이 들고,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런데 ‘이걸 내가 해야지, 엄마가 해야지 누가 해?’ 그런 마음이 컸다. 남편과 딸들은 직장 다녀야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중필이 생각난다고 하는 게 눈치가 보이더라. 내색도 안 하고 속으로 엄마가 해결해야지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원망도 생기고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 중필이가 꿈에 나타나서 진범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중필이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꿈에도 안 나타나더라.
 
딸 셋 이후에 만난 막내, 워낙에 아끼는 아들이었다고 들었다. 중필이에게 정을 주고 올인해서 살았다. 딸들이 이런 나를 말리지 않았다. 중필이는 욕도 안 하고 싸움도 안 했다. 어려서부터 착했다. 그런 착한 아이가 험한 일을 당해서, ‘착하게 살아도 소용없나 보다’ 이런 소리를 많이 했다.
 
먼 훗날 아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죽어서 중필이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면 이제 좀 낫지. 진범을 밝혔으니까 중필이에게 할 말이 생겼다. 고맙다고 할 것 같다.
 
아직도 미제사건이 많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가족이 열심히 해야 한다. 남은 ‘안됐다’ 그런 말만 하지 않나. 한을 풀고, 그런 사건을 풀어내려면 열심히 쫓아다녀야 한다. 집에서 혼자만 억울해하면 누가 알아주나. 나는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거다. 지금은 늙어서 그렇지, 그때는 55세니까 한창 때였다. 굶으면서도 매일 다녔다. 오라는 전국의 학교나 단체는 가리지 않고 다 갔다. 너무 억울해서, 작은 노래교실에도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그랬다.
 
미제사건을 해결한 당사자로서, 앞으로 사회적인 역할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시민단체에서 오라고 하는데, 안 가게 된다. 중필이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고 왜 여기 있나 싶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끝이 나서 내 아들 사진이 버려지는 것을 보면 속상하다. 부모 마음은 그렇다.
 
앞으로 아들 사건 관련 인터뷰는 없을 텐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되는 걸 했다. 꿈같다. 방송국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어주시고, 언론이 알려주시고, 국회의원, 변호사, 서명해주신 많은 분들께 모두 고맙다. 여러분이 도와줘서 된 거다. 우리처럼 억울한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복수 여사는 인터뷰 내내 “내가 늙긴 늙었는지 생각이 덜 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아들을 죽게 한 진범을 밝혀내기까지 황망하게 보낸 시간이 꼬박 20년이다. 50대였던 그녀는 70대가 됐다. 아들을 위해서 평생 최선을 다해서 바친 엄마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
 
 

 
20년 만에 진범 처벌한 이태원 살인사건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고 조중필(당시 22세) 씨가 여러 차례 흉기로 찔려 살해당했다. 당시 검찰은 현장에 있던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해 기소했으나, 리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린 혐의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패터슨은 복역하다가 1998년 사면되었다.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했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셈. 검찰은 2011년 재수사 끝에 패터슨을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해 미국에서 체포된 패터슨은 2015년 9월,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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